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길 위에서 묻다

여론 재판, 마녀 사냥, 키보드 워리어

운산티앤씨 2018. 6. 5. 21:45


Moon River - Breakfast at Tiffanys



온라인 세상이 도래하며 느끼는 가장 바람스러운 건, 그 누구도 정보를 독점할 수 없으니, 또 누구도 감히 예전처럼 대세를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이미 음험한 의도를 가진 댓글이나 무차별적인 게시글의 도배와 유포는 과거보다 더 쉽게 대세를 왜곡할 수 있음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여론 왜곡 시도는 대체적으로 그럴싸한 논리와 큰 위기감을 불러올 수 있는 이슈와 함께 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려내기 어려운데다 조금이라도 무게 추가 나쁜 쪽으로 기울면 사람들이 호도하고 진실을 묻어버리니, 어쩌면 특정 권력의 여론 통제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가 아닐까요?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문제가 되는 건, 법이나 규칙을 넘어선, 정서에 호소하는 마녀 사냥식 여론 재판, 그리고 이를 이끄는 키보드 위리어들과 생각없이 뒤 따라는 무리들입니다. 앞뒤를 재어 보지도 않고, 한쪽의 말만 듣고 무리로, 떼거지로 몰려 다니며 특정인을 지목해서 모욕하고 조리를 돌리고선, 정작 그 혹은 그녀가 무고했음이 밝혀지더라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연기같은, 그러나 대단히 위험한 대중들의 아무말 대잔치입니다.

오늘 전직 대통령을 과감하게 구속 수감해서 칭송을 듣던 법조인이 돈 많고 말 많던 어떤 여편네를 풀어주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분명히 국민적 정서에 반하는 건 동의하지만, 그러나 법리적으로 그가 맞는지 틀렸는지는 누구도 가늠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고 물어보신다면 우리가 합의한 법이 정한 자격을 그는 정당하게 통과해서 가졌고, 그는 또한 우리가 동의한 법에 의하여 권한을 부여받았고, 그리고 또 우리가 달리 동의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판단을 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선 누구도 무작배기로 법을 어겨가며 토를 달거나 이의를 제기해선 안됩니다.

이 글에 대해선 반감이나 이의 제기는 분명히 하실 수 있습니다만 다음의 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아무리 피해자라도 사적인 처벌이나 법의 밖에서 가해자를 위해하는 건 엄연한 범법행위이고 처벌의 대상입니다. 더하여 그에 대한 분노와 성토는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법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 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내가 보기엔 이미 그 수위를 넘었습니다.

청와대 게시판은 키보드 워리어들의 놀이터가 아닙니다. 어쩌면 그보다 상급기관일 수 있는 곳에 법을 지키라고 외치는 본인들 스스로 그 법들을 어겨가며 당연한 권한을 행사한 이를 처벌하라고 난동을 부리는가요?

대부분 모 국회의원 싸대기 건과 비교를 하시던데 따져보면 내용이 많이 다릅니다. 주먹으로 갈기는 장면이 그대로 노출되었고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현행범입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몇년 전 영상과 입증해야할 것이 많은 증언들입니다. 싸대기남의 경우, 검찰의 구형 1년은 말 그대로 형을 그리 달라 요청한 것이고 법원은 전후 사정 따져 징역 6개월에 집행 유예 1~2년 정도로 끝낼 겁니다. 지금은 교도소가 아닌 구치소에 있으니 그건 물의를 일으킨 만큼, 자숙하고 있으란 의미 정도로 받아 들이면 됩니다.

여기서 이 친구가 억울한 걸, 나 역시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만약 불구속으로 벌금 정도 때렸을 경우의 파장은 만만찮을 겁니다. 우선 개나 소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주먹질을 해도 가벼이 여길 테지요. 그러나 더 큰 문젠 이를 얻어 터진 놈이나, 그넘이 속한 정당이 정치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거죠. 그런데 더 세게 패주니, 지금 얻어터진 놈이 불편할까요, 아니면 구치소에 있는 그가 불편할까요? 생각은 좀 하구 삽시다?


한편 우린 그 여자가 과거 저질러온 악행에 대해선 많이 들었지만 어디까지나 말뿐이고, 애매한 녹음과 법이 정한 폭행의 정도로 따지면 비교적 가벼운 욕설과 밀침 밖에 없는 동영상만 보았을 뿐입니다. 그 법조인 입장에서 공정해야 하니 양자의 말을 다 들어보고 검찰이 모아온 객관적 증거를 검토해서 판단했을 테지요.

하지만 그가 보기엔 피의자가 해명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고 증거라는 것도 따져봐야 하리라 판단했다고 보여집니다. 게다가 도주의 우려도 없고 정작 증거인멸이라는 행위도 피해자와의 사전 접촉을 통한 합의입니다.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방어적 행동이 아닌지요?

구속을 함부로 남발하면 안됩니다. 판결 전까진 모든 피의자는 무죄라는 법률적 기본 이론을 모르시는 건 아니겠지요? 따라서 인신의 구속은 정말 신중해야 하며 특히 재판 중 논란이 불 보듯 뻔하다면 엄중히 자제되어야 할 공권력입니다.

설마 살다가 빤쓰에 똥 뭍힐 일이 단 한번도 없을까요? 하두 촘촘한 법망이라 누구든 걸려들면 빠져나갈 수가 없는데, 여기에 의심과 정황 증거, 그리고 여론만으로 마구 구속해대면 그 피해는 머잖아 고스란히 나와 당신들에게 밀어닥칠 겁니다.

그리고 주어진 권한이 부당하고 불합리하다고 여기면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입법자들을 제대로 뽑아, 공정한 법집행이 되도록 하면 됩니다. 악법도 법입니다. 그러나 이건 오래 전 제왕적 통치자들이나 특권층의 입김이 들어간 개소리이니 굳이 들먹일 필요까진 없겠지만 논란이 된 그, 그리고 말처럼 부패하고 부조리하다면 증거를 갖고 검찰로 가든지, 아니면 차기 입법자 선거때 제대로 뽑아 그가 이번에 취한 월권적인 (?) 행위에 제한을 가하면 될 일입니다.

지금 국회의원들이 정말 우리랑 상관이 없는 자들입니까? 저렇게 퍼먹고 놀며 부패를 누워서 떡먹기로 저지르는 자들을 뽑은 이들은 중국인들이 아닙니다. 바로 투표권을 가졌던 우리들입니다. 그때는 무관심하고 냉소적으로 지내다가 이제와서 난 모르는 일이었다고 하기엔 너무나 무책임하지 않습니까?

과거의 키보드 위리어들은 어느 정도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그리고 키보드 워리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실과는 무관한 세상이 이미 완성되었고 그들은 이미 그곳의 기성 세대들입니다만 과연 그들 중 과연 어느 정도가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가지고 그 세상을 모르는 노땅들과 새로 진입하는 신입들을 제대로 된 길로 인도할까요?

키보드 워리어들은 이제 정말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킹은 그 중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엑스맨을 능가하는, 타인에 대한 통제도 가능할 뿐더러 염력과 같은 힘을 가진 글과 그림으로 사람도 죽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보기엔 오늘 일은, 그런 키보드 워리어들의 무책임한 선동질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위험스러운 존재로 여기는 이들은 분명치 않은 경계에 선 자들입니다. 이들은 시류에 영합하여 이익만 취할 뿐 남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소시오패스적인 기질을 다분히 가지고 있으며 정체를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모든 여론의 향방과 벌어질 여론 재판과 마녀 사냥은 색깔이 분명치 않은 소시오패스적인 회색 키보드 워리어들의 캐스팅 보트에 의하여 좌지우지될 전망이라 실로 두렵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