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길 위에서 묻다

죽음 앞에서, 당신은 얼마나 당당할 수 있나?

운산티앤씨 2019. 3. 11. 01:10




방금 올린 스텐토리안 HF 816. 드물고 귀한 건 사실이지만 소장 욕구는 오래 전에 사라졌다. 돈이 목적이 아니다.

내 어릴 적 기억 중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것 중 하나는 작고하신 큰아버님의 마지막 모습이다. 지금은 희미하지만 위암에 걸려 반쪽도 안되도록, 마치 겨울 바람에 떨고 있는 삭정이 같은 몸으로 변해버렸지만, 결코 삶에 대한 의지를 버리지 않으셨다. 그러나 결국 최후가 왔을 때 할머니를 붙잡으며 죽고 싶지 않다고 우셨다나? 할머니의 억장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몇년 전 사촌 형 중 한 분도 췌장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그러나 시한부 선고를 받고서도 우형에서 오만 원권을 다발로 전달하며 살려 달라고 하셨다는데. 우형인들 별 수 있겠나. 면전에선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나중에 형수에게 돌려 주며 마지막 가는 길이나 편안하게 하시라 했단다. 그리고 그 형은 눈을 감기 전 날, 유달리 생기가 돌며 이젠 아프지 않으니 내일 퇴원하고 곧 출근해야겠다고 하셨다나?

나의 부친은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6년 전, 소화가 되지 않는다 하여 우형의 병원에서 정밀 검진을 받았는데 위암 3기. 난 그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헛웃음을 치시며 진단이 잘못되었다고. 위암 3기면 내가 지금 이러겠냐, 아파서 데굴데굴 굴러야지. 그러나 그건 엄연한 현실이었다.

난 형에게 물어 보았다. 이젠 준비해야 하냐고. 그러나 형은 여느 때처럼 냉정하게 수술해 봐야 알지, 그말 뿐이었다. 여든의 암환자를 수술할 병원은 별로 없을 게다. 사실 곰살궂은 나에 비해 말이 없고 때론 비정할 정도로 냉혈한인 형을 부모님들은 그다지 좋아하진 않으셨다. 그리고 늘 맏이의 의무를 다하지 못함에 섭섭해 하셨고.

결국 형은 아버지를 살려냈다. 다행히 전이가 없었다곤 하지만...?? 그때 나도 태어나 두번 째로 위내시경을 받았는데 끝나고 나니 의사 선생이 이러시더만.

'거참, 대단하네요?'

'네?'

'위 안에 헬리코박터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데 위암으로 발전하진 않았습니다.'

'헉.............'

사실 난 대학때부터 십이지장 궤양을 앓았고 그건 평생 나를 괴롭혔다. 명치 끝이 찌르는 듯한 통증. 노루모와 겔포스를 입에 달고 살았고 나중엔 그마져도 듣질 않자 노루모와 겔포스를 섞어 퍼마시기도 했으니까. 사실 검진 전엔 유서까지 다 작성했을 정도의 통증이 매일 같지 찾아 왔거든.

젊어 날밤 까며 파마셨던 술이 그렇게 원망스럽더라고. 아프지 않게 가는 법은 없나 찾아 보다가도, 이대로 가면 애들과 마눌은 어떻게 살지? 쌓았던 보험 지식을 활용해서 보험 범죄마저 도상 연습을 했고 검사 날이 가까이 올수록 난 공포에 휩쌓였다.

죽고 싶지 않다.

아직은 풀어야 할 숙제도 많고 이루지 못한 꿈도 많다.

난 이대로 죽긴 너무 억울해.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는 생쑈가 아닌가.

진단은 위염과 식도염이었다. 니미.. 20년 가가이 엉뚱한 약만 먹었던 셈인데, 한달 먹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하더만.

그래서 술을 끊었냐고? 더 퍼마셨지.

사실 부친이나 앞서 언급한 친지들의 죽음도 술과 무관하지 않다. 특이하게도 술에 약하면서도 중독되기 쉬운 체질들을 타고 났는데 그건 아마도 감성이 좀더 풍부해서 일 거란 생각이 든다. 즉 마음이 약하다는 거지. 블로그에선 욕도 하고 터프하게 글도 쓰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작은 일에도 상처받기 쉬운, 나약한 심성을 가졌다. 그렇게 퍼 마신 술의 이유도 따지고 보면, 둘러싼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와 내일의 불안함을 잊기 위해서 일 것이다.

이젠 어떨까?

더 웃기는 건 나이가 들 수록 간이 커지더란 거지. 소심함이나 두려움따위가 점점 사라지고 오늘 아니면 내일, 내일 아니면 말고. 그리고 언제든지 죽음이 오더라도 까짓, 아프게만 하지 말아줘 정도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뭔 대오각성을 한 것도 아니다.

살아보메, 그리고 돌아보메 그렇게 죽을 정도로 억울한 일도 없었고, 누굴 죽일 정도의 분노도 하찮게만 보였다. 한발만 물러서면 웃을 수 있는 일들에 너무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았으며 그런 나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느꼈으니, 그 정당함을 위해서라면 밥줄까지 걸고 다투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고 모든일이 존나게 웃기면서 웃음이 터져 나오더란 거지.

이젠 만사가 허무하고 허망하니, 이젠 누군가에 대한 기대, 그 기대의 배신으로 인한 분노따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누가 가까이 와도 곁을 내주고 싶지도 않고, 누구에게든 가까이 가고 싶지 않다. 싶지 않다가 아니라 그냥 않다 이다.

오래 전, 어떤 여자에게 헤어지며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으니 언젠간 다시 만나지 않겠냐고, 혹 내가 먼저 가거든 네가 지나는 길에 이름 모를 잡초로라도 살아나 널 기다리겠노라고.'

참으로 개조까튼 멘트가 아닐 수 없으며 지금 읽어 보니 빠다를 양동이로 퍼마신 양 속이 느글거린다. 남녀 관계, 뭐 대단한가? 하룻밤 동침으로 만리장성을 쌓네 어쩌네 하지만 전부 조까라마이신 이다.

너는 원래 나의 것이 아니었는데 왜 나의 것이 되어 힘들게 살려 하는가? 나 역시 너의 것인 적이 없었는데 왜 갑자기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가던 길 가면 그만이지 않는가.

자식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들이 여전히 귀엽고 애틋하고 안타깝긴 하다. 하지만 내가 그들의 시간에 개입해서 뭐가 달라지는가? 그들이 평생 일하지 않아도 될만큼의 돈이라도 주지 않는 한,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는 개귀에 경읽기고 잔소리인데. 모친은 그렇게 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곤 하시지만 나라고 해서 아이들이 선택하는 길이 정답이 아님을 어찌 장담하는가.

내 인생도 돌아보니 별 짝 없고 한편 앞길은 전혀 오리무중인데 아이들 앞날을 내가 재단한다? 그래서 이리 살아라, 저리 살지 마라? 언제 난 부모의 말씀을 제대로 새겨듣고 똑바로 살아왔던가.

ㅎ....

결국 이것도 놓고 저것도 던지고 뭐라도 쥐려했던 손아귀 힘을 빼니 마음이 편해지더라. 마음이 편해지니 갈 때가 두렵지 않고. 그리 오래 살아야겠다는 욕심도 없어진다.

내 생각을 남에게 맞다고 주장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냥 심심할 때 읽어 보시고 재미만 있으면 되거든.

그나저나

삶은 참 재미나지 않나? 난 매일 즐겁고 만사가 웃기며, 혼자인 내가 너무나 편안하다.

https://youtu.be/IyVdcr2hn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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