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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자의 입에 달린 말이 내일부터 라고 했나? 요즘 내 입에도 달려 있다. 하지만 게으름과는 조금 거리가 먼데, 그 이유는 아직도 이사 중임이라. 출근하면 새로 설치할 것이 생각나고 1시간 지나면 다른 배치가 좋아 보이고. 사무실 안에는 음악은 더이상 틀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기어이 스피커와 앰프를 달았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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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일할 시간이 없는게지. 게다가 뭐 좀 할만하면 방문이다. 오면 1시간은 기본으로 작살나지. 새 가게의 주인장께서 바로 옆에 작업장을 갖고 있는데, 분명히 1주일에 2-3일 출근이라고 했건만 이제 보니 매일이다. 그리고 나만 보면 커피 한잔하자. ㅋ 그러니 출근부터 30분 깨먹고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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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학 동창 녀석이 쓰지 않는 물건을 갖고 온다나? 오랫동안 얼굴도 못봤지만 사실 주에 한번 정도는 통화를 하며 헛소리나 건네는 막역한 사이지. 더하여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다할 처지에 그야말로 땡큐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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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선 여기저기 둘러 보디니 대뜸 마누라랑 같이 일하니 좋겠단다. 뭔 개 얼어죽을, 씨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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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 한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늠 마누라는 오래 전에 먼저 가셨다. 사연은 슬프고도 길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하고. 재혼은 생각도 없이 오로지 딸래미 하나만 지극정성이라. 이제 애비 수발 들어야 할 가시내 밥을 아직도 지가 차린다? 이 대목에서 어이 없어 할 꼰대들도 계시겠지만 사정을 알고 보면 그것도 속죄의 일환이라. 뭔 소린지 언더가 스탠드 하시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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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당간 갖고 온 것들이나 보자. 오래 전 DVD 대여점을 했던 터라 유아용 DVD 한박스. 오.. 이건 좋네. 상태도 신품 같고. 그런데 하나 더 꺼내오는데 봉고 같은 거야.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작은 북이 두개 달려 있는건데. 드럼 같기도 하고, 저렴한 건 분명 아냐. 이거 뭐냐고 했더만 먼저 간 마눌이 딸래미 갖고 놀라고 사준 거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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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받아 놓고선 식사하러 간 자리에서 난 여느 때처럼 애인은 어찌되었냐고 농을 건냈지. 어라? 그닥 표정이 밝지를 않아서뤼 걷어 채였나 싶었지만, 왈 아직도 만나긴 만나는데 마누라 같지가 않다네. 당근이지, 짜샤. 애인이랑 마눌이랑 우째 같겠노 하는 개소릴 던져보았지만 영 반응이 시원찮고 자꾸만 우린 잘 지내냐, 같이 나이 들어가며 얼굴 보니 좋지 않냐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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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 눈만 뜨면 1라운드 개시하고 잘 때까지 소리 지르는 사이에 뭔.. 이게 미쳤나 싶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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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그전에 다른 일도 있었어. 뭐냐믄 말이지, 어제 형이랑 부모님이 오셨는데 집에 관련된 질문이었어. 난 대답을 한다고 하는데 말을 하면서도 뭔가 이상허더라고. 그러니까 전두엽에선 이게 답이 아니잖아 하는데 입에선 엉뚱한 소리가 장시간 나오더란 거지. 그리고 끝엔 질문이 생각나질 않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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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벙 쪄선 '니 지금 머라카노?' 하는데 나도 어안이 벙벙하더라고. 기실 그전부터 손에 든 물건을 찾질 않나, 너무도 친숙한 단어들이 생각나질 않기도 하고, 했던 이야기 하고 또 하고. 오죽하면 아랫집 장사장이 그 이야기 몇번째 하는 거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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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상당히 심각한 치매 전조가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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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그녀석 가고 난 후 정신 없이 정리하고 글 올리는데 갑자기 그 드럼이 눈에 들어오더란 거지. 이 새끼가 왜 갑자기 이걸 들고 왔을까나. 문득 기억나는 건 3년 전인가? 다 무너져 가는 국산 똥차를 버릴 생각은 않고 타고 있길래 고마 폐차해라 했더만 왈, '마누라가 몰던 차라 쉽게 버릴 수가 없구만.'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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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메.. 이런 개잡늠도 순정으로 남의 가슴 먹먹하게 하네 싶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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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를 연결해 보니 답이 나오더만. 버리고 지 갈길 가야 하는데 마눌이랑 추억이 깃들어 있는데다 아장걸음하던 딸래미까지 겹치는데 우째 버리겠노. 게다가 날이 갈수록 잊어질 줄 알았던 그 아픔들이 새록새록 솟아 올라 견딜 수가 없었던 모양이라. 결국엔 날 잡아 나에게 넘겨 버린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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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관계상 오늘 일들을 전부 읊었다면 다들 공감하시겠지만, 조금은 뜬금없는 추리지? 허나 시방 퇴근인데 그럴 수는 없고, 좌우당간 앞뒤 연결해 보니 딱 그 마음으로 들고 온 거라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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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 그리 짐작하고 있는 내가 우째 팔아 먹겠노? 갖고 있다가 혹시 물어보면 다시 돌려 줄 요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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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전부터 치매 검사 받으러 안가냐고 아우성이길래 시끄럽다 하고선 나왔지만 영 개운치가 않다고. 니미럴 차라리 켁 뒈지면 병원비라도 아끼지, 바지에 똥 발라가며 넌 누구냐, 그리고 난 또 누구냐 하며 살긴 죽어도 싫거든. 녀석에게도 물론 이바구했지. 그런데 다소나마 위안이 되는 건 지도 그렇고 지 친구들도 매 한가지라네. 다들 모이면 볼만 하겠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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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선 하는 말이 치매라도 마누라가 살아 있으면 좋겠다는 거야. 시발롬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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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케 생각해쇼? 참나 오늘 따라 심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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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리스트 다 땠는데..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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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1IBdZ645S-o?list=RD1IBdZ645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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