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여러 가지 거짓말을 일삼았지만 지금도 낯짝 뜨뜻하게 만드는 뻐꾸기는 역시 믿어 혹은 믿냐 입니다.
'오빠 믿지?'
'너 나 못 믿어?'
'당신만큼은 날 믿어 줘야지.'
중국 소주에서 목격한 일입니다. 이쁘장한 중국 여대생 하나가 망설이고 있네요. '오빠 못믿어?' 보니 한국 유학생 같은데 투나잇 버닝을 위해 목하 작업 중입니다. 이걸 뒹국어로 하면 니 뿌 씨앙신 워 혹은 따꺼 마? 같은 유교권이라 필 꽂힌다고, 육포 냄새 맡은 강아지 마냥 쫄래쫄래 따라가진 않죠. 헌디 고롷게 쳐씨부리는 걸 보자니 은근 울화통이 솟구치더군요. 왜? 나두 모르지. 하여 심통스러운 투로 먼 곳을 바라보며 이리 말해 줬습니다.
'에라이, 미친 뇬아, 믿을 걸 믿어라.'
헤헤...
한류 바람 타고 한국어과 설립이 붐이었고 다들 한국어 배운다고 난리였으니까, 초는 지대로 발라 줬지요? 그 때 작업하던 시방새야. 형이 존나 미안했다. ㅋ
1. 사람을 믿지 마라.
1) 친구를 믿지 마라.
너를 위해 목숨까지 버려 가며 우정을 지키는 친구는 천년 전에 다 죽었다.
2) 남녀 관계에서 서로 믿지 마라.
이미 그런 시스템은 붕괴되었고 최소한의 도덕심도 기대하기 어렵다.
3) 남편을, 마누라를 믿지 마라.
자식은 더이상 믿음의 볼모가 아니다. 등 돌리면 남보다 못한 사이다.
4) 부모형제도 믿지 마라.
믿은 만큼 니 책임이 커진다. 적당히 거리 두고 냉정하게 살아라.
5) 회사를 믿지 말고 모임도 믿지 말고 모든 사회적 모임 자체를 믿지 마라.
네가 없으면 허상이다. 네가 떠나면 존재의 이유조차 불분명해지는 허깨비들이다. 너에게 하나를 주면 둘, 셋을 바라며 그 먹성은 한이 없으니 절대 맹종하지 마라.
2. 자신도 믿지 마라.
넌 스스로 믿을 수 있는 존재라 여기느냐? 가장 배신 당하기 쉬운 상대는 자신이다. 항상 자신을 의심하고 테스트해라.
3. 그럼 누굴 믿으라고?
내 생각은 이렇다. 믿다가 배신 당하고 속 상해하며 시간 낭비 하느니 원래부터 그런 존재들이라 여기고 가벼이 대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관계란 무릇 바닥이 없었다. 인위적으로, 말로만 관념적으로 만든 토대 위에 사상누각처럼 아슬아슬하게 서 있을 뿐.
이상한 논리같지요? 좀더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인간 세상에서 생기는 모든 종류의 네거티브한 에너지의 발원지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인간이 못돼먹어서? 환경이 그리해서? 자라길 드럽게 자라서?
혹시 개나 돼지가 그런 네거티브한 감정에 휘말려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모습을 보신 적이 있나요? 있긴 있네요. 잘 먹고 있는데 밥그릇 강탈하거나 이유 없이 두들겨 맞으면 반응하죠.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대부분의 슬픔, 좌절, 분노, 배심감따윈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이큐가 낮아서?
우린 태어나면서 부터 믿음과 배신에 대해서 배웁니다. 그러나 믿음의 객체는 언제나 나와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주체는 기대치라는 걸 갖고 있지요. 즉 모든 분쟁과 그로 인한 감정적 흔들림은 바로 이 믿으라는 사회적 압력에서 부터 생기는 겁니다. 어떤 사회건 믿음이라는 기초가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배신을 당해도 그건 그때 가서 화를 내든가, 아니면 복수를 하든가 또 아니면 법대로 하든가.
하지만 대단히 우습게도 믿으라고 한 댓가로 받은 배신에 대해선 누구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알량한 법이 있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아니 믿으라고 하고선 아무도 책임지질 않는데 왜 믿으라고 가르치나요?
역설적으로 믿음이 독실해서 망한 이들은 많은만큼, 의심이 많아 성공한 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사는게 피곤합니다. 난 그런 성공을 위해 인간에 대한 믿음 대신 의심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멋진 차에 대궐 같은 집, 한강물처럼 마르지 않는 돈줄을 가진 삶은, 이 나이에 이르면, 다 부질 없어 보이게 됩니다.
난 나나 내 아이들이 모든 사물에 대한 과도한 맹신과 그로 인한 배심감때문에 상처 받지 않았으면 하는 겁니다. 어떤 놈이 10만 원을 빌려갔습니다. 없다고 하면 됩니다. 보았어도 누가 줘야 한다고 하면 그뿐. 하지만 다들 그리 못합니다. 믿으니까 꿔주지요. 안주면 슬슬 악이 바칩니다.
하지만 그 새낀 원래 그래라고 생각한다면 주가나 말거나. 물론 그런 식으로 막 퍼주란 건 더 아닙니다. 이 사회가 강제하는 믿음에 대한 믿음을 버릴 때 비로소 내 영혼이 편하다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도를 이룬 성인군자들, 입으론 사람을 믿으라고 하지만 이미 그 속에선 믿음이란 단어 자체를 지웠습니다. 그래서 성인과 군자가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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