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나 외관에 그다지 신경 쓸 일을 하는 난, 원래부터 그런 쪽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릴 때야 이런저런 옷을 사 입고 거울 앞에서 폼도 잡아봤지만, 그땐 허리 사이즈가 28이었을 때의 전설이고, 요즘 40을 넘나들다 보니 포기도 아닌, 거대한 베둘레햄을 보며 흐뭇하기까지 하니까요.
남들은 오래 못 산다, 둔해서 어쩌냐 하시지만 살이 찌면 찌는 대로 적응하는 게 오묘한 신체의 조화이니 허리 숙였을 때 솟아오르는 혈압만 아니면 그닥 불편할 것도 없네요. 게다가 살이 찌니 조금만 움직여도 육수가 홍수처럼 쏟아지니 역시 보시기엔 불편해 보여도 적응되면 찹찹한 그 느낌 또한 창조적 오르가슴 (Creative Orgasm)의 일종이라.
그제 간만에 부모님 댁을 갔는데 옷차림 좀 거시기했나 봅니다. 저녁에 누워 뒹굴고 있는데, 뜬금없이 마눌이 전화를 하더니 심각한 표정을 짓는군요.
모친 왈 서방 행색이 곧 니 체면인데 그게 뭐냐? 반바지에 배는 산더미처럼 튀어나와선 쓰레빠 질질 끌고 다니는데 넌 관심도 없냐. 통화가 끝나고 이어지는 마우스 장사포 공격, 역시 여잔 나이가 들면 공력이 온통 주둥이로 모인다더니 대단한 화력입니다. 창졸지간에 방원 10장 이내가 초토화되는 파천황의 위력이란.
그나저나 좀 있음 환갑 될 아들 눔 걱정은 이해는 가지만, 도대체 뭐 하러 그런 전화를 해서 평화로운 저녁을 콩가루 내시는지, 아무리 이바구를 해도 그건 내 권리야라고 강변하는 노친네의 고집도 감당되덜 않고. 중간에 쥐포처럼 끼어 있자니 짜증 나고 그렇다고 의관 정중히 갖춰 다니긴 더 싫고.
하기사 입성 보고 대접하는 세상이니 조금은 맞춰야겠지만..
아침에 가게 문을 열면 다들 열심입니다. ㅋㅋ 그걸 보고 있자니 속으로 묘하게 뒤틀린 심사가 나오며 '그려, 비럭방에 똥칠할 때까증 살아라. 난 누가 뭐래도 삼겹살 배 터지게 먹고 움직이다가 갑자기 뒈질란다.' 쫑알거리네요.
맞은편엔 스포츠 댄스실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다이어트 목적이지요. 나 못지않게 요란한 음악소리까진 좋으나 문젠 무단 주차입니다. 예전 복싱 체육관에 처음 등록하러 갔을 때 일입니다. 도장은 5층, 아무리 봐도 엘리베이터가 없습니다. 하여 경비 아자씨에게 물어보았더니 답하길 왈,
'운동하러 온 놈이 엘리베이터는 왜 찾아? 걸어 다녀!'
증말 운동하러 오시면서 왜 차는 갖고 오셔요? 그러니 살이 빠질 리가 있남. ㅋ
그제 티브이를 켜니 대머리와의 염문설로 턱주가리 여사의 분노를 사 자궁까지 덜어냈다는 모 탤런트가 나옵디다. 헉... 저게 모야? 얼굴이 빵실빵실 잔주름 하나 없는 것까진 봐줄 만한데, 어째 미쉐린 타이어의 스노우맨 같기도 하고, 방금 쪄낸 호빵 같기도 하고. 자릴 잡으려면 시간 좀 걸리겠죠?
그게 참... 여자들에겐 중요하나 봅니다. 한땐 세상을 호령하다가 지금 영어의 신세가 된 한 여자분도 그넘의 가죽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고, 그 여자를 파면시킨 한 분도 그 바쁜 와중에도 파마용 기구를 뒤통수에 달고 오실 정도니, 무심하게 오는 시간 맞아 같이 늙어가며 그저 내 얼굴에 나타날 심상만 추하지 않았으면 하는 소원은 공허한 개소리 같기만 합니다.
수많은 기술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돈 있는데 남이사 소파 가죽 갈듯 깝데기 갈면 어떻고, 일 년 치 식량보다 비싼 신발 쪼가리에 열광한들 무슨 흉이 되겠냐 만은....
지나온 세월만큼, 아니 더 여물어가야 하는 게 내 속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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