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병은 소위 말하는 관심사병이자 고문관입니다. 부선망 독자, 들어 보셨나요? 살기 힘든 시대에, 아비도 없는 자식들에게 국가가 부여하던, 유일한 혜택입니다. 6개월만 구르다 나가라.
하지만 대부분 문제를 안고 들어옵니다. 김이병도 마찬가지. 어딘가 나사가 하나 풀린듯한 시선, 그리고 뜬금없는 헛소리. 사람 환장하게 하는덴 타고났다니까요.
선배님.
와?
여자 뽕가게 하는 거 알아에?
웅? 이넘이 돌았나, 먼 소리여.
여자 머리카락 있잖아에, 그거 뽀바서 대가리에 매듭지어 감아주고 끄트머린 조금만 자르고 놔두거든에. 그래 갖고 해주면 완전 돌아삔다 아입니꺼?
니 누구한테 해보고 그런 소릴 하냐?
우리 마누라요.
ㅜㅜ..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입은 지구에.
열아홉, 어린 나이에 사고 치고 21살에 입대했으니 오죽할까, 난 그런 놈이 너무 안타까워 야간 근무도 빼주고 단체 기합이라도 있는 날엔 부러,
야이 씨발러마, 일루 안 튀어와?
누구요?
김이병, 이 개새끼.
또 일 저질렀구만요.
후임들이 그걸 모르겠습니까? 알고도 모른 척하는 거죠. 그들도 영창은 무서우니까. 어느 봄날 아침, 추적추적 구슬프게 비가 내립니다. 갑자기 꽝하고 열리는 행정실 문. 3사 출신 썅칼입니다. 그래, 오늘은 어쩐지 조용하다 싶었네.
'어제 근무선 놈 중에 대대장님께 아자씨라고 한 놈이 누구야?'
'그럴 리가요? 잘못 아신 거겠죠.'
'이 새끼가 내가 없는 말하는 걸로 보여.'
이어 날라오는 조인트에 난 난데없이 돌 맞은 강아지처럼 깨갱하며 제자리 곰베를 쳤습니다. 하는 수 없이 내무반으로 가서 누군지 물어보았습니다.
'어제 대대장님께 아자씨라고 한 넘 있다메? 누구여?'
'그 사람이 대대장이라에? 난 그냥 동네 아자씬줄 알고..'
흐미...
'얌마, 매일 보는 대대장을 몰라보면 어떻게 해?'
'내가 우째 압니꺼. 반바지 입고 철조망 근처에 서성대길래 그랬는데에?'
전원 연병장에 집합. 썅칼의 호통에 140여명에 달하는 방위병들이 연병장에 모이고 그 질척거리는 진흙 위를 김밥처럼 굴렀네요. 지나가던 육사 출신 대대장 왈,
'적당히 해라.'
개뿔, 1시간을 더 굴리고서야 끝이 났습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고참들이 으르렁거립니다만, 그래도 역성을 들 수밖에요.
'고마 해라. 오늘 다들 힘들다.'
이너마, 전혀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이 하는 소리.
'00상병님요, 우리가 머 잘못했는데에?'
푸헐... 내 입이 더 아프다.
아놔, 조금 덜떨어진 넘이 지른 헛소리가 정말 군기와 관련 있나요? 이 씨바랄 새끼, 다시 만나면 대갈통을 박살 내고 싶었건만 제대 후 감쪽같이 없어졌네요? 전방 어디로 대대장 달고 갔다는데, 혹시 이 글 보고 기억나시면 연락 주세요. 밀린 회포나 껄쩍시럽게 풀어보게.
그렇게 배려해 주었건만 놈은 결국 탈영을 하고 맙니다. 힘들었겠지요. 아무리 내가 감싸도 다 볼 순 없으니까. 48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려도 놈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각오하고 헌병대에 보고. 들어오랍니다. 위병소부터 철모로 머리통을 갈기기 시작하고 빡빡 기어 수사관 사무실로 갔습니다. 예의 상사와 중사가 어솨하며 싸다구부터 날리네요.
'우리 힘들어, 새꺄. 알아서 잡아 와라잉?'
귀대해서 결국 체포조를 결성했네요. 우암동 토박이 둘, 논두렁 셋, 그리고 나. 여섯으로 구성된 체포조는 그넘 집으로 가선 마치 악질 채권 회수자처럼 방안에 자리 깔고 앉았습니다.
'어무이, 제수씨. 이러면 안됩니더. 어디 감찼는지 빨리 말하이소.'
'우리도 몰러. 진짜 몰러.'
'어무이, 그런다고 복무 기간 단축 안됩니더. 이제 3달 남았는데 징역 가면 2년은 썩어야 해에. 어서 빨리 말하이소.'
그 말엔 결국 놈의 수첩을 꺼냅니다. 난 꼼꼼히 뒤적이며, 하나하나 전화를 걸었습니다. 흠.. 한넘으로 부터 촉이 확 와닿습니다.
가자, 당감동이다. 수사비를 주나, 그렇게 잡아와도 포상휴가를 보내주나. 내 돈 써서 택시 타고 놈의 친구 집에 도착해선 모든 퇴로를 차단하고 논두렁에게 월담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놈이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채로 끌려 나옵니다. 흐미... 한참 떡질하고 있었나 봅니다. 빤스 앞엔 찐득한 뭔가가 묻어 있고 따라 나오는 뇬은 얼마나 급했던지 치마를 뒤집어 입었네요.
난 놈의 목덜미를 잡고 윽박질렀습니다.
'조용히 갈래, 아니면 너거 마누라한테 갈까?'
그렇게 영창에 집어넣고 난 일주일 후, 난데없이 울리는 딸딸이 (군용 전화기, 울리는 소리가 따라락해서 딸딸이. 탁탁이완 다릅니다. ㅋ)
'통신보안, 튱성. 00대대 00타격대 상병 000입니다.'
'이 씨발럼. 김이병 어디 갔어?'
한동안 말을 못하겠더군요. 지들이 데리고 있을 김이병 행방을 왜 나에게?
'무슨 말씀인지 모르지 말입니다.'
'너 이 새끼. 빨리 찾아내. 00사단 헌병대대 창설 이래 탈옥한 새끼는 이놈이 처음이야. 너 죽을 줄 알아라?'
'00상사님, 전 분명히 신병 인계했고 소관은 그쪽입니다.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하여간 찾아내. 개새끼야.'
'전 개새끼가 아니고 사람 자식입니다. 그리고 난 함부로 명령 없인 움직이지 못하니 대대장님께 이야기하시고 다시 전화 주십시오.'
얼마나 화가 나든지요. 그 자리에서 바로 00사단 보안 대장에게 전통을 넣고 엿 먹어라. 훗날 들어보니 그 씨바랄 새낀 강등과 감봉을 함께 받고 좌천되었다네요.
나중에 들었는데 놈은 전기 철조망을 타 넘고 탈옥했답니다. 뉘미, 쇼생크 탈출도 아니공...
그리고 난 두 번 다시 김이병을 볼 수 없었습니다.
내가 왜 군에 대해 분노하는지 이젠 좀 아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