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Rolling Stones

자식 사랑과 효에 대하여

운산티앤씨 2018. 4. 8.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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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r Shade of Pale - Annie Lennox


우린 어려서부터 티브이를 틀던, 책을 펼치던, 또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건 부모라면 자식에겐 무한 사랑을,  또 자식이라면 부모에겐 허벅지 살이라도 베어내 줄 정도료 효를 다해야 한다고 배웠고 그 두가지 생각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한참 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지탱할 프레임의 가장 굵고 큰 골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난 이젠 용도 폐기되어야 할 대상이고 어쩌면 그것 때문에 전체가 썩어들어가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인간만큼 포육 기간이 긴 동물도 없다지만 이 땅에서 사는 이들보다 더 긴 포육 기간을 가지는 곳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식에 대한 무한 사랑은 이미 장성해서 독립해야 할 자식의 부랄을 놓지 못하는 기괴한, 대가족아닌 대가족이란 형태로 변질되었습니다.

이건 마치 아비 수사자만큼 자란 새끼 수사자들이 무리를 떠나지 않고 무위도식하며 식량을 축내는 모양입니다. 건기의 사자에겐 혹독한 시련만이 있습니다. 먹이가 되어줄 초식동물들은 전부 이동하고 텅 비고 메마른 초원만 바라보며 우기가 다시 오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과연 평온한 사자 무리일까요?

살며 시시때때로 시련은 찾아오지만 가장 혹독한 시련은 은퇴하는 시점부터 시작이 됩니다. 날이 갈수록 쇠락해 가는 노동력과 반비례로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수많은 젊은 경쟁자들을 뿌리치기엔 역부족입니다.

그런데도 무한 사랑을 줘야 할 자식은 그때까지도 품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으며 부모 역시 놓아줄 생각도 없거나 설사 놓아 주고 싶어도 자생력을 키우지 못한 자식이 거부합니다.

하지만 어찌하다 잘난 녀석이 태어나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이번엔 그동안 키운 부모의 은공을 생각하라며 발목을 붙잡습니다. 그렇게 바쁘냐?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와주면 안 되겠니는 정말 양반이고 매일 문안인사를 드리게끔 모시고 살거나, 동거하지 않더라도 주변에 모시고 빠짐없이 이행해야 제대로 된 자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생로병사의 고리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법, 언젠간 자리를 깔고 누워야 할 때가 오건만, 누구도 쉬 보내주거나 갈 생각도 없습니다. 아닌 말로 그동안의 지극 정성 무한 자식 사랑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받아내는 셈입니다.

여기에 또 다른 불화의 상수가 있으니 그건 바로 아내이고 며느리입니다. 전생에 무슨 대역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모든 수발은 그녀들이 다해야 하며 또 마땅히 그리해야 함을 강요하다 못해, 몇몇을 선발하여 효부란 칭송을 주거나 돼먹잖은 열녀문, 효녀비 따윌 세워주고 세간의 칭송을 한 몸에 스포트 라이팅하여 다른 여자들까지 꼼짝달싹 못하게 묶어 둡니다. 다들 본받으라는 무언의 강력한 압력입니다. 난 이젠 매년 시상식에 등장하는 효부. 효자상을 아름답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긴 수발 기간 동안 여자들을 포함한 자식들은 얼마나 큰 희생을 해야 하며 그 손자들은 어떨까요? 내가 여태까지 만나본 이들 중에 이런 문제에서 큰 트러블 없이 부드럽게 넘어가며 하하 호호하는 이는 단연코 한 명도 보질 못했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섭섭하고 자식은 부모가 야속하기만 하며 며느리이자 아내인 여자들은 화병에 걸려 신음하며 그런 아귀다툼을 보는 손자들은 넌더리를 냅니다.

한마디로 전혀 평화로울 수 없는 가정 환경, 불편하기만 한 구조의 가족 관계를 사회가 억지 춘향식으로 압박하는 중입니다. 그러니 혈연간 살인이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지친 남자들은 퇴근을 해도 집에 가질 못하고 밖에서 도는 것입니다.

하나의 작은 사례를 침소봉대해서 마치 전체의 문제인양 호도하고 있는 걸까요? 아닐 겁니다. 그러나 누구도 여기에 대해선 과감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며 소위 말하는 식자층이나 오피니언 리더들도 혹여 다칠세라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이 틀을, 프레임을 바꾸지 않고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요? 어떻게요? 뼈대가 뒤틀렸는데 바꾸지 않고 어찌 온전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나요? 이 모든 사단의 원인은 바로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며 앞길을 막는 유교적 사상입니다. 효를 할 수 있기에 인간일 수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한도와 능력까지만 한다. 자식은 독립할 때까지만 포육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그 이후부터는 다가올 노년에 대비하며 자식은 품을 떠나면 다신 옛 둥지 근처에 얼씬거리며 남는 먹이를 달라고 할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그야말로 너는 너, 나는 나란 공식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그렇게 부러워하는 서양 노인들의 풍요로운 노후는 요원할 겁니다.

그리고 무한 자식 사랑과 효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죽어서도 예우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희한한 사고는 내가 죽은 후까지 걱정하게 만들죠. 아마 은연중에 나 죽고 난 후 자식들이 거지 되면 제삿밥도 못 얻어먹겠지 하는 걱정을 한 번쯤은 해보셨을 겁니다.

아비 보다 잘난 자식도 많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자식들은 아비만 못합니다. 부자 삼대를 못 간다는 말도 아마 이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이는 유한한 자원을, 대가 바뀌면 자리도 바꿔 공평하게 나누라는 자연의 가장 엄중한 법칙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 두 가지는 그 자연의 법칙마저 거스르다 못해 이젠 역행하고 있습니다. 내 자식은 무조건 최고의 교육을 받고 최고의 Job을 얻어 호강해야 하며, 늙은 날 부족함 없이 살도록 해줘야 한다는 강박은 당대를 넘어 어쩌면 오지도 않은 다음 대까지 걱정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대입에서 반칙이 나오고 취업전선에서 선수인 자식 대신 부모가 변칙적으로 끼어들고 내가 가진 부를 념겨주기 위해 편법적이고도 범법적인 행위마저 용납하게 하는 거죠.

따지고 보면 작금 적폐라 일컫는 과거사들의 근원은 바로 이 두 가지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안 해 보셨습니까?

사후 세계를 봤다느니 하는 증언 따윈 이젠 다 헛소리로 치부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과학적으로 이미 사망한 후에도 뇌가 일정 시간 활동하고 있음이 입증되었으니까요.

그러니 내가 죽은 후 자식들이 잘 되지 못해 고생하는 꼴을 귀신이 되어서 보기 싫단 생각이 얼마나 황당무계한지 아시겠습니까? 죽어 천당 간다 지옥 간다. 누구 입에서 나온 소리인가요? 그걸로 먹고살아야 하는 이들이니, 우린 참으로 그들에게 자양분 풍부한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바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의 종교는 기복인 결합된, 다시 말해서 토속 신앙과 야합한 신흥종교의 하이브리드형이며 진화는 커녕 퇴화한 그들은 이미 썩어가는 기둥을 동여매서라도 계속 유지되길 바랄 겁니다.

이젠 이런 생각을 머릿속에 콱 박아두고 살아야 합니다. 난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고 자식으로부터 버림받는 첫 세대이다. 그게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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