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길 위에서 묻다

국가의 범죄 행위에 대해선 소멸 시효란 없다.

운산티앤씨 2018. 6. 15. 11:03





오늘 자 신문에서 과거 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18년 동안이나 옥살이를 하다 나온 양반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요지는 무죄를 선고받고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해서 1심과 2심에서 승소하고 17억이란 배상금을 판결 받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씨가 정권을 잡으면서 대법원에서, 그간 문제 삼지 않았던 형사보상 결정 확정일로부터 6개월 이내 제기란 절차를 어겼으니 법적 효력이 소멸되었다고 판결해 버리자, 국가는 번개 같은 속도로 이 양반에게 부득 이득금 반환 소송을 제기를 통해 돈을 되찾는 절차에 들어가곤, 이젠 이자까지 쳐서 10억을 국고로 환수하란 판결을 받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양승태 대법원장의 부패 정권과의 재판 거래설입니다만, 내가 보기엔 그 이상의 무엇이 존재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한편 댓글을 보니 그렇게 따지자면 과거 정권 하에서 억울한 이들이 하나 둘이냐, 그런 사람들 다 보상해주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리고 국가도 법인이니 당연히 소멸시효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듣보잡 말쌈들이 난무합니다.

물론 하나의 예를 들어, 조선 시대에 억울하게 역적 누명을 쓴 뒤, 삼족이 멸해지는 극형에 처해지고 풍비박산이 난 집안까지 지금 구제해 주잔 소린 아닙니다. 하지만 해방 이후 수립된 정권 혹은 임시 정부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정권까지는, 대한민국이란 소멸되지 않은 현재 진행형 국가를, 바통을 이어가며 통치하는 시스템으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단절성은 인정될 수가 없다는 견해이지요.

이 양반의 경우만 그럴까요? 이승만 정권 하에서 속칭 빨갱이 사냥이란 미명 하에 수많은 시민들을 무참하게 살육을 했지만 제대로 된 보상 한번 이루어진 적 없고, 가까운 과거에 일어난 광주 민주 항쟁 역시 여전히 더디게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일제의 앞잡이로 이미 그 정체가 백일 하에 드러나고 있는 박정희에 의한 억울한 이는 또 얼마나 많은지요.

국가 범죄의 처벌이나 배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달리 있지 않습니다. 그 뒤를 이은 자들이 어떤 목적으로 덮었거나, 부당한 법률체계가 방해하고 있거나. 비록 존재했던 타임 라인은 다른 양자이지만 논리적으로 공동정범입니다.

더 쉬운 예를 들어 보자면 전직 공무원인 A가 범죄적인 행위를 하고 퇴직, 그리고 숨졌습니다. 그 뒤를 이은 후배 공무원들은 그의 범죄 행위를 들춰봐야 조직에 누가 된다 생각하고 입을 닫고 증거를 인멸합니다. 그리고 항의하는 민원인에게 정부 기밀이라 보여 줄 수 없다, 혹은 이미 폐기처분되었다 식으로 모르쇠 하든지 아니면 그때 이의를 제기하셔야지 지금 와서 어쩌냐고 강변합니다.

혹은 그러한 행위는 5년, 7년 후에는 시효가 성립되니 어쩔 수가 없다고 하지요. 글을 읽는 분은 과연 이런 주장들이 타당하다고 보십니까? 거대한 국가 권력 앞에 개인은 개미만도 못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들리지도 않고 정당한 법에 의지하고자 해도 보이지 않는 권력의 위협에 숨을 죽여야 합니다.

기사에 난 양반에게 주어진 17억, 그게 과연 그가,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잃어버린 시간과 고통의 보상이 될 수 있을까요? 제아무리 부자라도, 10조를 갖다 바쳐도 단 1초의 시간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난 이 사건의 핵심은 보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게 덮은 이유는 바로 타락한 아비의 과거를 덮어야만 자신이 살고 그 후대가 세세토록 영광을 이어가야 한다는 한 어리석은 광대의 터무니없는 광기에 엄격히 권한을 행사해야 하는 자들의 아첨이 야합한 또 다른 권력의 범법행위라고 봅니다. 즉 주장하는 바는 과거 정권의 청산되지 않는 범법행위는 당연히 부역하는 공동정범이 있었기에 가능하므로 소멸 시효란 언어도단이란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적폐 청산한답시고 지금 자리에 앉아 있는 조무래기 몇 명 걸러 콩밥 먹이는 쇼는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직도 대한민국의 국부라는 칭호를 받고, 경제 발전의 영도자란 가면을 쓰고 전국 방방곡곡에 칡넝쿨처럼 살아 있는, 국립 현충원의 두 인물을 다시 파내서라도 역사의 심판을 받게 해야 진정한 적폐 청산의 프레임이 완성될 것입니다.

이 사건은, 그리고 아직 나오지 않은 법과 부패 정권과의 야합들은 후배 법조인들에게 풀 수 없을 정도로 얽힌 실뭉치가 되면서 요즘 자주 떠드는 스모킹 건도 될 모양입니다. 지고하신 대법원에서 확정한 판결 중 뒤집어야 할 게 하나 둘입니까? 그건 무참한 자기 부정인데, 현 대법원장이 저토록 장고하는 심정도 이해할 만도 합니다만, 만약 이대로 셀프 조사하고 대충 덮는다면 그들 역시 타임 라인 다른 공동정범으로 훗날 심판될 겁니다.

조국에 충성하란 소릴 교과서에 나불대기 전에, 이런 억울한 이들은 비록 법이 가로막고 있더라도 한을 풀어줘야 본보기가 되니, 자발적인 충성은 그렇게 강변하지 않아도 나오기 마련입니다. 어찌 세월이 지났다고, 내 정권 하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니 모른다고 떠벌리면서 세금 걷고 충성하라 하겠습니까? 그 피해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여전히 고통받는 후손들이 통곡하고 있는데?

국가에 대해 비아냥거리고 비협조적이고 냉소적인, 수준 낮은 민도라 비난하기 전에 그렇게 만든 장본인들이 먼저 반성해야 할 듯싶네요?

그나저나... 그날 작전에 투입되었던 특수부대 명단과 지금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왜 밝히지 않습니까? 명령 불복종은 비록 전시 중 사형해도 마땅하지만 어쨌든 범죄행위이고 범죄자들인데 왜 밝히지 않는 건가요? 소중한 개인 정보 보호입니까? 난 왜 지금까지도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이가 없는지 대단히 궁금합니다?

이제 제대로 날 선 칼을 쥐어 주었으니 망나니 춤도 제대로 흔들어 주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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