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어도 난 못해.'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난 굴복 하지 않아.'
'차라리 날 죽여라.'
물론 이 말들처럼 극단으로 가는 경우는 없지만 우린 늘 이런 식으로, 막가파식으로, 스스로를 코너에 몰아넣는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내 목숨보다 소중한 건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이에서도 툭하면 널 위해서라면 혹은 날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어, 죽어 줄 수 있어? 란 말 같잖은 맹세를 농반 진반으로 내뱉거나 강요하는데 죽는 시늉이라면 몰라도 빈말이라도 그런 식의 언행은 삼가야 합니다.
그간의 경험에 비춰볼 때, 허리 꺾임을 받을지언정 구부릴 순 없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 심하게, 그리고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중국인들의 '커이, 메이쓰, 메이꽌시,'나 일본인들의 '생각해 보겠습니다.', 미쿡인들의 'consider'같은 관용적이고도 애매모호한 언어습관에 대해 어림도 없는 질타를 합니다.
이미 잘 아시겠지만 세상살이하다 보메, 내 뜻대로 된 바 거의 없고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분법적인 사고는 나를 통제함이 아니라 주변의 요소, 즉 통제 불가능한 요소를 통제하려는 경향이며, 이런 성향을 짙게 길러온 자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감히 누구도 엄두를 내지 않는 체계적인 위험 요소까지 통제하려 들지요.
물은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사물에 불과하지만 그것의 속성은 우리가 살아갈 자세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 막히면 둘러 가고, 한 번에 치고 나가기보단 수십, 수백 년 인고의 세월을 통해 바위를 뚫는다든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난 죽어도 못해라는 건 마주친 상황과 타협은 전혀 할 생각은 없으며 그야말로 벼랑 끝 전술로 쇼부를 치자는 자세입니다. 즉 타협의 여지가 있던 상황을 굳이 극단으로 몰고 간다는 거죠.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까요? 그 지경이면 상대도 막판인데?
우린 자라면서 신념과 의지에 대한 투철함이 모범이라고 배워왔으며 이를 배신하는 자는 변절자, 박쥐,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도 붙는 기회주의자라는 비아냥과 집단 린치로 전선을 이탈하지 못하도록 조종 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독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분위기 때문에 진의는 정작 다른 곳에 있으면서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에 자신을 밀어 넣고선 또 극단적인 선택을 실행하고야 말죠.
가장 쉬운 예는 사표입니다. 그만 둘 거야, 때려치워야지, 더러워서 못 다니겠어. 아예 입에 달고 살지요. 퇴근 때만 되면 이런 하소연을 같이 읊어주고 동정해 줄 우군들을 찾아 거하게 퍼마시고선 또 한번 흰소리를 합니다. 주변에서 말리든가요?
말리지 않습니다. 툭하면 농처럼 넌 나간다면서 왜 아직 있냐, 갈 데 없지 식으로 사람 염장을 지르고선 반응을 기다리죠. 그러다가 진짜 사표를 내고 나와선 구들목 장군이 됩니다. 대책도 없고 계산도 없고, 단지 자신이 내뱉은 말에 충실해야 한다는 강박과 주변 시선을 의식하는 황족병일 뿐입니다.
막히면 돌아가고, 또 막히면 잠시 머물고, 내려가야 한다면 뒤돌아 보지 말고 내려가십시오. 물도 오르막을 오를 수 있으니 때가 되면 뒤에서 밀어주니 언젠간 백두산에도 오를 수 있습니다.
세상을 둘로 나누어 어느 한편에 목숨 걸고 달라붙을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살다 찐빠 되어도 누구 하나 잘했다며 구해주지 않습니다. 늘 경계선에 서서 양쪽에 발 디디고 있어야 덜 다치니 또한 덜 아픈 법입니다.
'세상 이야기 > Rolling Ston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꽌시, 關係.. (0) | 2018.04.13 |
---|---|
자식 사랑과 효에 대하여 (0) | 2018.04.08 |
가장 강력한 타격.. 3 (0) | 2018.04.01 |
가장 강력한 타격.. 2 (0) | 2018.03.28 |
가장 강력한 타격.. (0) | 2018.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