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자작 연재

고백...

운산티앤씨 2019. 10. 8.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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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3FHz9JCcWdw?list=RDsVWCLB5Q9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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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네비 이야기 말입니다. 뻥 아니었어요. 진따 무서벘다니깐. ㅜㅜ

간만에 집사람의 불금이라 (월요일 쉬거든요) 어젠 술 끊겠다고 선언한 나에게 소주를. 췟. 어쩌겠습니까? 드시겠다는뎅. 하여 한병을 불고나니 쬐끔 모자라는 느낌이라. 하여 남은 양주를 나눠 마셨죠. 발렌타인 18? 17? 년산. 불콰하게 오르니 아니나 다를까 또 시작을.

나에게 가진 유일한 불만이랄까, 여튼 어딜 놀러 가지 않으려 하는 내 성격 때문에 스트레스를 무쟈게 받는답니다. 나야 늘 대는 핑계가 있죠. 모기가 나만 물어. 난 화장실 바꾸면 똥이 안나와. 불편한 거 질색이야 등등. 하지만 사실은 그 이유가 아닙니다. 해서 이번엔 딸과 함께 한 자리니 알건 알아야겠다 싶어서 말을 꺼냈지요.

본명 밝히긴 거시기 하니 가명을 쓰죠. 그러니까 난 기태고 친구는 영태라고 하죠.

'올 여름 결국 해수욕 한번 못갔네? 흥~~'

'이봐, 임자, 내 이번엔 속내를 털어 놓을테니 들어 볼껴?'

'말해 보셔.'

물론 그 전에 네비 이야기로 한껏 흥을 돋은 터라.

그러니까 1984년 이네요. 프레쉬한 1학년이지만 진즉 세파에 찌들어 사악의 극치를 달리던 영혼의 소유자였던 나. 허구헌날 술과 당구, 담배에 쩔어 온갖 못된 짓을 다하고 다니며 그간 못누린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학 못간 절친들과는 서서히 소원해졌지요.

영태는 속칭 말하는 불알 친구입니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가끔 만나 이런 노래를 부르며 서로 얼굴을 쳐다 보며 웃곤 했죠.

'아랫집 윗집 사이로 울타리는 있지만... 중략 ... 반갑구만.'

내가 대학으로 진학 할 무렵, 영태네 사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는 이바구를 쓰리쿠션으로 듣긴 했지만 워낙 자존심 강한 넘이라 굳이 찾아가 묻지도, 그녀석 또한 말해 주지도 않았거든요. 그러다가 연락이 툭 끊겨 버린 거죠. 아참, 참고로 1984년은 인터넷이 없던 세상입니다. 쉽게 말해서 부싯돌로 담뱃불 붙이던 시절이죠.

부산엔 8월 부터 여름과 가을의 경계 즈음까지 강력한 태풍이 몇개나 들이닥칩니다. 서울이나 경기권에선 평생 못볼 장관? 아니 꿈에 볼까 두려운 흉흉한 광경이죠. 특히 방파제에 나가 일렁이는 물결을 보면 절로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죠. 당시 연례행사처럼 있던 수재때문에 진즉에 광안리 해변 우측을 (삼익 아파트가 아직 있나 몰라.) 테트라 포트로 강력한 방어벽을 쌓았고, 그것들은 험하지 않은 날엔 연인들의 간이 모텔 역할도 했습죠. ㅎㅎ

여하튼 기억나지 않는 어느 여름 끝자락의 날, 티브이에선 쉼없이 무지막지한 태풍의 임박함을 실시간으로 알려주었습니다. 그때 걸려온 전화 한 통, 영태였습니다. 이런 험한 날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네요. 난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나서려는 순간, 오마니 호통에 물러서야 했습니다.

우리 오마니, 아주 대단하신 성격이죠. 혹시 나갔다가 떨어지는 간판에 행여 머리라도 뽀싸질까봐, 다 큰 아해의 바짓가랭이를 붙잡고 늘어지십니다. 하지만 그건 훗날 자식을 둔 어미만이 가질 예지력이었음을 내가 알 리 있었나요.

난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녀석이 공중전화를 한 터라, 게다가 그 녀석 집 전화는 없는 전번이라 나오고. 나가자니 악을 쓰며 못가게 하는 오마니 성화도 그렇고. 할 수 없이 사발통문을 돌렸습니다. 그녀석과 만나기로 한 광안리 앞바다 화장실에 누가 좀 나가 보라고. (이번에 여고생 하나가 거기서 죽었다죠?) 그러나 그 날씨에 누가 내 심부름을 할까요? 에라, 기다리다 안오면 집에 가겠거니. 나중에 내가 거하게 한번 쏘지 뭐.

그러나 이후 두번 다시 녀석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여름, 그리고 태풍의 계절. 아마 날짜도 비슷했다고 생각합니다. 난 문득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습니다. 마침 오마니도 어딜 가셨지요. 참고로 당시 태트라 포트 쪽엔 태풍이 들이닥치기 전엔 출입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가끔 만용에 가득 찬 어린 피들이 딴에 폼잡다가 물귀신이 되곤 했지요. 그러나 내가 누구여? 그 동네에서만 15년을 넘게 산 몸인데. 어디가 위험하고 어딜 가면 안되는지 정돈 뚜루룩 꿰차고 있는 몸인데.

(지금은 이미 사라졌겠지만,) 사라토가란 미완성 건물을 지나 해안가 도로 쪽으로 400미터 정도 직진해서 우측으로 꺽어지는 지점이 가장 경관이 좋습니다. 갑작스런 파도가 들이쳐도 곧바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 난 도착해선 파도 구경이나 하자 생각하고 포트 쪽으로 올라 가려 하는데 어라? 이미 내 자리에 누가 앉아 있지 뭡니까? 하지만 워낙 넓으니 내 자리라고 하긴 그렇죠. 난 그 남자 곁에서 얼마 떨어진 곳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습니다.

'니 기태 아이가? 이 날씨에 여서 머하노?'

'어?'

영태네요. 난 반갑기도 했지만 얼마나 무안하든지요. 해서 그날 일을 쉼표 없이 이어가는데...

'괘안타, 친구야. 나도 니가 못나올 줄 알고 있었다 아이가. 그라고 곧 큰 바람 불 거 같은데 그전에 우리 소주나 한자 하자.'

녀석은 소주 두어병과 오징어를 챙겨와선 혼자 마시고 있었더군요, 우린 나란히 앉아 지나간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을 재미나게 보냈지요.

'니 옛날에 부르던 노래 기억나나?'

'기억나지. 함 불러보까?'

아랫집 윗집 사이로 울타리는 있지만..... 반갑구만.

'반갑구만'이란 추임새는 아마 작고한 개그맨 조모씨가 유행시킨 거죠? 그때였습니다. 귀를 찢는 듯한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누군가 소리를 지르더군요.

'보소! 당신 뭐하요? 죽고 싶소?'

돌아보니 경찰입니다. 난 영태를 쳐다보면 피식 웃고선 그만 가자고 했지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내려오니 경찰이 이러네요.

'아니 보이 나이도 어린데, 니 죽을라고 작정했나? 와 미친넘처럼 거 앉아 노래를 부르노?'

'선생님, 미안함다. 불알 친구랑 오랜 만에 만나서 술 한잔 하다 보이.'

'누구? 니 친구가 오데 있노? 일마 이거 정신 나간 넘 아이가?'

농담도 참.. 난 뒤를 돌아 보았지만 아무도 없더군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 뒷통수를 경찰 아저씨가 한 대, 탁 칩니다.

'야 임마, 정신 차리라. 이기 헛 거를 봤나 보네.'

환장할 노릇입니다. 난 영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게 아니라고, 친구가 사라졌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순찰차에서 뒤늦게 나온 늙수그레한 경찰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일단 차에 타라고 합니다. 그때였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뒤를 돌아보는 순간, 테트라 포트 가장 높은 곳에 영태가 서서 나를 쳐다 보고 있네요. 난 소릴 지르며 차를 멈추라고 했습니다. 그리곤 영태가 아직 저기 있다고 했지만 두 경찰은 나만 심각하게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그리곤 안전지대까지 간 후, 묻더군요. 친구 성이 뭐냐? 어디 사느냐? 몇 살이냐 등등. 어떻게 된 거냐,오늘 왜 나왔으며 그 친구와 무슨 이야기를 했냐는 등등. 나의 대답을 다 듣고 난 후 늙은 경찰이 한숨을 내쉽니다.

'이 자슥이 혼자 죽기 억울했나? 불알 친구 델꼬 갈라 했구마이. 그래도 미제 사건 하나는 해결했는 갑다.'

'무슨 소립니꺼?'

그러니까 작년 이즈음 사람이 바다에 빠졌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태풍이 잦아든 후 해경과 합동 수색을 했지만 시체를 찾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실종된 날, 영태란 이름의 아이가 가출했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는 것. 이 두 가지 사실과 나의 오늘 이상한 짓과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추측이죠.

난 섬뜩했습니다. 설마 약속을 어겼다고 그 녀석이 날 데려가려고 했을까. 우린 얼마나 친했는데. 며칠 후 수소문을 해서 영태네 집을 찾아갔습니다. 이미 남은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집은 비어 있더군요. 그다지 좋지 않은 소문이 퍼졌는데다 워낙 허접한 집이라 그간 세도 나가지 않았나 보더군요.

나뒹구는 기물들 사이에서 난 가족들과 같이 웃고 있는 영태의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얼마나 서럽든지요. 오죽 답답했으면 죽기 전에 나에게 라도 하소연하려 했을까. 그리 갈 양이었다면 전화로 미리 언질이나 줄 것이지. 주억거리며 통곡하다가 난 이리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기태야, 진짜로 미안하데이. 내가 모두 갚아 주꾸마.'

집사람에게 마지막 독백은 차마 할 수 없었지요. 아마 두번 다신 바다에 놀러 가자고 하진 않을 겁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