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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9시부터 난데 없이 전화벨이. 하기사 요즘은 흔한 일이 되었다. 다들 새벽 잠이 없으신지 6시에도 종졸 전화 오는 걸 보면 이 역시 베이버 부머들의 은퇴 탓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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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번호 031이라. 이건 분명 스팸이야 하고선 끄려다가 싸한 느낌이 들잖아? 해서 받았더니 훈련소에 있는 아들이더만. 공중전화 3분 동안 할 말 다해야 하는데, 뒤에선 구렁이 줄이 기다리지 밥 먹으러 가야지. 목소리가 다급하다. 그 와중에 사격훈련 통과해서 지는 놀고 탈락한 녀석들은 휴일 반납하고 총 쏘러 간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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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참 나완 다르네. 나로 말씀드리자면 겨눠서 꽂거나 넣는 건 잼병이다. 농구공은 골대 너머로, 축구공은 항상 내 의지와는 상관 없는 방향으로. 해서 구기종목은 오래 전에 포기했는데. 이게 군에서 뽀록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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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방위병 중대장은 서른 중반의 대위였다. 무쟈게 진급이 늦은 거지. 지보다 어린 육사 출신 신참 중령이 대대장인데 말이야. 조만간 전역을 각오했는지 뭐든 설렁설렁. 하지만 부하 사랑은 지극해서 현역병들, 특히 사고로 해체된 수색대 병장들의 횡포를 잘 막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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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성격이다 보니 자기 바로 앞에서 행정 수발 거드는 우리들이야 얼마나 이쁘겠어. 그때문에 중대 내무반 고참들은 우리만 보면 트집 잡아 어떻게든 지들 훈련에 넣거나 단체 기합에 열 세우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초창기 몇번 엠병 떨다가 중대장에게 호되게 당한 후 이후론 잠잠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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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1년에 한번은 사단 사격장에 총 쏘러 갔었어. 잘 아시겠지만 명중보단 탄피가 더 중요하던 시대잖아. 십여 발 쏘는 중에 점수 낮은 애들은 바로 옆에서 땅개가 되어 뒹굴고 우린 옆에서 열나게 집계하고 있었지. 그런데 말이여, 고참 한넘이 벌떡 일어서더니
'중대장님. 행정병은 총 안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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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자 말자 나갈 6개월 짜리는 총알도 아깝다고 하는 판이라 후임 두고 결국 내가 나서야 했지. 딴엔 스나이퍼 영화도 보고 해서 나름 자신 있었다고. (사실 훈련소에서도 그다지..) 후... 숨을 내쉬고 한발, 한발 정성들여 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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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니미럴. 1발만 과녁 바깥에 맞고 나머진 어디로 갔노? 킥킥대는 비웃음에 그만 쥐구멍이 어디냐 싶더만. 그 와중에 가방끈하고 총하고는 상관 없데이 하는 야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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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노무 자식. 중대장 얼굴에 똥칠을 해도 정도가 있지. 엎드려 뻗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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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자대 배치 후 처음으로 맞네. 에라. 자포자기 심정으로 자세 취하고 있는데 뭐가 퍽퍽거리는데 아프질 않네. 과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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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 봐라? 안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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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장이 직접 빠따를 치는데 어쩐지 그 눈길이 절실하다. 아항, 아픈 척해야 하는구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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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녁이 뭐로 만들어졌다? 넓직한 합판에 뒤에 소나무 기둥을 댄 거지. 그건, 마동석이 휘둘러도 아플 수가 없거든. 그 다음부터 한대 칠 때마다 억억 소리를 내며 허리를 휘청거렸지. 하지만 다들 바보가 아니잖아? 한놈이 또 나서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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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장님. 제가 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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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선 시위 진압봉을 꺼내잖아? 이게 미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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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 새꺄. 어디 중대장이 직접하는데 시건방을 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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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이바구 하자는 건 아니고.. 뭐든 때리거나 몰아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물론 공포를 매개로 어떤 단합된 보여주기식 행동들을 뽑아낼 수야 있지. 하지만 지금 내 생각엔 전투력하곤 전혀 상솬이 없는거야. 만약 그게 맞다면 어느 나라고 그런 식일텐데 그렇게 무작배기로 사람 조져대며 군생활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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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탈북한 회사 직원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더군. 북한군 내에서는 구타가 그리 흔한 편이 아니라고. 총을 못쏘거나 구보에서 탈락하면 그걸 인정하고 열외를 시킨다더만. 그리곤 다시 시켜보고, 도저히 안되면 보직을 바꿔준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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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듣는 이야기지? 주변에 툴북자들이 있으면 한번 물어봐. 북한이 좋다는게 아니라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고 믿고 따르는 분위기만 조성해도 훈련의 반은 성공이란 뜻이야. 눈알이 베뱅이인 애들을 굴리고 때리고 잠 안재우면 뭐만 남는다? 악만 남지. 가물에 콩나듯 효과를 볼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가 없어. 결국 맞으며 생활한 이들이 우리 사회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보면 연일 신문지상을 뒤덮는 폭력과 살인은 다 이유가 있다고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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