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길 위에서 묻다

부모 자식 간에...

운산티앤씨 2020. 3. 18.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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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눔이 고삐리가 되면서 대가리가 긁어졌다 생각했는지 예전에 없던 버르장머리를 지 어미에게 보이곤 했습니다. 처음엔 좋게 타이르다 나중엔 꿱~~. 아둘들은 다들 애비는 두려워 하기 마련이라. 일단은 대구리를 수구리지만 그 아래 반짝거리는 반항의 눈빛이란. ㅋ

난 나대로 바쁘다 보니 개입의 요청이 있을 때만 나섰고 결국 대삐라 된 지금까지 그 갈등의 앙금은 점점 깊어만 갔습니다. 지난 주, 하여 내가 물어 보았습니다.

'님자. 도당최 왜 그래? 아들하고 왜 사이가 좋지 못하고 매일 얼굴 맞대면 난린고?'

왈, 대학생이 되었으면 지 방은 지가 치우고 먹고 나면 설겆이라도 좀 해놓던가, 알바도 하기 싫어하고 뭐든 마음에 들지 않는다네? 그리고선 이게 또 다 내탓이랴. 마누라를 무시하는 그 더러븐 성깔때문에 아들이 닮아간다나? 워메, 이 무신 구신 씨나락 까먹다 사래 들릴 개소린고? 하지만 한두번 들은 먼산 뻐꾸기도 아니고. ㅋ

이 대목에서 나의 훈육관을 설파하자면, 고삐리까진 강력한 내 통제를 받아라. 그러나 이후부터는 니가 알아서 해라. 머 대단한 교육 철학이 있을 리가 없지요. 존나리 키워 이젠 나 없어도 밥벌이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니 일은 니가, 그리고 내가 뭐라 한들 고삐리 때도 소귀에 경읽기였던 종내기들이 이제사 잘도 따르겠다 싶은 생각입니다.

딸래미가 자퇴를 한다고 했을 때 곁에서 꼬드긴 친구년과 그 에미와 이모란 년을 잡아 박살을 내겠다고 길길이 날뒨 적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방문을 박살내며 그 집 애비 전번 내놓으라고 날뛴 적도 있지요. 니 새끼랑 마누라가 뭐 하고 다니는지 아느냐고 따질 요량으로 말입니다.

내가 화를 내 건 이 미친 잡끗들이 오밤 중에 애를 불러내서 소주 처마시며 이혼한 지들 처지를 징징거리질 않나, 참다 못해 한 소리하면 그나마 하나 있는 친구마져 떼놓으려 하느냐, 이미는 한 술 더 떠선 알아서 하겠지? 결국 그 갈등은 올해 다른 애들보다 빠르게 대학 진학하기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입학하자 말자 내뱉은 말은 역시나 이젠 난 모르겠고 니가 알아서 다 해라 였습니다. 그리곤 그 말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지요. 역시나 고뇬과는 결별하더만요.

그런데 말입니다... 내정 간섭을 그만 두니 신기하게도 그렇게도 꼴 사나운 짓들조차 귀엽게 보이더란 거죠, 늦게 일어나 밥차려 달라고 성깔 부리는 꼴에 어미는 복장이 터져 나가겠지만 난 '마이 무라.' 밤 늦게 들어와도 '차 조심해라.', 혹은 스리슬쩍 용돈도 좀 쥐어주고. 별로 화낼 일이 없더란 거죠.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섭섭합니다. 더하여 다들 걱정하는 직장 문제도' 까짓 백수면 어때? 75으로 정년 연장하면 그럭저럭 한 밑천은 잡아 주겠거니. 그리고선 가면 그뿐인 걸.'

이래라, 저래라도 하기 싫고 그저 내 아는 허접 지식이라도 하나 더 알려 주고 싶고. 자취하는 아덜에게 다시 집으로 오라고 꼬드기는 때도 있습니다. ㅋㅋ

여튼 그제 난 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넌 대체 뭐가 불만인데 어미한테 그렇게 쥘알을 하며 대드냐?' 왈,

같은 잔소리를 반복한다.

이젠 안해도 될 잔소리를 지겹게도 한다. 내 알아서 한다고 해도.

물론 집사람 눈에 그 알아서 한다는 뻐구기가 미덥지도 않고, 마땅치도 않을지 모르죠.

어제 생긴 일입니다. 12시 다 되어 같이 퇴근하고 밥을 먹으니 엥꼬라. 아들은 내일 학교 가야 한다고 하니 밥을 지금 해야 하나, 내일 해야 하나란 결정 장애가 도진 모양입니다. 결국 내일 늦게 나가고 난 아침 먹지 않아도 되니 그만 자고 내일 밥을 지어라.

웅? 5분도 안되어 밥 언제하냐고  물어 봅니다. 헐.... 그리고 같은 결론임을 주지시켰는데 5분 지나 또 같은 소릴. ㅎㅎㅎ 아들눔이 대뜸 이거 봐바, 내가 이러니 화를 내지. 난 웃음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이번엔 빼박 증인까지 있으니 집사람은 느닷없이 나이 타령을 하네요. 뭐 요즘 일하면서도 계속 뭘 잊어먹고 어쩌고.

' 이 싸람아. 그 정도를 갖고 뭘 그래? 난 손에 드라이버 들고 드라이버 찾고 안경 쓰고 안경 찾는다. 됐냐?'

몇 주 전에 진지하게 둘이 앉아 이야기를 했죠. 난 이제 애들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고. 공부가 싫어 자퇴를 해도, 대강 대학생 시늉만 내다 졸업해서 백수가 되어도 난 상관 없다고. 그저 건강하게 내 눈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족하다고 말입니다. 그게 부모가 할 소리냐, 자식이 잘되도록 가르쳐야지 등등. 흐미... 점점 말하는 투가 그렇게 앙숙인 울 오메를 쏘옥 닮아가네요. ㅎㅎ

하여 이르길,

'이 싸람아. 그노무 잔소리들 오늘 첨하냐? 우리들 기억엔 20년은 반복한 거 같은데 그나마 반이라도  들었으니 이정도까지 온 거야. 그만하면 족함을 알고 물러서렷다? 그리고 우리에게 지금같은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있겠냐. 절대 없고 다시 오지도 않는다. 지금 매 순간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냐? 좀 마음에 안들면 그러려니. 알아서 하겠거니. 지들이 개똥 치우지 않으면 우리가 치우면 그만이고 설겆이는 먼저 보는 쪽이 하면 되는 것이고. 결혼을 못하면 어때? 우리랑 같이 살면 더 좋지. 나 힘들어 스피커 들지도 못할 때 도와주면 좋잖나? 직장 못가져도 상관 없다. 우리 지금하는 것보다 조금 줄여도, 그땐 나갈 돈이 줄어드니 덜 힘들다.' 등등.

그러고 보면 집집마다 세대간 갈등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애들이 문제일까요? 맞긴 맞는데 나처럼 애들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접고 마치 갓 태어났을 때 귀여워 어쩔 줄 모르는 눈으로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정말 나쁜 짓만 아니면 상관없다는 식으로. 그러다가 더 나빠지면? 에혀 또 같은 소리 하시네. 그렇게 잔소리해서 나아질 나이가 아니라니까. 그리고 자식 잘되는 게 무슨 내 자랑거리여? 어딜 가서 뽐내려고? 그래, 오래 전 미운 놈 새끼보다 내 아들이 잘나 출세했다고 그 앞에서 자랑하면 지난 날의 상처가 깜뿌랏찌 될랑가?

다 덧없는 몸짓들입니다.

요즘처럼 시간이 소중한 때가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자는 시간도 아깝고 꿈을 꾸지 않으면 섭섭합니다. 즉 나의 뇌는 24시간 돌아가야 성이 차죠. 그런 바쁜 판국에 내 눈에 잠깐씩 보이는 애들, 그런 기대 없던 초심으로 보니 얄밉던 얼굴도 이뻐 보이고 욕 나오던 행동도 아기때 똥 치워 주는 심정으로 변합니다.

너무 다투덜 마소. 살면 얼마나 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