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길 위에서 묻다

이원복 교수의 EBS 강연에서..

운산티앤씨 2021. 2. 24. 13:17

.

이 프로그램을 본 때가 아마 1개월 전쯤으로 기억합니다. 조금 충격적인 내용들로 채워져 있어 옮깁니다.

.

이 이야기에 앞서.. 이미 역사에 대한 재해석 과정을 인기 연예인들이 패널로 참가하고 명망있는 역사학자나 교수 혹은 교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역시 대표주자는 설민석씨였지요. 거침없는 말솜씨에 해박한 역사지식은 단박에 그를 스타덤으로 올렸지만 등장 초기부터 어쩐지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

예를 들자면 독립선언문 낭독 후 기생집에서 기생들을 옆에 끼고 술을 마셨다든지, 그 중 대다수가 나중에 일제 부역자로 전락했다든지. 어쩌면 우리가 배워 알던 주류 역사의 얼굴에 조금씩 먹칠을 하는, 소위 말하는 좌파적 색채가 짙은 발언들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물러서기 직전 터진 세계사에 대한 일부 오류와 논문 표절건은 그에게 결정타를 주었고 결국 그는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

흠.. 하지만 말입니다. 역사적인 오류는 몰라도/사실 이것도 그렇게 까지 발끈하며 열을 낼 대단한 오류도 아닙니다만, 논문 표절은 실로 수상쩍기 짝이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그 정도는 보통 관행처럼 지나가는 게 아닌가. 아닌 말로 마음 먹고 다 털면 학위 받은 자들 중에 표절로 걸리지 않은 자 있겠는가. 결국 입 바른 소리를 하다가 타겟이 된게 아닐까 싶은 거죠.

.

서론이 길어졌습니다만 이원복 교수가 진행한 2차 세계대전사에 대한 강의는 설씨보다 더 과격하고 생경하더군요. 그 방송에서 이교수가 내뱉은 발언 중 강력한 것들을 꼽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제 2차 세계대전의 진짜 주역은 미국이 아닌 소련이다.'

'미국이 한 게 뭐냐. 헐리우드에서 만든 영상 속의 영웅들일 뿐 그들은 이미 소련에게 대패해서 그로기 상태인 독일전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다.'

'동유럽이나 중국. 북한의 공산화는 이런 소련의 위력에 감화된 탓이다.'

'우리나라가 두동강난 첫째 이유는 미국이 소련에게 분할 통치를 먼저 제안했기 때문이다.'

정확한 기억인지는 아리까리하지만 대강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

실로 '뜨악'할만한 내용이었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이 아닙니다. 유럽을 발 아래 두고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욕에 불타올랐던 프랑스의 나폴레옹을 격퇴시킨 1등 공신은 다름 아닌 제정 러시아입니다. 혹자는 혹독한 기후 탓이라고들 하지만 지형지물과 기후를 포함한 모든 동원가능한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 것이 국가간 전쟁이라고 본다면 나폴레옹을 승리에 도취하게끔 만들어 내륙 깊숙이 끌어들여 격퇴한 그 전략은 나같은 문외한조차도 불알을 탁 치게 만들 정도로 묘안이죠.

.

독일 역시 마찬가지. 언젠간 부딪힐 소련이라면 미리 선공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지만 역시 나폴레옹의 전철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되밟아 괴멸의 수순을 밟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

그러나 미국은 유럽이 불바다가 되어도 개입하지 않겠노라 공언했고 물자만 공급했죠. 이런 미국의 이기주의적인 태도는 결국 지금의 세계 최강을 만들어내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만, 그런 미국을 전쟁으로 끌어들인 건 일본이었고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동남아와 태평양을 둘러 싼 패권 다툼때문이었습니다. 즉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하면서 벌어지긴 했지만, 도발은 미국이 먼저 했고 결국 전쟁의 성격 자체가 그다지 정의에 기반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몇번이나 언급했지만 이 둘은 카쓰라-테프트 밀약부터 우릴 등처먹은 게 한두번이 아닙니다. 일설에는 IMF 역시 일본의 어음 돌리기였다는... ㅎㅎ)

.

이 대목에서 이교수는 러일 불가침 조약을 언급하며 조약의 배경으로 내몽고에서 2차에 걸쳐 벌어진 할힌골 전투를 꺼냅니다. 그리고 이 전투에서 처참하게 패했던 일본이 불가침 조약을 고수하는 바람에 히틀러의 소련 침공이 무위로 그치게 되었고 궁극적으로는 2차 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

무슨 소리냐. 독일이 레닌그라드까지 치고 올라가자 혹독한 시베리아의 겨울 바람이 몰아쳤고 본토에서 너무나 멀고 길게 형성된 보급로를 공격받아 위급해지자, 다급하게 동맹국인 일본에게 소련의 후방인 극동을 공격해 달라는 요청을 한 거죠. 그러나 이미 할힌골 전투에서 공포에 가까운 패배를 맛본 일본은 두번 다시 소련과 맞설 생각을 못했고 불가침 조약을 핑계로 독일을 저버리게 됩니다.

.

결국 백만 대군의 대부분을 상실하게 된 독일은 허겁지겁 유럽으로 후퇴했고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미국은, 이왕지사 일본과 붙은 마당에, 이참에 유럽에도 숟가락 얹어 득이나 보자는 속셈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해서 승전의 주역이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노르방디 작전은... 결과적으론 성공이었지만 세부적으론 실패작이라는 중론입니다,)

.

이외 다른 내용들도 많으니 한번 보시도록 하고..

.

글쓴이도 나름 역사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육 과정 속입니다.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 할힌골 전투와 그로 인한 러일 불가침조약, 그리고 독일의 결정적 패전 요인이 되었으며 그로 인해 동유럽과 중국이 공산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배우신 분 있을까요? 글쓴이 이후 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글쓴이 혹은 그 이전 세대는 뭔 소리야 정도일 겁니다.

.

이런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을 나열해 보면 만약 일본이 소련의 후방을 쳤다면 이라는 가정은 필연적으로 대두될 수 밖에 없습니다. 독일만큼 소련도 당시에는 전력이 바닥인 상태였고 요즘 들리는 야사에 의하면 당시 독일 역시 핵무기 개발에 거의 성공할 뻔했다는 건데, 이를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일본이, 그리고 소련이 날려 버렸다는 결론입니다.

.

역사는 말입니다. 항상 강자에 의해 쓰여졌고 팩트의 가공 없이 한단면만 비춰도 인식하는 이들에게 대단한 왜곡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이 글이나 이교수의 강의나 그런 역사적 팩트는 지금 패퇴하는 정치세력들에겐 경을 칠 불온 사상이겠지만 그건 국민의 우민화 시대에나 통할 선전문구입니다.

.

지나간 역사의 흐름과 동일한 속도로 미래는 현재가 되고 다시 그 역사의 일부분이 되어 먼 미래의 씨앗이 됩니다. 한때는 우월했던 역사관이었다 해도 효용가치가 떨어지거나 없다면 과감하게 폐기하거나 보다 현명한 공직자와 정치인을 양성할 수 있도록 다각도로 조명하고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

요즘 이상하게도 혐중국에 가까운 정서를 퍼뜨리고 다니는 이들을 많이 봅니다. 김치 문제나 한복과 같은 우리의 이익이 걸린 문제라면 침을 튀겨도 하등 이상할 바 없으나 이들은 그 차원이 아닌 해외토픽감 혹은 동네 사랑방에나 등장할만한 가십거리 조차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는다는 차원에서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그렇다 하여 우리가 중국과 배 맞아서 미국을 등지거나 일본과 척을 세우자는 건 아닙니다. 모름지기 샌드위치 속의 햄 신세를 헤어날 수 없다면 뭐든 우리에게 득이 되는 쪽으로 생각해서 처신하라는 뜻입니다.

.

맹목적인 신념만큼 사회를 타락시키는 독소도 없습니다. 오늘 날 모든 잡음의 원인들이 대부분이 기실 이 맹목적인 신념에서 시작된다고 본다면 글 하나, 댓글 하나를 남길 때도 신중해야 함을 새삼 느낍니다.

.

유튜브 그만 보세요.

.

https://youtu.be/j1ogk88RQUA

 

.

'세상 이야기 > 길 위에서 묻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을 걷다가...  (0) 2021.03.06
화를 내선 얻을 게 없다.  (0) 2021.03.04
하루 종일 올릴 수 있어.  (0) 2021.02.04
카페 매매? 누구 마음대로?  (0) 2021.01.30
12시간 동안 청소하기  (0) 2021.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