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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존경이란 내 말이 30년 어린 기집 데리고 사는 그 모습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대단한 오해입니다.
남녀 간 나이가 무슨 대수이며 돈은 또 뭐랍니까? 진심이 통하니 같이 사는 겝니다. ㅎㅎ
절망의 끝에서 그가 삶의 의지를 되찾은 건, 비록 말이 통하지 않아도 자신만 위해주는 여자와, 그 여자가 잉태한 자신의 늦둥이 때문이었다.
난 그가 다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이 갔다. 고립무원의 알거지 신세,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진공 상태.
그렇다. 사람이 살 길은 각자도생이니 누구의 길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그는 재기했고 그렇게 아픔을 준 전처와 자식들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게다.
다시 장면은 바뀌어...
天上天堂 地下蘇杭. 혹시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는지. 개인적으론 허풍이 너무 들어갔다고 본다. 그 정도는 아녀. 다만 고풍스럽고 조용하다는 정도?
망할 뇬을 대리고 가선 소주 공업원구에 있는 아파트를 얻었다. 가능하면 이 잡년을 털어내고 싶었지만 아는 이 하나 없는데 도리가 있어야지. 결국 흑룡강 출신 부동산업자를 붙여주었는데 이눔이 나중에 대신 경을 치게 된다.
그런데 혹시 아시나 몰라. 동북 3성 출신 중 길림과 연변과 흑룡강 출신은 앙숙이라는 거. 길림과 연변은 호남이 많고 흑룡강은 경남북이 많다나?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가뜩이나 한족들에게 밟혀 지내면서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니. 거짓말이라고? 그럼 내 귀가 썩은 게다. 다 지들 입으로 떠든 거니까.
정말 혼자가 되었다. 선험자들의 말을 듣고선 한족 여자애를 사무보조로 뽑긴 했지만 6시면 칼퇴근. 달리 시킬 일도 없었고 늦게까지 눈치 보는 꼬라지는 더 싫고.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나가선 마트를 돌아다녔다. 빠이룬파, 지러푸 (까르푸)부터 근처 슈퍼와 진지허 (금 머시기 호수였는데 기억나지 않음)까지. 내가 본 중국은 그때부터 엄청난 발전을 하고 있었고 2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가 자고 나면 새로 생기곤 했다.
외자 유치 바람은 어디에도 불어 도시마다 공업원구라 명칭하고 구획정리를 해나갔다. 혹시 당시 있었던 분들 눈치챘을라나? 그런 공업원구내에 가발, 성냥개비, 이쑤시개 따위의 노동집약적인 공장을 위한 자리는 없었고 화학 단지도 그나마 가장 먼 곳에 위치해 있었다. 나머진 전부 전자와 제약 등 첨단산업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그렇다. 이미 이미 중국 지도자층은 대비를 하고 있었던 게다. 다시 말해서 우선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니 개나 소나 다 받아줬지만 그건 자기네들 인구만으로 충분히 압도할 수 있으니 때가 되면 쫓아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건 첨단 산업도 마찬가지. 해서 중국인과 합자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들 했고 나도 여기엔 동의하는 바이다.
사실 소주나 중국 어디든 맑고 청정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마 내가 장가계나 기타 절경을 가보지 못해서 그런가. 항상 뿌옇고 불투명하고. 나만 그리 생각하나?
소주는 예로부터 중국인들이 살아보고 싶어 하는 도시였던 만큼 수많은 유적지와 아름다운 경관을 갖추고 있었다. 태호가 바다라고? 진지허만 가도 맞은편이 아득해 보인다. 건물도 크고, 사람도 많고. 그러나 정말 신기한 건 그 도시는 8시가 넘어가면, 500만이 넘는 인구에도 불구하고 인적이 끊긴다. 청도는 다르다. 늦은 밤에도 흥청망청. 그러나 지역별 특성이라고들 하던데 남쪽 지방 남자들이 그다지 술을 즐기지 않고 일을 마치면 바로 집으로 가서 그렇다나?
일설엔 남쪽 지방에선 남자가 돈도 벌고, 집안 살림까지 도맡아 한다고 했고 상해 남자들을 두고 시장에서 채솟값이나 깎는 좀팽이라고 자기네들끼리 욕을 하더라.
그런데 보름이 넘어가는데도 일이 없는 게 아닌가? 전화를 해도 기다리란 소리 밖에 없고 좀이 쑤시기 시작한 난 저녁마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 돌아다녔지만 누구 하나 아는 이가 있어야 말이지. 하여 저녁마다 근처 슈퍼에서 우리나라 중국집에서도 파는 빼갈을 사 와서 홀짝거리곤 했는데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한 병, 두병 느는 게 아닌가. 그와 동시에 이상하게 눈이 침침해져 갔다. 하는 수 없이 흑룡강 부동산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사장님, 봉사 되고 싶어요?'
한 병에 고작 우리 돈 200원 정도라 부담이 없고 잠도 곧잘 오곤 해서 먹었건만 공업용 알콜을 넣는다나? 흐미... 그 빼갈 마시고 봉사된 한국인 꽤 있다니 등짝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그 업자는 한족 기집애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올 때마다 눈알을 희번덕 거리는데 기집애는 아예 개무시. 난처했다. 급기야 그넘이 직원을 소개해 주겠다고 나서길래 단칼에 거절했다. 한번 당했으면 족하지 뭘.
그런데 이 한족년도 보통이 아니다. 톡 깨놓고 말해 얼굴 보고 뽑았는데 그 미모가 김태희 90% 수준이었네. 뭘 해보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난 여자에겐 관심이 없다. 이쁘든 못났던 관심이 가질 않는다.
그런데 요뇬이 갈수록 요상한 짓을 하는 게 아닌가? 일하다 말고 갑자기 사라져선 30분, 1시간 후에 들어오고. 오냐 싶어 날 잡아 앉혀두고 추국을 했는데 (영어로)
이런 니기미... 알고 봤더니 근처 삼성전자 출신이었다. 1년 정도 지나서 길림성 출신 조선족과 사랑에 빠져 둘이 좋아지냈나 본데, 난데없이 거기 한인 과장이 끼어든 게다. 물론 유부남.
한심한 새끼들, 삼성 라벨 붙이고 과장쯤 되면 연봉이 1억은 육박했을 테니 당연지사 첩질하고 싶었겠지. 하지만 첩질도 법도가 있는 법, 절대 집안 닭은 손대지 말 것. 그런데 이 븅신 새끼는 어지간히 껄떡거렸나 보더라고. 결국 견디다 못한 기집애가 먼저 빠져나왔는데 우째 알았는지 매일 전화질. 혹시 이 글 보는 당사자는 거시기 잡고 반성해라. 그게 뭐냐? 아무리 돈으로 후려도 되는 곳이지만 여자가 싫다는데.. 썅너므 시키.
아놔, 일이 돼야 말이지, 일도 없었다 만은. 게다가 슬슬 친구넘이 오더를 주는데 전부 출장 건이라. 이걸 데리고 어딜 가나?
아래 사진은 2006년 4월, 가족이 오고 난 후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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