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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 좋게 들어간 회사는 방만한 경영과 때마침 터진 IMF의 파편에 맞아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론 운도 더럽게 따라주질 않아 사태 직전에 난 겁도 없이 송파의 끝자락에 지어진 아파트 33평을 덜컥 사버렸다. 아마 그때 알만한 이들은 이미 한국에 큰 위기가 닥쳐올 줄 알고 팔아치우고 있었을 텐데, 나 같은 평범한 직장인이 어찌 그런 고급 정보를 알 수 있었을까.
그래서 운이라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중요한 결정을 너무도 성급하게 했다는 후회가 막급이다. 물론 당시 어른들과 집사람은 극력하게 반대를 했었다. 하지만 그들도 딱히 근거는 없는 막연한 불안과 우려였으니 자고 나면 치솟는 집값 때문에 부동산 테크 뛰어들지 않으면 나만 바보가 되는 시국의 압박과 나의 황소고집을 꺾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과적으로 난 늦은 나이에 아이들을 태어나게 했고 그 여파는 환갑까지 족히 이어질 터이니 단 한 번의 결정이 가져온 대가치곤 참으로 혹독하다 하겠다.
이때 기획실의 인사담당이 어미새 마냥 나에게 고급 정보를 물어 나르기 시작했다. 난 그가 날 잘 본 것으로만 생각했지만 집사람은 분명히 음험한 속이 들어 있으니 절대 응하지 말고 회사 문을 닫을 때까지 눌러 있으라 했다. 하지만 그는 날마다 날 불러내선 회사의 앞날을 걱정하며 나에게 무언가라도 시도하지 않으면 큰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암시를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나갔고 전해오는 소식에 따르면 모 생명보험사의 매니저로 갔다나. 집사람은 거 봐라, 지가 가봐야 보험 영업인데 가까이 안 하길 잘했다면서도 내내 불안한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그는 나에게 자신의 팀원 1호로 점찍고 물밑 작업 중이었고 그가 보여주었던 그룹의 암담한 미래는 기정사실로 나타나고 있었으니 어찌 흔들리지 않을 수가 있으랴.
게다가 연봉 1억이란 꿈같은 이야기를 나에게 늘어놓으며 개인 사업으로 이만한 게 어디 있겠느냐, 당신같이 영업력 좋고 체력 좋고, 남에게 간섭받길 싫어하는 성격이라면 분명히 성공할 터이고 난 당신을 위해 견마지로를 아끼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게 아닌가.
결국 꼬드김에 넘어간 그가 마련한 자리에 참석해서 지점장이란 자와 면담까지 하고 마누라도 모르게 잡 오퍼까지 받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난 종종 집사람과 밖에서 친구처럼 만나 술잔을 기울이곤 했는데 날을 잡아 내 결심을 이야기했더니 펄펄 뛰다 못해 이혼 이야기까지 나오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가 보여준 앞날을 이야기하며 30대 중반이면 내 사업해야 할 때가 아니냐, 더더구나 투자도 없이 온전히 내 몸뚱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니 걱정 말라고 흰소릴 했다. 결국 눈물까지 흘리는 집사람을 못본 체하며, 사표를 낸 뒤 곧바로 교육에 들어갔다.
그러나 영 콘셉트 자체가 나와 맞지 않는, 그러니까 삼류 따라지 소설의 감성에 호소하며 지인들 등을 치는 영업 방식이었는데 딴엔 소개의 마술이라나? 이미 속으론 큰일 났다 싶었지만 어찌할 방법은 없었고 이미 퇴로는 스스로 차단한 꼴이었다.
성격상 한번 지르면 내가 죽든 상대가 죽든, 끝을 봐야 물러서는 고약함이 있지만 사실 이런 도꼬다이 정신이야말로 영업 사원에겐 필수불가결이 아닌지.
필드로 나간 날부터 난 온통 영업에만 정신이 팔렸고 누가 뭐라 든 개의치 않고 밀고 나갔다. 심지어 그해 크리마스 이브에 처삼촌을 만나 사인을 받는데 그 양반이 이브임을 상기시켜주지 않았다면 난 여느 날처럼 들어와 곤히 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정도로까지 열과 성을 다했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아니 그 일이 아니더라도 그런 소중한 날에 가족까지 팽개치고 난리를 피울만큼 중요한 사업거리는 없는게 사실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난 갈수록 그 동네에서 상식으로 통하는 요상한 영업과 운영 방식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입사 전 한 말과는 전혀 다른 출퇴근. 개인 사업이라면서 무슨 놈의 통제와 간섭은 그리도 주제넘게 해대는지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하루에 전화 몇 통을 어느 시간에 걸고 몇 시부터 나가서 언제까지 활동하고 귀점해선 다시 전체회의, 그리고 팀 회의, 개별 면담까지. 그야말로 꼭두새벽에 나가 12시가 넘어야 귀가가 가능했으나 나에겐 아무 의미 없는 집단생활이었고 억지춘향이었다.
게다가 시장을 계산하는 법이 얼마나 웃기는지, 내가 100인을 지인으로 알고 있다면 각각의 지인도 100인 정도를 아니 그중에서 10인 씩만 소개받아도 금방 1,000명으로 불어나고 이런 식으로 계속 소개 영업을 하다 보면 대한민국 전체가 내 시장이란다. 한편 낯선 이들을 소개자의 영향력을 이용하는 만나서 영업하는 스타일도 비겁하게만 보여 마땅찮기만 했다.
그렇다고 누구들처럼 빌딩 타기도 싫었고 길 가는 아무나 붙잡고 도를 아십니까 따위의 영업은 더더구나 질색.
2001년은 대한민국이 인터넷 강국으로 자리매김을 시작하던 초입이었다. 난 그런 어쭙잖은 소개 영업이나 무대포 영업보단 보다 스마트한 영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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