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즐거운 하루

보험 2

운산티앤씨 2018. 4. 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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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 King Cole sings "When I Fall in Love" - YouTube


모두가 사기라는 걸 깨닫기 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피니쉬 블로우 하나만 빼고. (이건 마지막에 알려 주겠다.)

너나 없이 모두가 동등하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 중에서 최상급 거짓말이라. 거기에도 분명히 세일즈맨, 부매니저, 매니저 혹은 부지점장 지점장이란 직급이 있었고 그 위론 본사의 본부장, 상무, 전무 층층 시하 시월드의 큰 고기들이 득시글거리는 피라미드 구조였다.

말이 좋아 개인 사업이지 그들은 모든 영역에 걸쳐 간섭과 통제를 가했다. 오전 8시 이전엔 반드시 출근을 해야 했는데 그 이유란 게 고작 멘탈 강화란 명분을 내세운 집합교육이었다. 그리고 팀워크란 건 항상 강조되었고. 이 대목에서 개인 사업에서 뭔 팀 퉈크라고 의아해하실 것 같은데, 다른 게 아니고 공통된 시장에서의 사냥법을 공유해서 전체적인 업적을 올리고, 다들 승승장구하는 분위기에서 개인적인 동기를 부여받고 다 같이 성장하자는 주의였다. 언뜻 들으면 틀리진 않은 말이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철저한 독재 시스템이고 개인의 특성을 깡그리 무시되는 반민주적인 운영체제였다.

출근과 동시에 삼삼오오 모여서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는 언제나 긍정, 그리고 시장 정보의 공유와 공략법의 전수에 한했고 불만이나 불평은 용서받을 수 없는 반역적 행위이고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었다.

여기에 대해 반론이 있을 수 있을까. 지금도 당신이 세일즈맨이고 아침에 출근해서 회사의 방침에 대해 투덜거리고 불합리한 점을 지적한다면 즉각 동료로부터, 매니저와 지점장으로부터 반격을 들어올 게다. 네거티브한 분위기 전파하지 말라고.

반성할 게 없는데 무슨 반성이며 내가 가진 시장을 왜 타인과 공유하며 뒤쳐진 자까지 끌고 가야 할 책무가 도대체 왜 나에게 부여되는가? 왜 그들의 공유된 스케줄에 날 맞춰야 하며 왜 만인 앞에서 나의 경험담을 자백하듯 떠들어야 하며, 왜 듣기 싫은 그들의 실패담과 자랑질을 들으며 억지로 손뼉 치며 마치 집단 최면에 걸린 광신도 집단의 일원으로 변해야 하는가? 실로 가소롭기 짝이 없는 개수작이었다.

커피 타임이 끝나면 곧바로 팀 회의가 시작되었다. 역시 같은 주제 하에 어제 있었던 일을 소상히 개인별로 정리해서 발표하고, 다시 또 지점 회의. 기운을 돋우는 음악을 틀어주면 박수와 함께 시작해서 가슴 저리는 사례 공유, 그날 선정된 히어로의 자랑질과 지점장의 오버하는 칭찬과 질타로 마무리되었고 다시금 팀 회의 혹은 개별 면담. 아니 면담할 내용도 할 마음도 없는데?

그리곤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잡소리 없이 전화를 걸어 약속 잡고 점심 전에 튀어나가야 했다. 낮 시간에도 이어지는 감시. 수시로 전화로 어디에 있는지, 별일 없는지 안부를 물어보는데 솔직히 매번 전화기를 바닥에 패대기치고 싶을 정도였다.

이미 지인이고, 또 소개자의 영향력이 있어 그리 큰 낭패는 없었지만 5번의 미팅에서 4번의 거절이 나왔다. 부탁이 아닌 정당한 세일즈라도 거절의 벽은 세일즈맨에게 좌절감과 자괴심을 주기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폭탄이었으니 어지간한 멘탈이 아니고선 한 달을 버티기 어려운 동네였다.

거절조차 즐거이 느낀다면 그건 분명 본인에게 마조히스트적인 경향이 있음이고 거절하는 이에게 끊임없이 들러붙음은 사디스트나 스토커 기질이 다분함이리라. 쉴 틈 없이 똥개처럼 쏘다니다 오면 마음이라도 편해야 할 텐데 다시금 지옥 같은 회의가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고 도돌이표인 삶.

난 분노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어느 날인가 터져버렸다. 마치 땅콩 항공의 조모양처럼 악을 쓰며 더 이상 건드리지 말라, 만약 그만두지 않으면 다 부숴 버리고 나가겠다. 당황한 그들은 달래도 말을 듣지 않는 나에게 왕따란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즉 다른 팀원들에게 접근 금지, 말 섞지 말기 따위 같은 거다.

상관없었다. 난 그 편이 더 좋았고 회의에 들어오지 않아도 좋다고 하는 순간부터 저녁이 있는 삶이 시작되었느니까. 난 처음부터 모든 지점 내 인원들을 내 동료로 인정한 바 없었고 그 누구도 나의 머리 위에 모시질 않았다.

그들은 뒤에서 쑥덕여 댔다. 곧 지쳐 외톨이가 될 것이고 말할 상대가 없어 외로움에 지쳐 다시금 무리로 합류하거나 탈락하거나. 진짜 웃기는 건 그렇게 겉으론 동료애를 보이는 자들이 누군가 탈락하면 그 탈락자의 보유 고객과 시장에 대해 늑대처럼 달려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의 표리부동한 액션과 가식 가득한 웃음 뒤엔 가장 가까이 지내는 자가 탈락하기를 기대하는, 그리고 틈만 나면 멘탈 붕괴시키는 충동질이 너울거렸다.

이는 매니저들 간에도 마찬가지. 말이 좋아 다 같이 라고 떠들지, 속으론 늘 다른 팀이 붕괴되어 잔여 인력을 흡수하기를 고대했고 심지어는 다른 팀원을 부채질해서 공짜로 인력 충원을 노리기도 했다.

하나 이 문제들은 그 회사만의 문제가 아닌, 업계 전체에 구조적으로 고착된 적폐적인 생존 구조였다.

독립을 이룬 난 하루의 시작부터 상쾌했다. 마음껏 늘어지게 자고 나선 다들 나간 사무실에서 책상 위에 다리 올리고 전화를 걸고 웃으며 약속 잡고, 싸간 도시락으로 점심까지 해결했다. 그리고 귀에 이어폰까지 꽂고 흥얼거리며 약속 장소로 갔다. 감이 좋지 않으면 아예 가지 않았고, 만나더라도 의사가 없으면 굳이 강요하지 않으며 밑바닥을 다져나갔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의사를 보이면 절대 놓아주는 법이 없었으니 절대적으로 부족한 약속의 숫자치곤 너무 높은 성공률을 보였고 계약 금액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인에서 시작한 시장은 언젠간 바닥을 드러내리 라는 예측을 늘 품고 있었던 나에겐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 즈음에 인터넷에 눈을 뜬 게다. 이미 갖가지 넷상 생활로 그곳에 존재하는 인격체들의 속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던 나로선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당시 보험 설계사들 사이에선 홈페이지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그 시도조차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던 회사들은 초기엔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홈페이지 영업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언제까지고 남의 글을 옮기고 베낄 순 없고 반드시 본인의 창작이 70% 이상은 되어야 한다. 그러니 항상 쫓기듯 생활하던 이들에겐 적합하지 않은 영업 방식이다.

하지만 독립을 쟁취한 나의 눈에 무주공산, 무한한 시장으로 보이기만 했다. 난 영업 중단을 내심 선언하고 한 달간 홈페이지 구축에 들어갔다. 비록 허접하긴 하지만 내 손으로 만든 가게가 여기저기 검색어에 걸려들기 시작하면서 방문 빈도수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갔다. 물론 그동안은 빈약하게 남아 있던 지인 시장에서 계약을 하며, 모든 지점의 인원들도 모르게 위장을 했다.

비록 1주에 3 계약이란 업계의 룰은 16주만에 깨졌지만, 그 이후엔 1개월 기준으로 달성했으니 결국 2년 간을 이은 셈, 하지만 이건 인정 받아선 안되는 기록이니 또 웃기지 않는가?

하여간 이번 주 실적으로 다음 주에 깰 작정을 하던 그들에겐 김 새는 노릇이었고 트집 아닌 트집은 점차 쌓여만 갔다.

독자들도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점은, 시장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개인 플레이가 주효한 시장은 더더욱 그러하다.

지인 시장과 인터넷 시장이 겹치기 시작하니 실적은 급격하게 상승곡선을 그리게 되었고 완전히 대체되던 시점은 입사 8개월째부터였다. 난 점점 출근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놀다가 틈만 나면 홈페이지를 관리하며 오는 손님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의 고민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메일로, 쪽지로 말이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보험을 먼저 권한 적이 없었다.

부담을 주지 않으니 친밀감이 형성되고 그 친밀감은 머지않아 고객 관계로 이어졌다. 어차피 필요하다면 자신을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이에게. 이는 너무도 당연한 인지상정 아닌가.

시나브로 내 활동 패턴은 큰 변환기를 맞게 된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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