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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딱히 종교로 부터 해를 입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쵸큼의 적대감을 보이는 건, 일반화의 오류라 할 수 있는 성직자들의 비리가 으뜸이오, 그 다음은 그에 못지 않은 추종자들의 탐욕이며 마지막으론 어림 반푼 어치도 없을 상황에서 납작 엎드려 누군가에게 기복하는 기이하고도 이해 못할 행동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건 차치하고서라도 기도를 했는데 가끔 뜬금포로 소원이 이루어지는 걸 보면 그 누군가의 노랫말처럼 '소원을 말해봐~~'라고 속삭였나 싶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것이 그들이 그토록 만나기를 염원하는 존재인지 혹은 그 반대편에 선 자인지는 알 수 없죠.
그리고 다들 드러내기 싫어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만의 리그'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기실 그네들은 뚜렷하게 구분되는 단단한 공동체를 이루고 그 안에서 서로를 위하며 토닥이는 모습을 보이는데 우리처럼 무지막지힌 무교론자들에게선 볼수 없는, 어쩌면 이 사회가 격려하는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일 겁니다. 긍께 못하니깐 배가 아픈 거지라~~.
여튼 서두가 길었는데 요는 기도를 해서 뭔가가 이루어졌다가 아닙니다. 기도를 하는 동안 납짝 엎드려 있었기에 뭔가가 이루졌다고 하는 편이 맞다고 보는 거죠.
오래 전 딴엔 먹물의 농도를 높이보겠다고 이런 저런 잡학서를 사서 읽은 적이 있는데 어쩐 일인지 내용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고 제목만 남더라는. 그중 하나가 버터 플라이 이펙트, 카오스 이론등등이었는데 말이죠, 그러니까 아마존의 한마리 나비의 날개짓이 뉴욕에 허리케인을 불러온대나 어쨌다나. 그리고 후자의 이론은 모든 불규칙 속에서도 어떤 정형화된 규칙이 있으며 이를 활용한다면 미래도 예측할 수 있다나 어쨌다나.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니면 말고입니다.
여튼 말하고픈 건 어떤 일이건 내가 당사자가 아닌 적이 없었다는 거죠. 똥물에 빠진 놈이 당사자일까요? 아니면 튀는 똥물 벼락을 지나다가 맞은 놈이 당사자일까요. 내 입장에서 너나 그가 제 삼자이지만 그나 당신의 입장에선 내가 제삼자가 되는 것이죠. 이렇게 따져 본다면 만사의 중심은 바로 내가 되겠지요?
그러니까 문제의 해결점을 멀리서 찾는다고 법썩을 떨지만 정작 시발점은 나란 걸 항상 잊어버리니까 일이 갈수록 꼬여가는 겁니다. 혹시 유달리 오늘따라 재수 없다고 느끼는 날이 없습니까? 분명히 각인마다 그런 날은 기필코 오고야 말며 개쪽으로 끝난다면 다행이겠거니와, 반대로 인생 종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서두에 말한 기도란, 우리같은 무지랭이 무신론자에겐 아무 것도 하지 않음입니다. 이는 또 버러후라이 이펙트하고도 관련이 있죠. 내가 잘못 뀐 방귀 한방이 온세상을 뒤흔들었다면 그걸 없앤다고 아무리 손짓을 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냥 다같이 코잡고 허공으로 흩어지기만 기다릴 뿐. 그런데 없애겠다고 나대면? 욕만 직사게 더 얻어 먹게 되죠.
이를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카오스 이론에 접목해 본다면 이런 결론이 나오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ㅋㅋㅋ
봐바. 얼마나 간단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지를. 암것도 안하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거이 바로 기도의 요체이고 우린 인생을 아수라장으로 변하게 하는 돌풍을 잠재우는 기적의 비법이라고 할 밖에요.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죠.
아침에 출근했는데 지갑을 두고 왔다. 버스에 탔는데 낭패네. 누가 돈을 꿔주나, 그렇다고 내릴 수도 없고. 기사에게 통사정을 하는데 아니 이런 뉭기리 좃뚜 같은 자슥이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개쪽을 주네? 에라, 내가 누군데 하며 같이 댓거리하고 욕설 퍼붓고. 결국 참다 못한 구경꾼이 경찰에 신고해서 교통방해로 끌려 갑니다. 우째 운좋게 성깔 좋은 포졸을 만나 훈방조치는 되었지만 결국 지각. 회사에 도착하자 말자 부장부터 내리 질알을 해대니 기분 드럽고 아니꼽죠. 그간 잔뜩 쌓여 있었던 차에 한번 박았더니 시말서 써라, 너 뒤질래하더니 급기야 이사가 나서서 하극상으로 징계를 하겠다네? 에라 시바, 드러워서 때려친다 하고선 사표를 휙~~
나와보이? 갈 때가 어디있노? 집에선 마누라와 토끼새끼같은 자식들이 기다리고 있지, 막상 벌건 대낮에 친구도 못만나, 부모님껜 전화도 못해. 급한 김에 거래 관계에 있던 술친구들에게 자리 알아봐 달라고 사정하지만 사연을 듣고선 연락줄께. 연락은 개뿔.
상기의 시나리오에서 대목마다 파국을 막을 기회는 수차례 왔지만 어쩐 일인지 모두 거부하고 종점을 향했지요?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내가 승질이 드런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되었을까. 대갈빡 터지도록 생각해 보지만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내가 좀 참을걸. 그건 지난 뒤 나발이니 소용없고. 하여 쪽 팔리지만 사표 반려 좀 해주십사. 그러나 이미 인력 감축이 논의되는 마당에 자진해서 나간다는데, 게다가 가뜩이나 개기는 스퇄이라 꼴뵈기 싫었는데 억하심정에 더욱 차가운 대접 뿐이더라는.
분석을 좀 해 봅시다. 시작은 어디 부터인가요? 가져 오지 않은 지갑인가요? 아니면 성깔 더러운 버스 기사인가요, 아니면 둋까튼 상사들인가요?
아니죠. 바로 나입니다. 이미 자난 일은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내기 당구 참패 후 혼자서 소불알 같은 당구알 노려보며 다음을 꿈구지만 한번 외출한 겜값은 돌아오지 않죠,
이런 땐 그냥 집에 가서 쿡 처박혀 있어야 합니다. 아무 생각도, 아무 짓도 하지 말고. 밥먹고 똥만 싸란 뜻입니다. 모가지 날린 상사들은 밤새 고민을 하죠. 저 새끼 나가면 받아줄 곳도 없는데 어쩐다? 하여 다음 날 나와 친한 동료를 시켜 전화를 넣게 하죠. 넌지시 떠봅니다. 뭐라고 하더냐? 글쎄, 졸라게 후회하곤 있는데 자존심때문에. 다시 나오라 그래. 새꺄.
이렇게 풀리지 않아도 거래처에서 갑자기 자리가 생겨 연락이 올 수도 있습니다. 잘렸다와 스카우트 제의는 차원이 다르죠?
분명히 이런 기분 드는 날이 있습니다. 앗, 이거 오금이 싸한 게 뭔가 터질 것 같아. 가서 막을 수 있다면 가야하지만 뭔지 정체를 모르겠다 싶으면 걍 다시 집으로 돌아가란 거죠. 깨갱하고 있으면 사태 돌아가는 모습이 내가 아닌 너나 그의 눈으로 보이면서 차근차근 대책이 생겹니다.
일진 사나울 땐 쉬어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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