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자작 연재

I have lived in China Chapter 1-9 부제: 친구 III

운산티앤씨 2019. 10. 13.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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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엔 어딜 가나 인민로와 해방로가 있더라. 흠, 나쁜 생각은 아냐. 부산시 해방로, 서울시 해방로 다 구분되잖아? 해방로에서 좌빨 냄새 나면 김구로는 어때? 중근로. 31로. 815로. 짧고 간결하고. 우리네 주소를 영어로 옮겨봐? 돌아삐리. 가게 주소가 양지리 110번지야. 근데 요즘 도로명으로 꼭 해야하는 운송해 주는 곳이 많거든. 특히 세관에선 도로명 아니면 통관 안된다더라. 한번 볼까?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진건오남로797번길 28 윤소빌딩 1층 105호 짧지?

-> Room number 105 1st floor of Yunso Building, Jingeononam-ro 797 beongil 28, onam-eup, Namyanju City, Gyeonggi-do. 어때? 참 한글... 효율 좋다.

이걸 어따 다 적냐? 수기로 할 땐 손아구에 쥐가 난다. 이거 만든 넘들은 도대체 생각은 하고 사냐? 영문 주소 줄 때마다 외쿡인들이 날 떠라이로 본다. 가끔 어케 읽어야 하는지 물어봐. 오지도 않을 거면서.

한편 도로명을 통일하면 말이야, 간판도 한방에 여러 장 찍어 단가도 낮출수 있잖아? 가끔 지명 갖고 주민들끼리 난투극 벌이는 우릴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아.

그리고 이때가 2006년 7월이었는데 많은 수의 도시에서 공원을 이런 식으로, 저녁엔 조명을 비춰 미관 단장을 하더만. 우린 요즘에야 그리하는 것 같은데 짱깨라고 욕하지 말고 배울 건 배워야지. 그 경관 좋은 한강변에 괴상한 괴물 조각이니 산 정상에 로보또 태권 브이가 다 뭐시다냐.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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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우린 사연이 참 많았지. 기억하나? 닐천구백구십칠년 이즈음을? 자넨 느닷없이 한잔 쏘겠다며 신촌의 모대학 앞으로 가자고 했지. 과연. 자네 말대로 거긴 천국이었네. 회 한사라의 가격이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저렴했고 우린 그날 기어이 소주 여섯병을 사살시키고서야 자리를 털었네.

자넨 기억할지 모르지만 난 술이 너무 과하면 머릿 속이 명경지수처럼 맑아지네. 그것이 공력의 심후함인지 아니면 내가 천년기재라서 (?) 그런진 모르겠네만. 줄창나게 처마신 소주에 꽐라되어 비실대는 자네를 난 뒤에서 관찰하며 따르고 있었지. 행여 있을 불상사를 걱정하며. 말이 좀 바뀌네 만은 자네 전과가 화려하지 않나? 개병대와 나 아니였음 노래방에서 쌈쑹 애들한테 개씹창 나게 터졌을 뻔했던 사건. 길거리에서 가래 뱉다 경찰에게 걸렸지만 국과수까지 운운한 내 덕에 벌금 면한 사건하며... 에휴. 청계천 불고기 이바구와 북창동 룸싸롱 사건은 생략하자.

본류로 돌아와서.

아니나 다를까, 자넨 기어이 모 건설회사 다닌다는 두넘이랑 시비가 붙었고 우린 그날, 아니 난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다구리라는 걸 당했고 우린 사이좋게 짱돌 맞은 깨구락지처럼, 사이좋게 도로를 자리 삼아 드러 누웠지. 지금도 기억나네. 타이슨에게 턱주가리를 가격 당해 도전자의아가리에서 튀어 나오는 마우스 피스처럼 날라가는 자네의 안경을. (이 대목에서 그의 명언이 생각나네. 누구나 근사한 계획을 갖고 있다. 처맞기 전까진...) 난 그 무엇도 할 수 없었지. 수많은 흑도 무리들의 가차없는 연환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으니. 그간 익힌 가전 비기도 소용 없었고 난 오로지 하마공력을 바탕 삼아 거북이처럼 웅크리고 자네만 보고 있었네.

실컷 두들겨 팬 놈들이 가고 우린 하릴없이 주저 앉아 내기 당구 진 넘들 복기하듯, 그래도 난 여긴 안맞았다 식으로 딸딸이를 치며 자위하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졸라 빡치고 쪽팔리네. 여튼 그때 그 용감무쌍한 대협이 아니었다면 우린 게임비도 못벌고 회사에서 시푸리댕댕하게 된 눈탱이에 대한 변명을 끝없이 색칠하며 무용담으로 둔갑시키느라 똥깨나 뺐을 걸세.

나, 자네에게 여즉지 말하지 않은 섭함이 있네. 그때 받은 겜값 50만 원 말인데 자넨 외상이 있어 받았지만 내상을 입증할 길 없는 난 한푼도 못받았걸랑? 왜 혼자 꿀꺽했나? 요 야마리까진 넘아. 퉷.

여튼 보험하다 쫄딱 망한 날 중국으로 보내 준 건 고마웠지. 그리고 당시 자네의 리미트리스 허구 엔드리스 개구라는 정말 환타스틱하고 원더풀했어. 지금에사 원망하는 건 아냐. 넘어간 내가 등신이지. 그때 일은 전편에 있으니 생략허구. 딱 이건 한번 더 짚고 넘어가자고. 그때 넌 계열사가 5개라고, 그리고 우리 그룹이 어쩌고 씨부리며 날 현혹했는데 가보이 뉘미 조선족 기지배 하나에 중국 떠꺼머리 각총 하나. 이게 게열사냐?

자네 쥐박이랑 같은 대학 출신이지? 중국에서 돌아온 후 난 자네 대학 출신들 더이상 믿지 않게 되었네, 울아들 대학 진학 명단에서 빼버렸어. 이 사기꾼 색휘들아! 퉷!

저 사진 찍던 해, 늦가을이었나? 자넨 대학 선배란 작자와 함께 계열사 점검한다고 왔지. 잔뜩 긴장한 날, 지금 생각해 보면 졸라 쩍팔려. 마느님과 가정부에게 청소시키고 서류 준비하고. 난리를 피웠건만 자넨 웨이 녀석 데리고 청도로 날랐지. 자넨 아직 웨이가 내게 모든 걸 다 고해 바친 걸 모르지?

청도에서 연운항까지 가선 다시 해탁란 곳으로 갔다면서? 거기서 우리 파트너 왕서방이랑 그넘 깔치 만나 놀고 저녁엔 가라오케. 다 좋네. 하지만 그땐 뒹국 가라오케엔 우리처럼 즉석불고기도 없었고 언감생심 찌찌는 더더욱 만질 수도 없었던 시대야. 그런데도 웨이를 졸라 여자 있는 곳으로 가자고 질알 떨었다면서?

웨이가 하는 수 없이 여자 애들이 서빙하는 레스토랑에 데리고 갔는데 대취한 자네와 그 선배락 작자가 개수작 부리다가 공안까지 출동했다더라. 그쯤이면 깨갱해야 하는데 니들은 여서 하던 버릇대로 민주 경찰 어쩌고 민중의 지팽이 하며 공안에게 개겼다며? 결국 깜빵 갈 위기에 처했는데 왕서방이 나서서 겨우 진화했다더라. 그 일로 인해 난 와서방하고 절친되었고 우리 마누란 딸래미 자라면 그 집 아들과 혼인하겠다는 약조까지.

그런데 말이쥐, 그 정도 질알 떨었으면 숙소로 돌아가 디비잘 것이지, 기어이 두넘이 사라져 다른 레스토랑 가서 되도 않은 중국어로 꾸냥 불러 달라고 했다면서? 무협 영화 찍을 일 있냐? 중국 깡촌 진짜 조심해야 한다고 내 신신당부했건만.

결국 동네 놈상들 각목 들고 총출동하고 촌로들이 겨우 말려 살아났다던데?

웨이가 그러더라. 니들 둘이 또 와서 그런 짓하면 그땐 안밀린다고. 신분 증명 할 그어떤 것도 없이 시골 도로변에 던져 두면... 옷까지 벗겨 간다고. 조심하라고 하더라.

너 아직도 그 정신 머리로 중국서 사업하냐? 아직 살아있다면 하느님이 보우하사다 이 써글 눔아. 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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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5LxGzSFnucE?list=RDG7ExjWh6oQ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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