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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드니 했던 이야기 또 하고, 며칠 지나 또 하고. 그래서 요즘은 미리 이리 말합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했던가?'
내가 이 글을 썼나 모르겠네요. 하여간.
웨이는 중국에서 내가 데리고 있던 한족 직원이자 여태까지 연을 맺고 있는 동생 같은 친구입니다. 왕 사장은 나를 통해 한국 재생 쓰레기를 수입하던 파트너 였고요.
왕 사장은 사범대학을 나와 교편을 잡다가 사업으로 나섰는데 건설에서 큰돈을 벌어 막 재생사업 쪽으로 뛰어든 신출내기였습니다만 동시에 보통내기도 아니었지요. 그도 그럴 것이 워낙 그 험한 건설공사판에서 십수 년을 굴렀으니.
웨이가 처음 내게 왔을 때 대학을 갓 졸업했을 때이니 고작 24살. 철이 없어 보였을진 몰라도 어떤 때는 나보다 더 어른스럽습니다. 처음 중국에 갔을 때 불같은 성질을 죽이지 못해 협상 테이블에서 화를 날 은근히 잡아당기면서 참으라고.
난 어차피 얻을 게 없는 판이라면 깽판이라도 치고 나와야 나중에 덜 분하겠다는 생각이었지만 그 녀석은 그 사람과 언제, 어떤 자리에서 어떤 식으로 만날지 모르니 필요 없는 악감정을 쌓을 필요가 없다네요.
세월은 흘러 난 중국을 떠나고 남겨진 웨이는 결국 왕에게 의탁을 하게 되었는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고 웨이가 아무리 머리를 써도 그치에겐 적수가 안되었나 봅니다.
가끔 해외 통화를 하면 왕 사장 욕을 얼마나 해대는지, 내가 민망할 정도였지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 물어볼게 있어 전화를 했더니 왁자지껄, 식당인가 봅니다. 누구랑 밥을 먹는 게 그리도 즐겁냐. 왕 사장이랍니다.
헐.... 나 같았음 진작에 끝장 봤을 사인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널 이용만 하는 놈과 어울리냐고 물어봤더니 지금은 입장이 불리해 머리 숙이고 있고 또 그의 조력이 필요해서 참지만 언젠간 몇십 배 갚아주겠다고 하네요.
이 동네 사람들 역사는, 아시다시피, 인류 문명의 기원이 시작된 곳인데다 광대한 영토에서 수많은 종족과 토호세력들이 이권과 권력을 두고 누천년 간 다퉈온 살벌한 곳입니다. 특히 열국지를 보면 하루 아침에 안면 바꾸고 칼을 들이대는 장면이 매 페이지를 넘쳐 나는데 끝에 가면 온통 피범벅만 생각날 정도이죠.
중국인들이 남의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는 경향은 바로 이런 오랜 피 냄새 가득한 역사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고 하죠.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어 원수를 만들지 말라. 그리고 원한을 쌓게 되면 두고두고 보복하는 건 오로지 생존이 목적이기 때문이었다지요. 즉 원수를 갚지 않으면 언젠간 본인이 다치거나 죽거나.
당신은 어떤가요?
오늘 사실 오래전 거래를 했던 자가 전화를 했습니다. 얼마나 더티하게 굴고 사람을 농락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이가 갈릴 정도지요. 전화도 씹을 생각이었지만 연속으로 걸려오니 짜증 나도 받을 밖에요.
역시나. 사람 간을 보고 이죽거리는 개놈의 시키의 표정이 아삼삼한데 다시금 뒤통수에서 열불이 죽 타고 올라오며 당장이라도 가서 아구창을 날려 비리고 싶었지만, 난데 없이 오래 전 웨이 놈의 충고가 생각나 잘 지냈냐 정도로 끝냈지요.
우리 모친은 매우 현명한 여자이고 집사람도 적어도 나보단 세상 보는 눈이 밝습니다. 그녀들은, 한번 끝난 사이에 집착하거나 미련 두지 말랍니다. 그리고 대부분 그 말이 맞았고요.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땅에서 처세의 정답은 없습니다. 같은 상황이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죠. 아무리 같은 상황이 전개되어도 변수가 있어 결말은 다르게 끝나고 그 결말의 모양새는 내 선택이 다듬는 것입니다.
정말 죽이고 싶도록 미운 놈을 앞에 두고서도 부처 같은 얼굴을 하자면 아직 나도 한참 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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