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즐거운 하루

I have lived in China Chapter 1-7

운산티앤씨 2018. 5. 3. 13:15




A Better Tomorrow Ost / 영웅본색 OST


어디까지 했더라? 나이가 드니 자꾸 기억력이 감퇴됩니다. 중국 이야기니 중국 노래로...

그렇죠, 잔망스럽고 요망한 중국 기지배까지 했습니다. 사실 내가 무슨 정의감에 불탄다고, 그리고 아무리 불륜 사라 한들 끼어들 수 있습니까? 다만 난 일 시킬 때마다 자리에 없는 기지배와 유발자들이 짜증 났을 뿐입니다.

참다 참다 터진 난 모르게 남자 직원 채용을 진행했고 날을 잡아 이리 말했습니다.

'If you do not stop calling to your two lovers, I will let you quit this job. Choose one. Should I intervene your dirty relationship with son of bitch in Samsung or will you take care of it by yourself not to give any affect to my company?' 이 기회에 잊었던 영어 공부 좀 하십쇼? ㅎㅎㅎ

알아서 하겠다는데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 그때 집안 살림도 해야 해서 조선족 아주머니를 한 분 채용했는데 이들 둘 사이도 심상찮습니다. 사사건건 부딪히네요. 나이도 어린 년이, What is worng with her? 아놔 때론 중국어로 싸우고 나한테 와서 하소연하는데 아무래도 안되겠다고요.

SOS를 날렸습니다. 고국에 계신 마눌님께. '그래? 내가 가서 정리할게.' 가뜩이나 젊은 중국 여자애와 같이 있는 게 못마땅했던지 당장 온답니다. 그러나 문젠 나도 그렇지만 집사람도, 5살 된 아들도, 3살 된 딸도 중국어는커녕 비행기도 한번 타보지 않았다는 거죠. 그래도 매일 저녁 싸구려 빼갈에 멀어가는 내 눈에, 두 여자 사이에 끼어 스트레스받으며 일도 진척 없지, 친구 넘은 실적 없다고 질알 해대지. 사면초가 신세로 점점...

결국 3월 중순 식속들이 중국 소주로 오게 됩니다. 오랜만에 아이들 보니 그리도 좋을 수가 없더군요. 당장 전기 자전거를 하나 사서 틈만 나면 뒤에 태우고 다녔지요. 그러나 처음엔 문제가 많았습니다. 모두 말 한마디 못하니 아지메에게 살림을 맡겼는데, 아무래도 삥땅이 의심된다는 마누라의 정보에다 애들은 유치원 보냈더니 입장하자마자 닭똥 같은 눈물 흘리며 울고불고.

국제 유치원에 넣었으면 좋겠지만 돈이 없다 보니 로컬 유치원에 가라 할 수밖에. 이거 큰일 났네 하는데 어라? 이틀이 지나니 유치원 가고 싶다고 하네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국 애를 구경도 못해 본 원장님 이하 선생님부터 아이들까지 호기심으로 잘 대해주고 지들 노는데 끼워주고. 말은 통하지 않아도 재미는 있었던가 봅니다. 6개월이 정도 지나자 아들이 통역까지 해줍니다. 애들이 빠르긴 빠르더군요.

여기에 하나 더. 귀국 후 아들이 그러더군요.
'아빠, 여긴 이상해. 중국에선 모두 친구가 되는데 우리 학교엔 부잣집 애들은 따로 놀더라. 나보고 가난한 애들하곤 놀지 말래, 그리고 어떤 애는 나보고 짱깨라고 놀려.'

자식 교육 참... 말로만 들었는데 이런 생양아치 부모란 인간들을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중국에서 듣기론 그네들은 공산주의 사상에 오랫동안 젖어있다 보니 만인이 평등하다, 그래서 식사를 할 때 사장과 운전기사가 같이 밥을 먹는다, 그리고 스스럼없이 술과 담배를 권한다 했고, 또 직접 목격했지만 어디까지가 진실인진 모르겠습니다. 어딜 가나 돈이 도깨비방망이 노릇을 하니, 그런 모습은 아무래도 개인적인 관계로 한정해야 하지 않을까.

애들 문젠 그렇게 술술 풀려갔습니다. 이후 아들은 시험 볼 때마다 백 점을 받았고 로컬 초등학교로 진학해서 그곳 아이들과 선생의 사람과 관심을 독차지했으며 딸은 이쁘장하게 생겨 귀엽게 중국어를 나불대니 어딜 가든 중국 아지메들이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자신감이 넘쳤습니다만 이후 나의 잘못된 결정으로 귀국하고선, 여기선 그저 그렇게 애들로 변해 버렸네요.

한편 집안에 성격 다르고 나이 다른 여자가 셋이니 이건 사람 완전 돌게 하더만요. 어린 기집애는 조선족 아지메 욕하고, 아지메는 중국 기집애 욕하고 마누라는 둘 다 마땅찮아 하고, 또 둘은 모여서 마누라 흉을 보고. 그리고 업무 중 사라지는 버릇은 여전하고.

친구넘은 수시로 전화해서 이쪽에 PVC 3 깡통 준배 해놨다, 매수자 찾아봐라. 흐미... 말이 통해야 뭘 하제. 이 기지배도 아는 게 없으니 어쩔 줄 모르고. 할 수 없이 인터넷을 뒤져 재활용 업체를 찾아라, 그리고 메일 보내라 했더니 몇 군데서 연락을 오지만 그다음이 문제라. 도시 가자고 해도 못 간다. 사장님 혼자 가라. 말이 돼야지요.

슬슬 기지배도 준비를 했나 봅니다. 나가던 날 오전에 작심하고 질알을 하더군요. 그리고 아파트 앞엔 애인도 대령시켜놓고. 위로금을 뜯어내려 했나 본데 나한테 그런 짓 하면 뒈집니다. 이미 내 성깔 알고 있었던 타라 소릴 지르며 나가라고, 마누라에게 일당 계산해서 몰아내고 창문 밖으로 보니 애인 넘이 쳐다보고 있네요.

'존말로 할 때 가라. 씨버랄 새끼야. 개수작 부리면 니 회사 가서 다 뒤집어엎어 버린다.'

우째? 가야지. 그렇게 하날 정리하니 이번엔 마눌이 아지메를 내보내라고 난리입니다. 거참 재미난 건 이 양반, 일을 대충 하면 사무실 소파에 누워 쉽니다. 처음엔 무쟈게 당황했지요. 아니 빈방 있는데 거기서 쉬지, 저게 모야? 손님이 와도 뒤로 완전히 젖히고 앉아 차 한잔 내올 줄 모르니. 하는 수 없이 업무 중엔 사무실에서 쉬지 마라, 빈방 있지 않느냐 했더니 마땅찮은 표정으로 따르긴 합니다만 이후엔 들어가면 3-4시간 안 나옵니다.

기지배 쫓아낸 후 들어온 녀석이 웨이입니다. 한고조 유방의 고향인 패현 출신인데 키도 크고 싸움도 아주 잘하게 생겨서 뽑았지요. 참고로 패현이 위치한 서주 지방 사람들은 체구가 아주 큽니다. 내 키가 174이지만 나보단 작은 사람은, 여자건 남자건 보질 못했습니다.

영문학 전공이라 대화도 곧잘 통하고 센스도 있어 알아서 일도 잘 처리하고. 이 녀석과는 아직도 호형호제하며 지냅니다.

그런데 사실 그 아지메는 흑룡강 부동산업자가 소개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종종 찾아와 나랑 술도 한잔하고. 이 친구 돈 많이 벌었습니다. 진즉에 소주에 와서 중국인들하고 관계 좋게 가져 독점 아파트가 꽤 있었는데 마침 불어닥친 한국 기업의 덕을 톡톡히 본 거죠.

내가 아지메를 내보낼 의중을 비추자 아주 불편해하더군요. 하지만 싫은 사람과는 난 같이 있지 못합니다. 이미 시장바구니에서의 삥땅도 눈치챘고 무엇보다 마눌에게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건 뭐 지가 사장인지.

하여 웨이와 상의해서 녀석의 친척 여자를 넣기로 하고 잘라 버렸습니다. 사실 난 봉급을 후하게 주는 편인데다 까탈스럽게 굴지 않았습니다. 일 없으면 쉬어라, 어떤 날은 오지 마라, 어딜 가서 이만한 호구를 잡을까, 괘나 그 부동산업자에게 투덜댔나 봅니다.

이즈음 난 소주지역 한상회에 가입을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들은 건 실로 충격이었지요. 동포라고 믿고 채용했는데 회사 돈이 자꾸 센다. 통역을 시켰는데 나중에 보니 중국인과 짜고 물 먹이더라, 일을 제대로 안 한다 등등 더 심한 건 해고를 시켰더니 다음 날 그 직원의 고향에서 조폭같이 생긴 애들이 와서 회사를 아예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더하여 사장을 납치해서 호텔에 감금하고 며칠 동안 두들겨 패고 돈을 뜯더라까지 실로 소름이 돋을 일이었지요.

그제서야 난 이 동네가 그다지 안전하진 않구나 싶었네요. 하여 조심을 했는데도 결국 사달이 났습니다. 중국엔 전세는 없죠. 대부분 월세인데 빌트인 시스템이라 야징이란 보증금이 항상 붙습니다. 보통 3-4개월 치 월세를 거는데 퇴거를 할 때 시설에 손상이 있을 때를 대비해서, 미리 배상금 조로 걸어 두는 거죠. 하지만 일상적인 손실까진 아닙니다만 대부분 받지를 못합니다.

난 웨이에게 상의를 했더니 알아서 하겠다고 하더니 이사를 마친 후 야징을 받아왔네요? 거참 기특하네 싶었는데 한 달 후 난데없이 전화가 옵니다.

'사장님, 거기 탁자 유리가 깨졌는데 왜 배상을 안 하십니까?'
'뭔 소리요. 이사 온 지가 한 달이 넘어가는데 이사할 때 확인 대해놓고 이제 와서 우리가 어떻게 책임집니까?'
'원래 야징은 주인에게 받아 가면 안 돼요. 그런 것도 몰라요?'

아놔, 이 썅너므 새끼가 사람을 개호구로 보네요.

'보소, 야징이 뭐요? 보증금 아뇨? 내가 시설을 이상 없이 썼는데 왜 그걸 포기하란 거요?'
'좋게 말로 해선 안되겠네?'
'뭐? 너 뭐라고 했어. 이 새끼가 대가리가 박살 나봐야 정신 차리겠네. 너 어디냐? 내가 가마. 이 존만한 시키야. 너 부산놈 못 만나봤제? 바닷물 냄새 좀 맡게 해주마.'
'뚜뚜뚜...'
'이놈 봐라, 왜 전화를 끊어, 십새야. 너 어디냐니까?'
'뚜뚜뚜..'

그때 웨이란 녀석이 들어오더니 자초지종을 묻습니다.
'Boss, you shoudl not solve this kind of problem like your way. I will handle it. You just calm down and wait.'

그리고선 전화를 걸더니 1시간 정도 통화를 합니다. 그리고선 해결되었다고 하네요. 아니나 다를까 사람 불러 해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더라나요. 그래서 웨이 왈 니 마음대로 해라, 대신 찡차 (경찰) 부를 테니 따져 보자, 그리고 나도 고향에서 사람 좀 불러도 되겠냐. 누가 세나 볼까? 결국 이 간단한 대화를 1시간이나, ㅎㅎㅎ..

흠.. 한국인이 도움을 요청하면 꿈쩍도 하지 않지만 같은 한족이 타민족에게 해코지 당하면 즉각 출동이라. 게다가 한족 깡패라면... 그러고 보니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신 사장님도 꽤 있더라는.

이 일이 있고 난 후 난 내 사업에선 한국말 할 줄 아는 이는 무조건 배제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때 떠돌던 말, 조선족과 현지 한국인을 믿지 말란, 을 전적으로 믿지도 않습니다. 사업상이 아닌 관계에선 친하게 지냈던 동포와 한인들이 많았고 난 어떤 불편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해관계가 걸리니 생기는 불화니 화근을 아예 제거한 거죠.

외국에서 사업을 하실 땐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현지인이든 누구든 믿지 말라는 거죠. 그리고 반드시 정확하게 확인을 한 후 액션을 취하시라, 그리고 가능하면 현지인들을 대할 땐 극도의 존경을 보여라. 먼저 대접을 해야 나도 대접을 받는 법입니다. 그리고 사업이 궤도에 오르고 정말 믿을 수 있는 이가 나타나면 쉴 수 있으되, 그전까진 한국에서의 노력의 열 배도 모자란다고.

마지막으로... 이 글의 마지막입니다. 연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만난 젊은 동포애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야,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즉 니들이 삥당을 친다는 이야기 말이야, 진짜냐?'
'사장님들은 돈 많잖아요. 몇푼 되지 도 않는 걸 갖고 그래요? 혹은 우린 남의 돈에 손대지 않습니다.'

하기사 나도 회사에 있을 때 사적인 용도로 돈은 쓴 적이 많습니다. 다들 그리 하니까요. 채용했다면 일단 믿으되, 정 의심 스러우면 그런 불화가 생기지 않을 일을 시키든지, 아니면 적당히 눈 감아 주던지. 여기서도 벌어지는 일에 너무 민감하셨거나 이중적인 판단기준을 적용햇던 건 아닌지요? 난 아직도 그리 생각합니다. 솔직히 난 웨이도 믿지 않습니다. 알아서 적당히 해 먹어라 생각을 하죠.

혹시 이 글때문에 속 상하실 동포들에게 미리 사과 드립니다. 하지만 가감 없고 전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젠 이런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내가 언제 다시 돌아갈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