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길 위에서 묻다

국적선사, 국적기

운산티앤씨 2018. 7. 4. 14:38




첫 직장으로 해운을 선택했을 때, 누가 바닷가 갯벌 출신아니라 할까봐, 그리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승선샌활까지 이어졌으니 어쩌면 그게 운명이었나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끔 언젠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망상도 해보지요.

처음 들어가자 말자 배웠던 게 국적선이란 개념이었을 겁니다. National flag ship을 운용하는 Carrier들. 국가의 국기를 걸 수 있는 특권은 하고 싶다고 주어지는게 아닌 걸로 기억합니다. 사람의 피가 혈관을 돌 수 있도록 하는 것처럼 개별 국가마다 운송은 결코 버릴 수 없는 기간산업입니다.

그래서 기준도 까다롭고 엄격하지만, 국기를 달고 있는 배나 비행기엔 우리가 모르는 특전이 주어집니다. 비록 적자를 보더라도 그것을 보전할 수 있도록 각종 세제와 금의 지원에서 부터, 심지어는 공무원은 당연히 그것을 이용하도록 장려하고, 비록 비싸더라도, 제조업체도 이왕이면 국기를 단 업체를 이용하도록 유도해 주는등 반대 급부가 주어지죠.

한편 그런 혜택의 이면에는 전쟁과 같은 유사시 군수물자와 병력을 수송이란 무상의 희생도 치뤄야 합니다. 아마 경유차에도 그런 제도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일종의 징발인 셈이죠. 

하지만 운송을 단순히 여기서 저기로 실어 간다는 개념으로 이해해선 곤란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건방지기 짝이 없지만 입사 후 몇개월이 지나지 않아, 이게 이렇게 주먹구구로 가선 안되는데. 겨울에 난로가, 여름에 에어컨이 잘 나가듯 특정 화물의 피크와 슬랙 시즌은 있을 게다. 그리고 어떤 국가는 이런 재화를, 또 다른 국가는 다른 재화를 주고 받는게 국제 무역일진대 도대체 이런 방면에서의 연구는 제대로 하고 있나.

물론 일부 국책연구기관에서 해외 잡지를 참조하여 각종 수치를 뽑긴 하지만 화물만 있는게 아니죠. 유가는 어떻게 될 것이며 향후 물동량이 어떻게 출렁거릴 것이냐, 그리고 이런 변수에 따라 건조냐 용선이냐. 성격상 한번 빠져들면 정신없이 거기에만 집중하는지라.

그날부터 날밤까며 타임, 포츈을 비롯한 각종 해운 관련 잡지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막 인터넷이 터지기 시작한 시점이라 빈약한 정보였지만 이런 저런 잡지를 발굴해내서 법인 카드로 긁어 달라고 과장, 부장을 못살게 졸라댔네요. 아마 그 양반들, 별종이네 하면서도 기특하다 생각했는지 사장에게 까지 보고하여 보고 싶은 잡지 구독권을 끊어 주었고 그 댓가로 난 매주 단위로 주요 기사를 뽑아 번역해서 보고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 거죠.

이리도 잘 나불대고 영어를 조금 지껄이는 건, 모두 그 덕입니다.

그 집안은 돈도 많았습니다. 한때 대구 이남 부터 부산 근교로 이어지는 경부 철도선 좌우가 전부 그 집안 땅이라는 소문까지 돌았으니. 하지만 꼭대기 두 양반, 참으로 촌스러웠습니다. 월초 조회때마다 교대로 나와선 하는 말쌈이라곤 1/4분기가 다 지나가스러, 봄을 맞이하여스러.. 어떤 눔이 연설문을 작성했는진 몰라도 컨트롤 C와 V 밖에 몰랐나 보더이다. 나중엔 그것마져도 내가 썼지만.

그러나 참으로 점잖고 사람 아낄 줄 알고 또 아무리 허접한 일을 하는 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혹시라도 마주치면 아들은 항상 양보를, 영감님은 어서 안타고 뭐하냐고 했지요. 한가할 땐 수행원들이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했지만 바쁠 땐 혼자 타는 거의 없었습니다. 

영감님, 트럭 한대로 시작해서 군수물자 실어나르며, 밑바닥에서 각개전투 빡빡 기며 자수성가한 분이지요. 그런만큼 자신에게 엄격했고. 더러운 이들과는 결탁하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해운이든 항공이든, 일반 제조업과는 다른 특별한 뭔가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국기를 달고 해외에서 나라의 얼굴로 장사하는 만큼, 그리고 그 이상의 수혜를 입는 만큼, 정말 투명하고 정당하게 기업을 운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아수라장에서 끝까지 버티겠다면 사람 키울 줄 알고 아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어떤 능력자가 세계 경기 전체를 아우르며 예측을 할 수 있을까요? 노벨상을 받아도 언감생심입니다.

최고의 머리를 가진 지략가들이 모여 전략을 연구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아무런 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2세, 3세들이 경영권 넘겨 받아 하겠다고 설치다니. 이거야 말로 언어도단이고 당랑거철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린 이것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이미 국전선사고 국적항공사고 봐주지 않습니다. 오래 전에 국적선사란 단어 자체가 생경해졌고 그나마 항공사도 경영이 부실하면 사정 없이 파산 키셔 버립니다.

왜? 그렇게 머리 좋은 이들이 일하는 곳은 이젠 그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굳이 그걸을 유지하지 않아도 다른 곳에서 이윤을 남기고 대가리 터지게 싸우는 해외 운송사 사이에서 슬슬 낮은 운임 찾아 이용만 하면 되니까요.

이런 회사들, 해외에서 돈 빼먹기 참 쉽습니다. 탈세가 쉽단 뜻이고 해외 재산 빼돌리기도 누워서 떡 먹기입니다. 므슨 뜻인지 그 동네 구조만 조금 들여다 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겁니다. 그래서 증거는 없지만... 해외법인 몇개 털면 뒤로 나자빠질 정도가 아닐까.

이젠 정말 저렇게 말썽 부리는 기업들을 기간산업을 담당한다는 미명 하에
방관할 수는 없을 겝니다. 이미 나보다 잘난 이들은 그들이 구시대의 유물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고 정리하는 수순으로 들어간 것으로 판단도 되고.

그리고 국민들도 알건 알아야 합니다. 이쁜 스튜어디어스 얼굴 보는 재미가 아니라면 굳이 두배나 비싼 돈을 치르며 사람 목숨 실어나르는 항공기에 장난질 하는 회사에 목숨 맡길 필요 없습니다.

난 부품 돌려막기를 한단 소리까지 나오는 걸 보고 이젠 정말 정리해야 할 좀비들이구나, 그리고 입 바른 소리하는 이들을 좌천시키는 모습에선 연민조차 느껴지지 않더고요.

쓰레기를 오래 갖고 있으면 내 몸에서 냄새만 납니다. 버려야 할 건 빨리 버려야 내가 깨끗하고 건강해 집니다.

이젠 우리의 날개란 개소린 정말 쓰레기통에 처박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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