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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아시는 분이 근처 경매장에서 묘한 스피커를 낙찰받아 숙제로 내고 가셨는데..
아주 고약한 케이스입니다. 아무리 용을 써도 벌벌 떠는 나는 소리가 멈추질 않았습니다. 흡음재를 넣었다가 뺐다가, 개방으로, 반개방으로, 밀폐로... 피스를 작은 걸로 했다가 긴 걸로, 좀 더 굵은 걸로. 결국 12T 짜리 얇은 판이 거의 걸레로 만들었다가 간신히 복구했습니다.
며칠을 씨름하며 시간을 날리니 짜증이 날대로 나선, 갑자기 혼자 괴성도 지르고. 그런데 라디오에서 안락사 법이 시행된 후로 몇천 명인가 본인 원대로 갔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또 생각이 난 기사, 몇 달 전 불치병에 걸려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알게 된 처자 하나가 지인들에게 초청장을 보내길,
'오늘은 내가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날입니다. 다들 오셔서 먼 길 떠나는 나를 기쁘게 배웅해 주세요.'
대충 이런 내용으로 기억이 됩니다. 마치 그녀의 삶에서 가장 기쁜 날처럼 곱게 차려 입고 지인들을 맞아 일일이 인사하고 근황을 물어보고. 지인들은 또 그들이 갖고 있는 당사자와의 추억을 슬프면서도 기쁘게 되새기고. 그렇게 웃고 떠들며 마치 축제 같은 날이 저물 무렵, 그녀는 가족들만 참석한 자리에서 잠자듯 숨을 거둡니다.
요즘 눈만 뜨면 생기는 게 요양병원입니다. 일 때문에 몇 번 방문한 적 있지만, 글쎄요, 나도 노부모 모시는 주제에 할 말은 아니지만 과연 그런 삶이 본인에 어떤 행복을 주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옛말에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라곤 했지만, 내가 본 상황에 처하신 분들껜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충분히 재기할 수 있고 기력이 남아 있는 젊은이들에게 해야 할 말이지요.
삶이 힘들었던 우리에겐 고려장이란 악습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비난 일변도이지만 젊은 자식들도 살기 힘들어 허덕이던 시대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않았을까. 만약 내가 그런 나이에 도달했고 또 더 이상 경제적 그리고 운동 능력이 사라져서 지식에게 부담만 지울 형편이라면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
한편 그런 처지에 있는 이들의 주변인들은 어떨까요? 호전의 기미는 커녕 나날이 나빠져 가는 환자를 간병하느라 지치고 힘들어하며 돈에 치이다 보면 당사자와 쌓은 아름다운 추억마져 시궁창처럼 변하지 않을까요?
도대체 10년, 20년 세월을 치매에 걸려,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는 이를 극진히 보살폈다고 다들 칭찬하시는데 그간 들어간 돈이며 희생한 주변인들의 세월은 뭔지. 얼마든지 자기 의지로 선택한 길을 걸어, 보다 향상된 삶을 살 수 있음에도 효도라는 빌미를 들어 환자에게 저당 잡히도록 해선 - 어차피 나을 수 없는데 - 죽도록 고생만 강요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이건 정말 뜯어 고쳐야 할 사상과 시스템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또 말하거니와 난, 비록 정신이 온전하다 해도, 현저하게 운동능력이 떨어져 누구의 도움 없인 외출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면, 아니 그전에 그런 예감이 들면 과감하게 스스로 생을 정리하겠다고 이미 속으로 작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 나왔던 여인처럼 그 마지막 날에 내가 사랑하고 아끼던, 가장 좋은 오디오를 내 곁에 설치해 두고 좋은 사람들 불러 진탕하게 퍼마시고
고 기분 좋게 취한 채로 조용히 갈 겁니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을 시간은 스스로 인간임을 자각하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까지 만입니다. 그 경계선을 넘어선 존재는 그냥 병든 동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 물론 그전에 야구 방맹이로 몇 늠 대가리 쪼개놓고 가려구 해요. 물론 복수는 해줬지만 여전히 화가 풀리질 않았고, 아직은 그 정돈 할 수 있들 때로 정했으니까요.
ㅡ 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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