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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네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저런 안봐도 되는 혹은 구경하기 힘든 광경들을 보게 됩니다. 여기 들어와사 산지도 어언 20년. 오래 전 일은 빼고 비교적 근래 들어 본 희안한 일을 벌이는 이들. 참으로 강호엔 기인이사가 모래알처럼 많다더니.
1. 구르마 할배
이 할배를 처음 본 때가 아마 작년 겨울? 아파트 뒷편에서 야밤에 뭔가를 열심히 고치고 있습디다. 가뜩이나 가로등도 없는 곳에서 뭔 공포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12시가 다 되어가는데 후레쉬 비춰놓고선. 지나면서 보니 바퀴랑 버려진 카트 (바퀴 없는)를 갖고 신종 카트 제작 중인데.
폐기장에 수시로 나오는게 카트고 애들 유모차라 동네 할매들은 그걸로 지팡이도 대신하고 파지도 거두고 하거늘, 왜 저 고생을 사서 할까 싶었지만 나름 게획이 있겠거니. 그런자 다음 날 출근 길에 보니 여전히 그 자리에서 쪼물딱이지 뭡니까.
이미 바퀴 빠진 자리에 끼우고 와샤 채우고 너트만 박으면 될텐데... 하여간 그렇게 밤낮으로 붙어 있는게 1주일 정도였네요. 그리고 드디어 완성한 광경을 멀리서 본 나는 기쁜 마음에 고생하셨다, 잘 만드셨다 라는 인사라도 건낼 겸 다가갔는데 ㅎㅎㅎㅎ 성이 잔뜩 난 할배 앞에 놓인 신형 카트는 굴러 갈 수가 없는 거라. 왜? 바퀴가 너무 작아서 ㅎㅎㅎ 아니 달기 전에 카트 옆에 붙여 보기만 해도 되는데.
이 영감님, 요즘도 만들고 계십니다. 어찌해서 큰 바퀴 구했는데 그걸로 성이 차질 않았는지 이젠 2층 카트 만든다고. 에구야...
2. 금 찾는 여인
역시 후문 쪽에서 목격되기 시작한 지가 벌써 두달이 다 되어 갑니다. 담배를 꺼내 물고선 슬슬 길을 걷다가 갑자기 쪼그리고 앉아 뭔가를 열심히 주워 담습니다. 뭐지? 돈? 아냐, 목걸이가 터져서 그런건가? 그려려니 하고 지나쳤지만 매일을 그리 하고 앉았으니 궁금해 죽겠네요. 하여 어느 날 그 여자 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나도 담배 하나 물고 쪼그리고 앉아 뭐가 있나 살펴 보았습니다.
시발. 돌 밖에 없잖아 하며 피식하고 일어서는 순간, 아파트 아지메 몇이 지나며 수군댑디다.
'어머. 여자만 미친 줄 알았는데 남편도 같이 정신이 이상한가봐.'
ㅜㅜ.
3. 폰 사나이
오전 출근 길에 양지 바른 곳에 앉아 폰을 들여다 보길래 혹시나 사고날까 조금 돌려서 차를 몰고 지나갔지요. 그리고 점심 때 뭘 잊어먹어 다시 오는 길에 보니 여전히 같은 자리, 같은 자세로. ㅋ 그리고 11시 넘어 퇴근하는 길에도 요지부동으로 앉아 폰을 보고 있더군요.
뭐 첫번 째야 그러려니 했지만 일상입니다. 희안한 건 단 한번도 자리가 바뀌거나 옷이 바뀌거나 하는 경우가 없다는 거죠. 밤엔 조금 겁도 납니다. 폰 불빛에 얼굴이 비춰지면 영락없는 월하의 공동묘지 수준이라. 하지만 분명 귀신은 아니겠죠? 아침부터 앉아 있고 집사람도 자주 본다고 하니. ㅎㅎㅎ
요즘은 가끔 눈인사도 합죠. 언젠가 말을 건낼 정도가 되면 물어 보려고요. 대체 뭘 보시길래 그리 집중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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