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길 위에서 묻다

무제

운산티앤씨 2018. 3. 8.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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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ny Dorelli - L'immensità (눈물속에 피는 꽃) (1967)


정확하진 않지만 언젠가 부터 마누라가 먼 산 보는 일이 잦아졌다. 난 나대로 회사를 그만둔 후, 똥줄이 타건만 그런 내 속도 모른 체 어디론가 멀리멀리 사라지고파 따위의 푸념만 늘어놓으니 일단은 짜증이 나고 이단은 에라 모르겠단 마음도 들고.

난 소위 말하는 나쁜 남자 중 상급에 속한다고 보면 맞을 게다. 불덩어리 같은 성질에 아주 걸은 입, 건들거리는 행동은 도저히 대학 물 먹은 (요즘은 흔하겠지만) 인텔리하곤 거리가 먼 동네에 존재하는 건달, 맞다. 그게 딱 맞는 표현일 게다.

재수 없게 걸려들어 평생을 속만 태우고 말년에 못 볼 꼴 다 봤으니 이젠 도망갈 만도 하겠다 만은, 여전히 붙어 있는 이유는 아직도 내가 못질 정도는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중년에 이른 여자들이라면 다 겪는 사춘기가 찾아온 것일 게다. 지도 딴엔 좋은 학교 나와 꿈도 컸을 텐데, 인생 전체를 저당 잡혀 말 안 듣고 대가리만 굵어진 새끼들 건사하랴, 사고 치고 들어오는 아들 같은 서방 챙기랴, 그렇게 20년 넘게 초뺑이치며 개고생했다면, 나라면 진즉에 도망치고 말 것을, 무던히도 참고 살았거니.

요즘 올리는 글 중엔 유난히 여자들 역성드는 게 많은데, 그걸 어떻게 해석하시는지 모르겠다. 그 분노는 바로 나를 향한 것인 게다.

아침 나절, 텔마와 루이스를 건너 건너 보며, 저 여자가 왜 먼 하늘만 보고 있었는지 새삼 깨달았고 그동안의 다른 수컷에 대한 분노도 바로 나의 지나간 세월에 대한 그것이었음을.

꽃 같은 청춘 다 흘러가고, 지라고 해서 멋진 남정네 만나 가슴 설레는 로맨스 해보고 싶지 않았을까만 유난히 이기적인 난 모든 걸 무시하고선 혼자 드라이빙 해서 여기까지 왔다.

남들은 내 나이면 모아둔 재산도 있고 하니, 마누라 손잡고 이국의 땅도 밟아보고 색다른 풍광 보며 즐기겠지만 베짱이처럼 놀다 보니 도낏자루까증 없어진 상황이라 같이 존나게 뛰어보자고 하자민 면목도 없고.

원래 계획은 나 혼자 대륙으로 가는 건데... 아무래도 데리고 같이 가야겠다. 남겨 두고 가기엔 내 양심이 너무 찔린다.

전에 두 친구 이야기를 하다 말았는데...

한 녀석은 사별을 했다. 남들은 몰라도 난 안다. 그넘이 얼마나 마누라 속을 썩였는지. 그 탓인지 몰라도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는 여자가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난 그런 아픔이 생긴지 2년이 지나고서야 연락을 한 게다. 구절양장 같은 그간의 사연이야 읊어봐야 개나발이고.

며칠 전에 가게에 잠깐 들렀는데, 차를 보니... 마누라 차란다. 떠난 지 4년이 다 되어가는데, 여기저기 녹슬어 흉물스럽기 짝이 없는데 몰고 다닌다. 묻지도 않았는데 아직 탈 만다고 하는데 왜 눈물을 슬쩍 보이고 질알이여.

그랴, 후회 많이 될 게다. 딸년, 지 에미 판박이 같은, 에겐 얼마나 정성인지 모르겠다. 대학 간 딸래미 밥상까지 차려주고. 내가 알던 그넘이 아닌데. 그렇게라도 속죄하고 싶겠지만..

마누라한테 잘 해라. 가고 나서 젊은 년 만나 즐거울 것 같지만, 개코같은 바람이다. 구관이 명관이고 조강지처만한 여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니.

있을 때 잘 하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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