세상 이야기/길 위에서 묻다

화나네...

운산티앤씨 2018. 8. 29.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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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경 ---비몽


난데없이 딸아이가 학교를 그만 두네, 어쩌네..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심리적 변화가 있었던 모양인데 정확히 그 속내가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참 사춘기라고 하기엔 가슴 서늘한 소릴 자주 해서 어지간하면 공부 소린 입에도 올리지 않았고 진로도 본인이 하고 싶다는 그림으로 결정하게 했습니다. 주변에선 요즘 미술 해서 뭐 해 먹고살겠냐, 취직이나 하겠냐, 디자인으로 가야 한다 등등. 전부 묵살하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오늘 갑자기 전화가 와선 교통카드를 누가 훔쳐 갔는데 담임께 알렸더니 너의 불찰이다부터 나왔던 모양, 나도 여기엔 이견이 없던 터라 동의를 했더니 그다음부터 속사포로 문자가 20개 정도 날라오네요. 어이가 없어 한참을 보다가 일단 가게로 와라. 들어 보자.

흠.. 그 학교엔 예체능계 희망자만 따로 모아 반을 만들고 진학지도를 했는데 올해는 지원자가 적어 반을 만들지 않기로 했답니다. 이게 무슨 소리여? 딸애는 그거 보고 이 학교로 왔는데 갑자기 없애면 난 어떻게 하란 말이냐, 죽고 싶다란 말까지.

순간 머리끝까지 열이 올라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해서 물어보았지요. 이유는 달리 없고 지원자가 적어서 그렇다는군요. 아니 그럼 애들 모집 전에 그럴 가능성이 있다든지 해야지 지금 와서 그렇게 이야기하면 어쩌란 겁니까? 내친김에 전학과 자퇴란 강수를 두어 보았습니다. 이건 딸에게도 은근한 압박이죠. 자퇴가 쉬운가. ㅎㅎ

그런데 반 편성에 대한 권한을 가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다시 왔습니다.

상당히 격앙된 상태로, 초면의 학부모에게 실례가 될 어투로 이야기하는 양은 이 문제로 짜증이 잇빠이 낫다는 뜻일 텐데. 그렇다고 내가 상전이란 뜻은 아닙니다. 나야 선생님 앞에선 늘 을이지요. 보통은 대끔 이리 나오면 난 십원짜리가 나갑니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꾹 참고...

요지는 지금 2, 3학년은 2009년 지침에 따라 만들었고 1학년부터는 2015년 지침에 따라 그런 편성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애들 공부하는 태도가 글러먹었다, 고작해야 과목 하나가 다를 뿐인데....

이거 원 말할 기회를 줘야지. 하여 중간에 확 자르고 질문하였습니다.

'말씀은 예체능계 지원자들도 일반대를 목표로 하는 문이과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건데, 예체능계에서 교과성적이 어느 정도 비중인가요?

실기가 8이면 학교 성적은 2랍니다. ㅎㅎㅎ

선생이란 분이 말솜씨하곤. 게다가 가게에 온 딸의 말을 들으니 어제 갑자기 교내 방송으로 그런 반 편성을 못하게 되었으니 그리 알아라 하고선 애들을 집합시켰는데 방송을 들은 일부만 왔나 봅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전달하니 애들이 항의를 좀 했다나요? 그 선생님 왈 '그럼 니들이 가서 애들 모아와라.'

아, 씨팔... 욕이 안 나올 수가 있나요? 결정을 전달하는 자리, 특히 공직자는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기승전결, 전후좌우를 잘 살펴 꼬투리 잡힐 말을 해선 안되지요. 이 선생님의 말씀 중 전혀 논리적이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우선 교육청 지침에 따라 못한다. 그런데 지금 1학년 대상으로 지원자를 모았다? 지침이 그렇다면 아예 말을 꺼내지 말아야 맞지요. 이게 장난도 아니고 동아리 회원 모집도 아닐진대 대가리 수가 적어 없던 일로 한다? 게다가 그런 애들이 하나둘도 아니고 무려 15명 가까이 되는데?

두 번째는 몇 년 전부터 이야기해왔다. 난 들은 바 없습니다. 그리고 안내문으로도 받은 바 없고. 내 귀에 좇을 박고 있었나 싶네요. 그리고 우리 딸애를 비롯한 14명의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은?

세 번째는 설사 그런 결정을 내렸더라도 적어도 학부모에겐 먼저 알려야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진로는 애들의 장차 생계와 부모들의 골수 빼는 지원의 규모와 직결된 문제입니다. 이걸 교내 방송해서 애들 불러 그리 알아라? 장난도 아니고...

마지막으로 니들이 그런 반을 만들고 싶으면 니들이 애들을 모아와라고 한 부분입니다. 실제 딸애와 몇 명이 뛰어다니며 반반마다 게시를 했더니 4명 정도가 더 나오더라는 거죠. 그럼 원래 지원자 15명에 추가 4명이니 적지 않은 숫자입니다. 그런데 그걸 왜 애들에게 시킵니까? 어이가 없어서...

그리고 실기가 8할이라는 예체능계 애들에게 일반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라는 건 대학 가지 말란 소리나 마찬가지. 1984년도 나의 고등학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실기가 중요했던 예체능계 애들은 실기만 집중했고 학교는 달리 반 편성을 해줄 형편이 아니니 그 애들의 성적에 관해서 관대한 태도를 취했지요.

하여 학교에서 정히 못 바꾸신다면 나로선 전학이나 자퇴밖에 없겠네요. 알아서 하시랍니다. 이런 개씨부랄... 부모님이 교직에 계셨던 터라 어지간하면 학교 일엔 관여하지 않으려 했지만 도대체 대갈통에 뭘 담고 있길래 대답하는 싸가지가 이 정도인가.

하여 너 좀 엿이나 처먹어라 하는 심뽀로 학교 상담 게시판에 전후 사정을 다 설명하고 대답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학교가 그걸 반드시 해줘야 한다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럴 가능성이 있든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면 제대로 고지를 했어야 한다는 거죠. 일언반구도 없다가 숫자 모자라니 안 하겠다는 건 전혀 존경스럽지도, 책임감 있는 태도가 아닙니다.

애들이 한 반에 65명씩이나 되던 시대에도 애들 하나하나 다 건사하고 혹여 하나라도 잘못될까 노심초사하며 회초리를 들던 선생님들과 너무나 대비가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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