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길 위에서 묻다

길을 걷다가...

운산티앤씨 2021. 3. 6.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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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갈수록 일어나기 싫어지거든. 오늘은 아예 마눌에게 가게 맡기고 느지막한 2시경 나섰지. 햇살이 얼마나 좋든지. 게다가 여긴 아직도 시골 냄새 퐁퐁 풍기는 터라 여기저기 퇴비 냄새가 아주 코를 찌르거든. 아, 바야흐로 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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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 차가 오지 않는 틈을 타서 무단 횡단을 건너고 조금 걸어가니 뭔가가 길가에 웅크리고 있더라. 흐미... 아직도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소 파는 할머니가 길가에서 졸고 있는 거야. 그 몸, 알마나 작아 보이는지 처음에 뭔가 했다고. 피곤에 지친 얼굴엔 주름이 가득하고 아무도 훔쳐가지 않을 채소가 가득 찬 카트흫 잔뜩 움켜쥔 채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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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거리라기 보단 나도 모르게 발이 멈춰지더라. 젊어 열심히 살지 않았으니 저 모양이지, 머 이딴 거지 같은 참견 아닌 진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지. 만약 그 할매가 자지 않고 채소를 팔고 있었다면 욕을 얻어먹는 한이 있더라도 좀 샀을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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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몸이 자꾸 축쳐지네. 당뇨가 왔나 싶어 진단을 받아봐도 수치는 정상, 혈압도 정상. 배 튀어나온 거 빼면 괜찮은데 움직이기 싫어. 단순히 살이 쪄서가 아니야. 심지어는 방안에서 공부하는 딸래미 불러 물 한잔 달라고 했다가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었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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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이야기했던가? 우형이 부모님댁에 가니 두 양반이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들어서는 아들을 반기기는 커녕 멍하니 쳐다보고 있더라는. 그 모습도 겹치며 나 역시 저리 되는 날이 멀지 않았구만 하는 난데 없는 자괴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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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는데 갑자기 생각이 니사 오마니를 찾았지. 전화를 안받으시더만. 어딜 갔나. 좀 있다 전화가 와선 이리시는 거야.

'니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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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코, 또 뭔가 트집 잡혔구나. 뭐요 하니 본인 생신이라네. 이미에 땀이 맺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며 이걸 어째 수습하지? 아니 이 여잔 왜 그걸 못외워서. ㅎㅎㅎ 그러는 난 장인.장모 생신 가본 지가 까마득한데. 열심히 카톡을 날렸더니.

'오늘 아닌데? 뭔소리 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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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이라 알려준 날을 짚어보니 다음 달인 거야. 아니 이 양반이 갑자기 사람 겁나게 왜 이래 싶었지. 왈, 생일은 빨리 쉬어도 된다나. 그런게 어디 있냐. 작은 이모도 전화가 와선 나이도 헷갈려 한다나. 큰일이라고 하는 본인은 정작 폰 잊어 버리고 낯선 이가 그 폰에서 내 전번으로 전화를 걸었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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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눈여겨 보는 기사가 뭔지 알아? 내가 알던 유명인이나 연에인의 부고 기사지. 혹시 구글에 2020 사망이라고 검색해 봤어? 익히 알만한 수많은 이들이 소리도 없이 사라져 갔더라구. 그 중엔 아니 이 사람이 웬일로 할 정도인 경우도 왕왕 있어. 작년 말에 쪽팔리지만 그 짓을 하고선 혼자 오밤중에 눈물을 훔치기도 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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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두서 없는 이야기지만 말이야. 정말 돌아보니 쏜살보다 더 빠른 것이 과거 속의 시간들이더만. 그 오랜 세월이 간당간당 끈을 이어 떠오르는데 순식간이야. 그리고 그때 내가 맞이하던 시간은 지금 폭주 기관차보다 더 빠르게 나에게 달려오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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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하지만 메모리 임플란트가 언제 나오나 생각도 자주 하지. 지금 기술 발전 속도로 봐선 나 죽기 전에 그런 일들이 벌어질 것 같은데. 그러니까 교체 가능한 인체에 기억과 사고체계만 이전시켜 영생하는 방법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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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도 요즘 심드렁해. 내 좋은 기억의 대부분을 차지할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데 나만 온갖 더러운 꼬라지 보며 살아야 할 이유가 있겠냐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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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지기 낙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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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작서아다 만 글에 올릴 영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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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ub6cukzt9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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