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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부터 퍼마시기 시작한 술은 거의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딱히 술고래는 아니지만 취해서 메롱하는 그 기분을 못잊어 그렇다고나 할까. 여하튼 이젠 혼자서 소주 2병을 원샷에 마시는 괴력을 보이네요.
직장에서 얻은 내 별명 중 하나는 도망자 혹은 핫바지 방구였습니다. 워낙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는 타입이라 견딜 수 없으면 화장실 가는 척, 튀다가 얻은 별명이죠. 어떤 땐 부장님이 몇명 모아 훈시하는 자리에서도 견디질 못해 튀었는데 그냥 가자니 미안해서 계산까지 했다가 다음 날 직사게 욕을 더 얻어먹었네요.
남자들, 사회 생활하다 보면 피치 못할 술자리 탓을 하지만 그건 자기 하기 나름입니다. 내 경우는 대충 얼굴 상태 보곤 상사들이 먼저 꺼지라는 배려를 해주었으니까. 친하게 지냈던 부하 직원 하난 아예 술을 입에 대질 못한다고 했는데도 기어이 먹였다가 아래위로 쏟아내는 꼴을 본 후 두번 다시 술을 권하지 않더군요. 모르는 이들이 행여 이 친구에게 술을 권하려 하면 외려 말리기도 하고.
결국 다 핑계입니다. 중독성을 따지면 담배 다음 자리를 차지할 정도고 해악으로 따지면 담배 이상입니다. 오래 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젊어서 이상하게도 초상집을 많이도 다녔습니다. 그때 얻은 교훈 하나는 여잔 대체적으로 제 명대로 살다 가지만 남잔 거진 술병으로 죽더라는 사실. 표면적인 이유야 다들 있죠. 하지만 환갑 이전에 저승행 열차 타시는 분들 중 어머무시한 숫자가 이 비러머글 술에 수십년 쩌들어 있었다는 미확인 통계치는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우리 모두 아는 기정사실입죠.
역시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부산 대연동에 예전 이름으로 경성대학교란 대핵교가 있습죠. 그리고 정문 옆 지하에 내가 단골로 가던 술집이 있었는데 들어가는 초입에 걸린 경구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한잔 술에 순한 양이 되고
두잔 술에 즐거운 원숭이가 되며
세잔 술에 사나운 사자가 되며
네잔 술에 추한 돼지가 된다.
대학 때건 직장 다닐 때 건 늘 이 경구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우리네 음주 문화 중 가장 질왈 맞은 걸 들자면 찻수 올리기입니다. 1차, 2차, 3차.... 해운회사에 다닐 땐 이렇게 진행이 되었죠. 1차 소주, 2차 맥주, 3차 노래방, 4차 다시 소주나 맥주, 그리고 노래방, 다시 나와선 속풀이 정종 대포, 미진하다 싶으면 다시 포장마차. 그렇게 퍼마시고 결국 집에도 못가고 회사 근처 사우나에 자는 거죠. 고작 1시간 정도의 수면일 겁니다. 그리곤 술냄새 풍기면서 다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반복. 집사람에게 하는 변명은 항상 같습니다. 부장님이 회식 집합이라잖아, 접대가 어떻고. 심지어는 초상집 핑계까증.
결국엔 낮술까지 입에 대게 되더군요. 점심 먹다가 소주 한병. 하루 종일 술에 취해 있는 거죠. 그러니 몸에 온전할 리 만무합니다. 그나마 운동으로 버티니 지금도 퍼마시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바지에 똥 지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ㅋ
그러나 문젠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경험상 술자리 끝까지 지키는 우정과 의리, 충성을 보여도 대부분 그 끝이 좋지가 않습니다.
1차에선 화기애애
2차에선 화기애매
3차에선 도돌이표
4차에선 각자 떠들고
5차에선 결국엔 사고를 칩니다. 주먹 다짐을 하거나 멱살잡이를 하거나. 심지어 간도 크게 경찰에게도 개기죠. 그때야 술에 대해 너무나도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던 시대였지만 요즘은 어림도 없습니다. 자칫 공무집행방해에 명예훼손으로 빨간 줄 긋고 벌금 물거나 게임비 거하게 내거나.
대리할 때 벌어진 사건 하나도 보셨을 겁니다. 대학원생이라던데 내가 가기 전에 시동 걸고 차를 움직였고 그늘진 곳에서 유심히 지켜보던 순찰차에 딱 걸린거죠. 내가 가니 이미 경찰들과 실갱이 중이던데, 나중에 짐작했지만, 이미 걸리고 난 후 면피용으로 날 부른 것이 아닌가.
그런데 사태는 점점 더 꼬입니다. 현장 적발되었는데도 오리발을 내밀더니 급기야 날 앞세웁니다. 이거 보시라고, 이렇게 대리도 불렀잖냐. 잘 아시다시피 경찰은 명확한 증거가 없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나섰다는 건 증거를 쥐고 있다는 뜻이니 이런 땐 잘못의 시인이 상수죠. 그런데 몇차에 걸친 술기운에 간댕이가 부어 급기야 같이 마시던 남자애들까지 나서 경찰을 애워싸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더군요.
있어봤자 득도 안되겠다 싶어 난 빠졌고 며칠 후 그년의 애비가 운영하는 회사의 직원이 날 찾아왔습니다. 캔커피 하나 들고 와선 한다는 소리가 당신이 운전했다고 진술 좀 해줘라. 그게 가능하냐. 이미 경찰이 다 알고 있는데. 이 친구, 참 재미있는 사람이더군요.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넘어갈 때 누군가 뒤를 봐주기로 했는지 그 진술만 해주면 된다고 합디다.
내가 열받은 건 그런 허위진술을 했다가 걸리면 나도 처벌받는데 이 씨발놈이 캔커피 하나로 때우려 했다는 사실이죠. 정말 개새끼가 아니겠습니까? 일언지하에 거절했는데 한참을 붙잡고 나 좀 살려달라고 하더군요. 아뉘 쉽새끼가 그런 개소릴 하려거든 하얗든 노랗든 봉투를 들이밀어야 인지상정이지, 속으로 사장놈이 더 개새끼네. 그리고선 더 시간 뺏지 말고 가라고. 그때 이미 가게 오픈 준비 중이었거든요.
술자리를 자주 갖는 건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길어지는 술자리에 계속 남아 있는건 진짜 백해무익입니다. 이미 이성을 잃고 대가리 속에서 굴러다니는 개똥같은 생각을 아무렇게나 뱉어내다 보면 치명적인 실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더하여 술 먹어, 고기 먹어 탱글하게 부푼 간이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거든요.
종종 터지는 음주 도주 사건,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행동들입니다. 사람을 쳤다면, 구호부터 하고 음주 인정하고, 합의금 깔끔하게 물어주면 죽지 않는 다음에야 집행 유예에 벌금형 정도죠. 그런데 술에 취하니 이성이 마비가 되고 피해자를 두고 도망가다 또 다른 차 들이박고, 그 사이 피해자는 죽고. 음주에 뺑소니에 이게 얼마나 큰 죄인지. 짤 없이 구속입니다.
시비가 붙어도 난감하죠. 내가 취하지 않았다면 술 취한 이가 시비를 걸어도 피하면 그뿐입니다. 하지만 나도 취했다면? 똑 같은 개끼리 영역 다툼 벌어지는 겁니다. 기분 나쁘게 쳐다봐서.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핑계일끼요? 설혹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손 치더라도 내가 피하면 그만인데.
요즘은 말이죠, 공공연한 장소에서 내뱉은 욕설 한마디가 모욕죄나 명에훼손으로 이어지고 겁을 주려했던 무력 시위가 폭행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아주 빈번합니다. 원래 법에 다 저촉되는 행위였지만 사회적인 분위기때문에 엄하게 적용하지 못했고 또 법에 대한 지식이 독점적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젠 누구나 법이란 구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싸우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남자가 불리합니다. 명확한 증거, 목격자나 CCTV가 없다면 짤 없이 여자 쪽 진술이 사실이 되죠. 아무리 개같은 놈이라도 한명이고 이쪽은 두명이다. 한명이 유라합니다. 싸움이 붙엇는데 두명이 만방으로 깨져도 한명이 다쳤다고 죽는 소리하면 쌍방 폭행. 그런데 한넘이 더 얻어 터졌다. 공동 폭행입니다. 죄가 더 커져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두 명이 하나를 팼는데 주로 A가 때리고 B는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판에서 A는 징역 1년, B는 3년이 나왔다나요? 알고 보니 B가 각목을 들고 있었답니다. 흉기를 이용한 특수 폭행에 공동 폭행으로 걸려 든 거죠. 이 얼마나 조까튼 시츄에이션 입니까.
미국과는 달리 우린 정당 방위를 매우 좁게 해석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술에 취한 놈이 병을 깨서 위협을 해서 하는 수 없이 아구창을 갈겼더니 턱뼈가 주저 앉았다. 폭행으로 처벌 받을 겁니다. 그러니까 다치지 않게 제압하는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의도가 있다로 해석하나 봅니다. 몇년 전 집에 든 도둑을 야구밤망이로 패죽인 사건이 있었죠? 정당방위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말이 길어졌는데 요는 길어지는 술자리가 불러오는 불행들입니다. 뭔데 그리도 오랫동안 토론할 거리가 될까요? 적당히 마시고, 진짜 더 취하고 싶다면 차라리 집에서 혼자 마시든지요.
갈수록 문명화되는 대한민국, 거미줄보다 촘촘하게 쳐진 법망과 CCTV 망은 누구도 빠져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애시당초 화근거리는 멀리하는 편이 현명한 처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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