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전 아주 잘 되는 식당을 하시는 분과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나야 없어 걱정이지만 그분은 많아 걱정. 거참, 듣고 있자니 적잖이 거북하기도 합니다만.
요는 돈을 창고에 재놓을 만큼 많아도 자식들 보면 한숨만 나온다는 건데... 그게 뭐냐 하면 뭐든지 다 줄 테니 공부를 하라고 해도 죽어라 하지 않고 놀기만 좋아한다나요?
하여 내가 말하길,
'왜 굳이 공부 시키려고 하십니까? 저 보고도 모르세요? 대학 졸업장이 지금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어 보입니까?'
모르는 소리 말랍니다. 이게 얼마나 힘들고 더럽고 치사한 일이 많은지, 그래서 자식들만큼은 좋은 대학 나와 남에게 대가리 숙이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졸업장 하나 없는 내가 부끄럽다.
흠.. 그래서 최고경영자과정이 그 아까운 돈 쏟아붓고, 사실 배우는 건 개코도 없는데, 돈도 되지도 않는 쓸데없는 청소년 선도위원이니 방범 위촉 자문이니 이런 거 하시는 모양인데...
세상 어딜 거도 영원한 갑은 없는 법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중국 가서, 미국 가서, 일본 가서 무시당합니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검사는 타이틀만 달면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는 줄 아십니까? 거기도 계급 있고 진골, 성골 있고 불가촉천민이 있는 지저분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일 뿐입니다. 다만 다른 건 형님처럼 술 처먹고 개되는 양아치들이 없다 뿐이지,
백주대낮에 술 처마시고 개가 된 양아치보다 더 무서운 양아치가 맨정신에 넥타이 매고 있는 먹물들이라는 걸 모르시는지... 속으로만 되뇌다 나왔습니다.
물론 싫겠지요. 새벽부터 일어나 찬거리 받고 주방 다독여 음식 준비시키고
오만 잡놈들 상대하다 파김치 되어 집에 들어놔 널브러져 자다가 또 같은 일상의 반복을 수십 년간 했으니 신물도 나겠거니.
하지만 아니 그런 사람들 없습니다. 먹고살자면 다 같은 일의 반복이니 형태만 다를 뿐 기본과 골격은 동일하다는 점.
이 형님은 그동안 자신이 걸어온 세월의 길에서 더러운 면만 보고 있지요. 하지만 힘들게 뚫고 닦아온 그 길을 왜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은 안 하는지. 수십 년간 쌓아온 단골과 거래처 관계, 그리고 자리 잡은 상권은 사실 도심 한복판의 빌딩 못지않은 자산인데.
만약 본인이 가고 난후, 자식이 잘못되어 재산을 다 탕진했을 땐, 지금처럼 대책 없이 뒷돈만 대주다간 저승에서 필시 피눈물을 흘릴 텐데 말입니다.
하다못해 고물상도 그러합니다. 오래전에야 망태 지고 길거리 굴러다니는 병이나 집게로 집어넣는 거지였지만 요즘은 아닙니다. 재생산업은 분명히 제4차 산업혁명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굴뚝 산업인데, 배우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습니다. 어떤 게 재활용이 되는지, 어딜 가야 그런 게 많은지, 어떻게 해야 좋은 걸 안정적으로 공급받는지, 최종적으로 어디에 팔아야 하는지. 플라스틱의 가격은 석유가와 연동되고 각국 정부의 정책에 따라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 수도 있는 기회와 위험이 지극히 하이 레벨로 자리 잡은, 대가리 없인 안되는 사업입니다.
골목 귀퉁이에 자리 잡은 맥주집은 막장인생들만 하야 하나요? 그것도 오랜 세월 뭉개다 보면 명물로 나고 그 자체가 어마어마한 무형의 자산인데.
한달 전, 서울 동대문에 기계장인들이 사라져 간다고, 인터뷰 내용 대부분이 요즘 젊은 애들은 이걸 배우려 하질 않아. 하지만 출연한 이들 중 자식과 같이 일하는 분은 하나도 나오질 않던데. 거참 이상하죠?
넥타이 매고 좋은 빌딩에서 부장님, 이사님 소리 듣는 자식도 자랑스럽지만 허황한 욕심 버리고 아비의 길을 걷겠다 하는 자식은 더 자랑스러운 법입니다.
난 자식에겐 이런 내 삶의 전부를 물려주어야 진정한 교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파트 한 채, 빌딩 한 채 따위가 아니라 내가 죽어라 익혀온 생존기술의 전수야말로 유일무이한 재산이자 부모가 마땅히 할 도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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