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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는 형용사고 매드도 형용사, 매드니스는 불가산 명사가 되겠음돠. ㅎㅎ
보통 내가 이 단어를 쓸 땐 크레이지는 내가 미쳐 혹은 날 돌게 만들어 란 표현에, 매드나 매드니스는 나 아닌 진짜 떠라이를 언급할 때 주로 씁니다. 요는 크레이지는 나를 둘러 싼 주변때문에 내가 돌아 버리는 것이고 매드니스는 나에게 영향을 주는 요소 자체가 광기에 휩쌓여 위험한으로 해석을 하고 있다는 점이 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의 우린 장구한 세월 속에 정의란 가면을 뒤집어 썼던 진성 매드니스들의 진면목에 놀라 내셔날허게 크레이지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미국 영화에선 유난히 히어로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즉 현실에 있지 않을 법한 전지전능한 영웅들이 나타나 악당들을 해치우고 정의를 실현한다는 그 판에 박힌 스토리에 수많은 이들이 열광을 합니다만 난 예전부터 그건 그 사회가 그만큼 정의가 실현되지 못한 탓이 아닐까 하는 해석을 했습니다.
즉 현실에선 꿈도 꾸지 못할 영웅과 우상을 통한 대리만족 정도.
아마 그동안 쓴 글을 주욱 보시면, 아노미적이고 아나키스트적이며 심지어는 위험천만한 좌파의 영역에서, 반기업적인 정서를 가진 사이코가 아닌가 싶으셨겠지만 요즘 벌어지는 일들을 정확하게 눈을 뜨고 본다면 전적으로 나만 돌진 않았으리라 생각하실 겁니다.
국시가 반공이니 용공하는 놈들이나 간첩, 간세 잡으라고 준 돈으로 멀쩡한 이들을 두들겨 잡아 출세의 지름길로, 정권의 방패막이로 이용했음이 속속 드러나며 전직 수장들이 줄줄이로 콩밥을 먹질 않나.
법법자 잡으라고 입혀준 제복 입고, 늦은 밤 잠도 안자고 댓글질하며 국민을 호도했고 더 높은 자리에서 가운 입고 지휘하라 명했거늘 세력 다툼으로 날밤까며 여자들 주물럭거려 개망신, 친구 협박해 돈 뜯어, 정말 삼류 논두렁보다 못한 소인배들이 득시글 거리질 않나.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법전 들고 정의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할 자들이 밥그릇에 눈이 멀어 정당한 판결까지 뒤집으며 부정한 정권과 결탁하질 않나.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관리들의 부패며 부정.
이들보다 더 큰 도적은 따로 있으니 힘 없는 이들 돈 빨아내서 지들 대물림에 이용하고 이젠 나라를 상대로 겁박하는 자들이고 그런 도적놈들과 결탁한 양아치를 방탄하고 스스로 보호막을 치는데 여념이 없는, 천하에 둘도 없을 꿀보직 개백수들입니다. 그리고 이들 위엔 얼굴마담이었는지, 혹은 실질적인 지휘자였는지 모를 두 양반이 한솥밥을 단란하게 드시고 있고.
더하여 그나마 믿어야 할 시정의 입들은 단 한번도 공인된 국가 고시나 임명장도 받은 바 없거늘, 많이 읽어주니 장땡이란 식으로 완장 차고 사람들 눈가리고 귀 막으며 거짓이나 지껄여대질 않나.
세속과 거리를 두어야 할 성직자들마져 이 대열에서 뒤쳐지면 난리라도 날까 앞다투어 미투 객체들을 자처하시니, 그야말로 온통 매드니스로 가득차 있어 누군들 온잔한 정신을 가질까. 근래 들어 자주 보이는, 그야말로 말도 되지 않을, 크레이지하고 엽기적인 살인 행각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봐도 무방할 듯 싶습니다.
요는 입법, 사법 , 행정이란 삼권 분립을 통한 견제를 통한 포지티브한 발전은 온데 간데 없이, 서로 헐뜯고 이권다툼에 눈이 먼 승냥이떼만 우글거리고, 그 옆에서 뼈다귀라도 얻어 먹을까 어슬렁 대는 대머리 독수리와 까마귀만 악다구니이니 왜 진즉에 여길 떠나지 않았을까, 왜 중국에서 돌아와서 이런 꼴라질 보면 블로그질이나 할까 하는 후회만 남습니다.
매도 많이 맞으면 내성이 생기듯 시나브로 이 모든 일들에 무관심해 지거나 혹은 시끄럽고 힘드니 다 덮고 새출발하잔 개소리가 난 그중 날 가장 크레이지하게 만들 말입니다.
한편 이들 모두... 많이 배우고 잘나 그 자리에 갔을터인데 왜 하나 같이 저 모양이냐. 오래 전 붕당과 다를 바 없고 오늘 날까지 욕을 먹는 간신들의 현세와 같으니, 애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되라 하면 저런 놈 받으라고 오해할까 실로 입 열기 무섭습니다.
하여 작심의 한켠에서 오래 전부터 미뤄왔던, 즉 머리 깍고 목에 칼라해선 어느 깊은 산중 암자로 들어가 바이블이나 목탁치며 읆으며 남는 정자나 분양해 줄까... 그것이 바로 이 미천한 놈이 제세구민의 작은 몫이나 하는게 아닐까 하는 망상이. 하여 스스로 작명하길 프란세스코 그레험 무정 도사라고 할까. 뭐 보나마나 블로그처럼 썰렁하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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