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춤추러 안 간 지가 아마 30년은 족히 넘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하면 술 만땅되어 문어처럼 흐느적거린 기억이 술 깬 아침엔 왜 그리 쪽팔린지.
아침 점호를 때리고 관내 순찰 (?)을 도는 데 위병소에서 떵개잡는 소리가 난다.
'앞으로 치침, 디로 치침. 아쭈구리, 동작 바라, 빨리 안 굴러? 어기 후가 왔나? 씨새꺄.'
혀가 짧아 고생인 강 상병이다. 철공소하다 왔다는데 인상도 고약한데 소위 말하는 논두렁 출신이라, 그의 혀 짧은 소리에 미소라도 머금으면 그날로 그 졸따구는 초상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
'머꼬?'
'동방우 셋끼가 하나 교육 바더러 왔는데 군기 빠지가꼬에.'
가끔 예비군 중대장들이 수하에 거느린 동바위 중에 애를 먹이면 기동타격대로 1주일 정도 보냈다. 영창이나 군기교육대 대신이다. 기록이 남지 않으니. 하여간 중대 애들은 간만에 소고기 본 사자처럼 달려들었고 이건 뭐... 계급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제 들어온 이병한테도 두들겨 맞았으니까.
근디... 어서 많이 본 넘이라. 오호, O대뽀구만. 이놈으로 말하자면 물에 빠지면 대가리 처박고 붕어랑 수다를 떨 만큼 야부리의 전설이었다. 게다가 불량 서클에 가입해서, 실력도 없는 주제에 약한 애들 담배나 뜯고 하던 상악질.
'니 오랜만이네? 우리가 이래 만날 줄 우째 알았겠노? 그쟈, 봄날이 오면..'
나 역시 꼴같잖아 비스무리한 서클 만들었다가 걸려 초장에 박살 나고 반성문 쓴 기억이 있는 터라 디지든 말건 내비 뒀다.
'악.. 악... '
초 여름 위병소 앞은 돼지 멱따는 소리로 얼마나 처연한지. 한 바퀴 주욱 돌고 오니 굴리던 놈이 쉬고 있네? 이런 개 쓰바랄....
일단 사무실로 불러 앉히니 눈물부터 글썽거린다.
'OO아, 내 좀 살리도고.'
'시바랄 넘이 어디서 반말이고?'
퍽하며 놈의 얼굴이 내 앞으로 쏟아지네. 같이 온 강상병이다. 그만 마음이 약해지면서 그만하라고 말렸지만, 모...사실 그간의 죗값은 충분히 치를 날이 창창하니까. 히히.
사연인즉, 입대 전에 허름한 나이트 디줴이를 했나 보던데 몇 푼 받진 못해도 쏟아지는 조명 아래, 춤꾼 내려다보며 지휘하는 쾌감에, 더하여 가끔 굴러 들어오는 공짜 여자 맛을 잊지 못해 밤마다 거길 갔고, 갔다 하면 술에 취해 지각이라. 게다가 논두렁들 수시로 불러 가우다시 잡으며 동사무소 분위기 망치니 중대장이 견디다 못해 아예 봉고파직하고 지옥으로 배치를 한 게다.
그나저나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어찌 들었는지 친한 애 몇몇이 전화를 해선 불쌍한 놈이니 잘 좀 봐주라고 부탁까지 하니 동창회까지 저버릴 순 없어 놈을 느슨하게 놓아 주었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지 않나? 대가리 검은 짐승 들이지 말라고.
처음엔 조심을 하더니 틈만 나면 목공소로 빠져 개기질 않나 애들 모아서 택도 없는 무용담이나 늘어놓고. 저녁만 되면 어찌 되었건 사역이나 훈련 빠져 나이트 갈 생각만 했다. 매번 그럴듯한 변명이지만 그걸 모를 내가 아니다. 하지만 꾹 참았다. 그넘의 인연이란.
게다가 뭐라고 할 만하면 어미가 편찮으시니 동생 대학을 보낼 돈이 없다는 식으로 구리를 치며 내 약한 감정에 호소해댔다. 그려, 우리가 또 어디서 만날지 아냐. 그땐 니가 나 좀 봐줘라.
하루는 저녁이 다 되어가는데 나갈 생각도 않고 있다. 뭔 일이냐고 물어보니 나이트에서 잘렸다나? 나 참, 그런 동네 양아치들이랑 핼배들 오는 나이트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런데 헉... 알고 보니 그 위 기수 중 한 명이 그 자릴 꿰찬 게다. 하여 그넘을 불러 일이 왜 이 지경이 되었냐 물어봤더니.
'절마요, 영어 발음이 안되에. 바나나라마를 바나나마나라 하질 않나.'
ㅋㅋㅋㅋㅋ... 놈이 혀가 짧은 건 아니다만 워낙 공부와는 담을 쌓은 데다 그나마 밥벌이라면 귀동냥으로라도 확인해보등가. 염소 똥고집 피우며 발음을 개판으로 하다가 한 취객이 무대로 맥주병을 던지고 꼬장을 피웠다나? 그런데 문젠 그 취객이 사장 친구라나? 다음 날 사장에게 저런 무식한 새끼가 무신 디줴이를 한다고 따진 모양. 그날로 모가지 잘리고 근처 동네 카바레에서 무대 사회를 보던 놈을 급거 스카우트했다나?
니기미... 난 태어나서 그렇게 웃은 적이 없네. 얼마나 웃었던지 나중에 허리에 쥐가 나더라고.
'칭구야. 일하다 보면 잘 안 될 때도 있제. 다 잊고 새로 일 찾아바라. 그라고 영어 발음 안 되면 나 찾아오고.'
지 버릇 개주나? 다음 날부터 실실거리며 뺀돌이처럼 쏘다니고 온갖 개주접을 떠는데 이게 점점 간덩이가 커지더니 현역 수색대를 끼고선 위계질서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전하, 더 이상 저 역적의 패악을 두고 봐선 아니 되옵니다. 극형으로 다스려야 마땅하리라 사료되옵니다.'
전국 각처에서 유생들의, 아니 기수별로 불만이 쏟아져 나오더니 급기야는 내가 돈을 상납 받는다는 괴소문까지 돌았다. 여기에 중대장까지 나서서 봐줄 것 없다, 제대 얼마 남지 않은 놈이 비리에 연루되선 되겠냐 하니.
읍참마속까진 아니지만 이미 죄상은 모을 대로 모아두었으니. 그중 제일 감정이 좋지 않던 바로 밑의 기수 선임을 불렀다. 이 친군, 정말 무서웠다. 진짜 **파 출신으로 돌격대장까지 하다 들어왔으니까.
'조지까에?'
'나의 외면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그날 부로 놈은 중대 최하위로 내려앉았다. 내무반에 들어가면 문 앞에 부동자세로 앉아 있는 떨고 있는 놈을 볼 때마다 불쌍했지만 어쩌누? 다 지 업보인걸. 그리도 후회할 짓을 왜 했을까나.
일전 커피에 침 뱉은 법새를 기억하실 게다. 나오면서 그넘에게 부탁을 했다. 내가 없으니 너라도 잘 봐주라고. 하지만 그럴 리 없을 거라고 짐작을 했다. 왜? 그넘이 내가 이쁘고 좋게 보이겠나? ㅋ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동창 중에 한 녀석이 느닷없이 그녀석과 나와의 군생활을 물어보더라. 굳이 캐묻고선 전하길, 부산 뒷골목 어디에서 모다구리 (몰매) 맞아 죽었다나? 아마 내 앞에서 보이던 행실을 사회에 나가서, 그것도 뒷골목에서 겁대가리 없이 해댔으니 당연한 결과 아니겠냐고 하더라고.
오늘 유튜브에서 바나나마나가 나와서 적어 보았다.
'세상 이야기 > 즐거운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6.5 inch Stentorian full range unit pair in original cabinet (0) | 2018.06.02 |
---|---|
사천도 (邪天刀) (0) | 2018.05.31 |
만물상을 꿈꾸다. (0) | 2018.05.29 |
오늘의 한마디? (0) | 2018.05.29 |
부산 세관 사시미 사건 (0) | 2018.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