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했으면 저리 다 큰 눔이 눈물까지 흘렸을꼬? 하기사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스트라이커라 해도 동네 축구하는 애들이랑 섞이면 그 나물에 그 밥 신세거늘. 호날두라 한들, 메시라 한들 별 수 있을까 싶다.
예전 같으면 노상 떠드는 메뉴가 있었지. 잔디 구장이 없다. 잔디 구장에서 연습한 애들이랑 맨땅에서 놀던 애들이랑 어찌 되겠냐. 바운드가 다르니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말이다. Irregualr bounding에 그렇게 적응이 되었다면 Regualr bounding 즉 공의 방향이 예상되는 구장은 금방 적응해야 마땅하지 않는가?
예를 들어 목도로만 연습하던 검객이 진검을 들었을 땐 무게감 때문에, 그리고 나무와는 다른, 진검의 날에 자신도 다칠 수 있음을 알게 되기 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다.
멕시코, 가나, 세네갈, 우라질에서 아르헨티나까지. 축구 강국이라고 일컫는 선수들을 보면 다들 어릴 땐 동네 축구, 그러니까 맨땅 축구만 하던 애들이다. 게다가 이젠 국내 어딜 가도, 심지어는 구립 구장만 해도 잔디 다 깔아주니 그 레파토린 한물 간 게지.
실력 차는 분명히 있다. 프리미어나 분데스리가로 간 선수들하고 국내 프로에서 뛰는 선수들 간엔. 그러나 다들 말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공을 갖고 놀던 애들인데 왜 그리 연결이 안 될까? 그런 선수들 간 실력의 차이는 우리만 있는 게 아니고 멕시코와 스웨덴도 마찬가지다. 신장 차이가 있다, 덩치가 크단 변명도 황당하다. 멕시코는 우리보다 작았으니까.
예전 누군가 입에 달았던 명언이 있다. 창의적인 축구를 하지 않는다고. 내가 보기엔 개개인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그나마 외국 나간 애들은 그 틀을 깼지만 남아 있는 애들은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이건 국내 지도 체계에 큰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고 있지 않음을 방증한다.
오직 이겨야만 한다, 좋은 대학을 가고 국가대표를 뛰고 프로로 전향해서 돈을 많이 번다는 목표만을 위해 사육된 결과다. 그 목표를 위해선 오로지 축구 외엔 생각할 겨를도 없고 해선 안된다.
창의적인 축구가 어떻게 사육 시스템에서 나올 수 있나? 굴리지 않는 뇌가 어떻게 창의적인 축구를 사고할 수 있는가? 지면 두들겨 패고 맞아야 말을 잘 듣는다는 생각이 가득 찬 지도자들 아래 어떤 애가 감히 창의를 주창할 수 있나. 이천수, 고종수. 천재라고 불렸지만 결국 제대로 꽃도 못 피우고 여론의 난타만 받다가 이젠 뭐 하는 지도 모른다.
두 번째 문제는 지도력이다. 히딩크는 이보다 더 열악한 환경 하에서 신화를 만들어 냈지만 후임으로 들어온 자들은 발끝에도 못 미치는 결과를 내고 있다. 사실 난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히딩크의 용병술에는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연고주의와 지역 패권주의의 철저한 배제. 누가 뭐라고 해도 그런 기미를 보이는 선수는 기용하지 않았다. 이동국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협회까지 나서 밀어줬지만 팀워크를 무너 뜨리는 게으른 천재라는 한마디로 단칼에 잘라버렸다. 그의 눈은 정말 섬뜩하도록 정확했다. 이 선수와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이후 히딩크 없는 천지에서도, 결국 그의 예언대로 존재감 없는 연예인으로 남았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를 배치할 줄 알았다. 능력이 있어도 포지션에 맞지 않으면 기용하지 않았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상대로 정해진 팀의 모든 것을 데이터화해서 선수들에게 주입하고 그에 맞는 훈련을 시켰다.
저질체력으론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이길 수는 없다. 전후반 90분 동안 쉴 새 없이 뛰어도 훨훨 날 만큼 지독한 훈련을 거듭했다. 아무리 스트라이커고 소속 팀이 소중하다 해도 가차 없이, 열외 없이 몰아세웠다.
선수들을 하나의 가치 아래 모을 줄 알았다. 기합이나 호령이 아닌, 애정과 관심으로 자발적인 충성심을 유도해 냈으니 머리가 터져도 붕대 감고 뛰는 투혼을 발휘했다.
천재 스트라이커나 챔피언 하던 선수들이 성공적인 감독으로 남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오히려 삼류 선수 출신, 중도 물러선 패장들이 훌륭한 지도자로 변신해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이 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지도자적 자질은 타고 나는 걸까? 물론 그 점도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유전적인 요인에 더하여 보다 넓게 보고 판을 짜는 훈련을 어려서부터 해온 결과가 더해져서 일 게다.
장비나 관우는 맹장이나 지략가의 재목은 아니었다. 공명은 그들의 사람 죽이는 재주에는 새 발의 때만도 못한 실력밖에 없었지만, 그들이 휘두른 칼 아래 스러진 적병의 수천 배를 섬멸한 지혜를 발휘했다.
요즘 때아니게 어린애 하나가 뭔 대표하겠다고, 무너진 담장을 지가 다시 세우겠노라고 설치고 있다. 난 처음 티브이에서 이 이런 노무새끼를 봤을 때 스포츠 신문 기자 정도로 알았다. 알고 보니 미국 명문대를 나와서 정치판에 기웃거리며 혜안이라도 있는 양 깝죽대니 불러다가 몇 마디 듣고선 그리되었다는데 실로 영악하기 짝이 없고 교활하기까지 하다. 언론도 제법 이용할 줄 알고, 동정도 얻을 줄 알고.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동안에 목소리까지.
하지만 여기까지다. 워낙 똥물에 있던 놈들만 있어 온통 구리구리한 판국에, 이런 애송이까지 나라 경영해 보겠다고 설치니 관심이 갈 수밖에. 하지만 경험이라곤 전무한, 입만 산 나발수야말로 무리를 지옥으로 이끄는 최악의 지도자가 아닌가.
예전 격투기 선수와 맞짱을 떠서 3회전을 버틴 애들끼리 모아 주먹질시키는 프로가 있었다. 그중 가장 날 웃긴 놈은 비디오로만 10년간 격투기를 연구했다는 친구였다. 30초를 못 버텼을 게다.
이야기가 이상하게 흐른다고 느끼실 게다. 축구 이야기하다, 정치 애송이 이야기하다 난데없이 격투기라니. 정리해 드리겠다.
창의적인 사고를 가질 수 없는 사회 시스템 하의 사람들은 지도자를 선택할 줄 모른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이들이 많을수록 혹세무민하는 무당들이 날뛰고. 그런 자들의 사악한 혓바닥에 현혹 당해 결국은 사지로 몰리는 법이니, 우리가 바로 지금 그 지경이 아닌가.
어젠 배달이 있어 차 안에서 라디오 방송을 듣는데 특이하게 남자 해설자, 남자 아나운서에 여자가 하나 끼어 있었다. 듣다 보니 알마나 웃기는지.
'풀백이 뭐에요?'
'풀백은 나발주절...'
'전부 외계어 같에요. 호호...'
'오모, 저거 너무 심한거 아니에요? 저게 어떻게 패널티 킥인가? 그게 되죠? 너무 편파적이네요.'
'오모.. 그럼 저 분이 페널티 킥이란 걸 차시는 건가요?'
이놔... 웃다가 가드 레일 들이박을 뻔 했다. 이거 참, 신선한 시도이고 욕설 난무할 시청자들을 진정시키는 특호약이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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