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즐거운 하루

페이백 타임

운산티앤씨 2021. 5. 23.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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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백. Payback. 지불을 되돌리니까 복수. 리벤지. 하여간 어감 좋은 단어인데 헐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나오지. 무협에선 이런 문구도 자주 등장하지. '녹수가 변치 않는 한 장부의 복수는 늦지 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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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동창 녀석이 느닷없이 전화를 했네. 일찌감치 퇴출 당해 나와 비슷한 처지라 동병상련으로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지만 결코 지가 먼저 하는 법이 없는데 말이야. 왈,

'야, 너 누구 알지. 걔 00은행 지점장했잖아?'

'물라, 새꺄.'

'하여간 이번에 퇴직했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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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 봐라? 그래도 칭군데 그 나이에 퇴직하면 갈 곳 없다는 걸, 그것도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는 은행원이라면 더하리란 걸 잘 아는 눔이 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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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꺄. 친구가 퇴직했다는데 즐겁냐? 이런 개씨방새를 봤나?'

'그게 아니라 어쩌고 저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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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씨부리는데 너는 짖어라, 난 운전이다. 떠들면서 드디어 동지를 찾았다고 희희낙낙할 녀석의 표정이 연상되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머금어지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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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우스워서? 천만에. 나 역시 한편으론 존나게 고소하더만. 그래. 그 잘난 씨불눔이 여태 네고다이 매고 법카로 직직 그으며 꽃가마 타고 다니다 이젠 짚신 신고 발바닥 땀나게 뛰어 댕겨야 한다는 거지? 요노무 자슥, 어디 한번 사회의 된맛을 봐라.. 머 이런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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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사 기획 퇴사였지만 나올 때 좋은 기억이 있을 리 만무하다. 겁대가리 없이 회장 앞에서 '죄송합니다.' 이 한 마디만 하면 모든 걸 없던 일로 하겠다는 '달콤한 인생'의 삼선교 무성이의 전언을 냅다 족까는 소리 말라고 하던 이병헌처험 멋지게 되받아 주고 나오긴 했다만 이후 참... 개밥에 도토리가 아닌 개똥밭에 벌갱이처럼 기어 다녔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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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그렇다고 훗날 그 회장이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그러고선 내가 그 가슴팍에 총알을 박은 건 아니고, 또한 그럴만한 원한도 없었지만 뒤로 들리는 개소리는 참으로 사람 허파 뒤집어지게 하더라고. 데리고 있는 개잡년 하난 회장에게 그간 일은 지가 다 했다고 입에 침도 안바르고 거짓말을 했다나. 그뿐이랴, 대권 잡아보겠다고 날 대항마 삼아 전방에 내세웠던 개새 부사장이란 놈도 지 몸보신한다고 전화 한 통화 없고, 그렇게 매일같이 술 빨던 십새들도 감감 무소식. 내가 연락처를 바꾼 탓도 있지만 참 인생이 딸딸이 후의 허무처럼 느껴졌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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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하여간 이후 누가 잘되나 보자 하고선 존나게 뛰어 댕겼지. 지금도 낸 근처를 암약할 지 모르는 스파이 새끼가 꼰질렀나 몰라도 내가 대리하는 건 어찌 알아? 연락은 하지 않아도 서로의 근황이 전해오는데 그때마다 되새긴 말이 바로 '녹수가 변치 않는 한...'이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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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 부사장 새끼는 등산이나 다니고 좆까는 소리하던 어린 년은 모가지 댕강 당해서 뭐하는지도 모른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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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지심인진 몰라도 이후 동창회고 개나발이고 다 끊고선 조용히 때를 기다렸어. 잘 아시겠지만 네고다이 매고 다닐 땐 다들 퇴직 후를 준비한답시고 난리법썩이지만 막상 목전에 닿거나 사달이 벌어진 후엔 그야말로 공황 상태로 돌입하지. 그러다가 받은 퇴직금, 저축한 종잣돈 등등을 이래저래 거지 발싸개같은 투자처에 몽조리 상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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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놈들 마이 봤다 아이가. 심지어 토지 보상으로 받은 백억대 재산도 고작 5년 만에 다 날리고 대리 운전하며 그래도 지금은 마음만은 편하다는, 오뉴월 늘어진 수세미에 바늘도 들어가지도 않은 개소리로 객기 부리던 자들도 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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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그래도 밥술이나 뜨는 정도에 도달하기 까지 꼬박 10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그간 치룬 전투의 양상은, 직장 생활하며 부대낀 시방새들과의 다툼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유혈이 낭자한 결전의 연속이었지. 그나마 객기라도 남아 있고 근력이라도 젊은 놈 못지 않았을 때였으니 망장이지, 지금이라면 등골이 서늘하고 오금이 저릴 정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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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랴. 다들 대학 졸업하면 사회의 쓴맛을 본다곤 하지만 사실 직장만큼 안전한 곳은 없어. 집하고 학교 빼곤. 그 보호막이 답답해서 아우성이고 워라벨이 어떻고 자아를 찾네 뭐네 하며 개주접을 떨지만 그 보호막이 걷히는 순간은 그야말로 젓먹이가 어미 잃은 꼬락서니와 뭐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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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바구를 하며 내자에게 이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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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도 좀 있으면 그간 자네 앞에서 돼도 않은 좃퉁소 불며 자랑질하던 여편네들이 대가릴 숙일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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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아직 나지도 않은 손주들까지 고려하니 원래의 은퇴 싯점이 75세 혹은 80세로 후퇴하더라? 그러니까 난 지금처럼 계속 일하잖나? 다른 눔들은 그때까지 모아둔 돈 곶감 빼먹듯 빼먹으며 놀든지 날리든지.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나무 코트 예약하며 하늘로 소풍갈 날만 기다리는 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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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는 말이지. 나처럼, 비교적 젊은 시절 개똥밭에 구르게 되더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고 존나게 뛰다보면 언젠간 인생이 역전되더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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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봐. 다들 뚜벅이로 온 동창회에 기사 딸린 벤츠를 누가 끌고 오는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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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스파이.. 그만 알짱거리고 회장한테 가서 이바구 해. 나 잘 살고 있으며 예전 일은 다 잊었다고 말이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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