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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인가, 친구 녀석과 전화로 수다를 떨다가 건강 진단 이야기가 나왔다. 왈, 요즘 예전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하여 병원 가서 진단받아라. 종합 검진 안받은 지가 3년이 넘어간다메. 다시 왈, 겁나서 못가겠다. ㅋ
아닌 말로 5년 전 부친께서 위암 3기 진단받고 난 후 나도 겁이 나서 진단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의사쌤 왈, '헬리코박터 균이 이렇게 많은데 암에 안 걸리게 신기하네요? 집안에 암환자 없어요?'
대학 때 타지 생활로 쌓인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십이지장 궤양으로 그때까지 새벽마다 배를 잡고 아파했던 터라, 게다가 겔포스와 노르모산도 더이상 듣질 않던 차에 들려온 부친의 위암 소식에 이미 각오는 되어 있었지만 막상 별 일 없단 진단에 어찌나 맥이 풀리는지.
진즉에 십이지장 궤양은 다 나았고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이라네. 그러니까 십수년 간을 자가 진단해서 엉뚱한 약만 퍼마신 셈인데 그 돈만 해도 기백은 넘겠다. 꼴랑 한달 술.담배 끊고 약 먹으니 모든 증상이 씻은 듯이 나았으니 이후부턴 자가 진단은 절대 하지 않게 되었다.
여하튼 그 말을 듣고 보니 이미 나 역시 마지막 진단 후 수년이 지난 터라 적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가게 열며 저녁마다 퍼마신 술이 족히 1톤 트럭은 채울 양이라, 게다가 나이도 고령으로 (?) 접어 들어겠다. 일전 이야기 한 것처럼 가는 건 두렵지 않으나 못다한 숙제들이 마음에 걸리네.
하여 마느님 잡고 슬며시 이야기 꺼내자 말자 다음 날 바로 종합검진 새끼줄을 잡더라고. 가끔 나 잘 때 숨쉬나 확인한답시고 코에 손가락 대는 줄 다 알고 있으니 그 부란함은 나 이상일 터, 어찌 거절하겠나. 하지만 진단받고 개족까튼 소리 나오면 어쩌나. 쉼없이 빨아댄 담배 연기로 온 가게 안을 너구리 굴에 연기 불어넣은 듯 자욱하게 만들었고 운동이라곤 가끔 스트레칭 외엔 없으니.
하루 하루가 짜증나는데다 똥 받아오라고 준 까만 플라스틱 통을 볼때마다 짜장이 잇빠이 솟는거라. 드럽게, 퉷. 그러나 결국 그날이 오고야 말았고 난 형장으로 향하는 사형수의 심정으로 병원을 향했지. 그래, 이게 다 운명이지 뭐 어쩌고, 거참 죽기 딱 좋은 날씨네, 아차 유언장 수정해야 하는뎅 등등 되먹잖은 신파로 장편 드라마 하날 연출하면서 말이지.
드뎌 입실~~~ 짜잔하고 체중계에 올라갔더니 0.0945 톤. 헉... 1톤은 되리라 생각했는데 그간 엄청 살 빠졌네. 이거 큰 병 아닐까. 간호사가 끈으로 된 자를 내 허리 둘레에 대더니 눈이 똥그랗게 변한다. 히히. 아마 이런 배는 못봤을 걸? 그리곤 뒤로 보면 지들 동료에게 혀를 낼름거리네.
그리곤 혈압. 긴장하지 마시고 하며 버튼을 눌렀는데 이게 뭐여? 후루룩 올라가더니 한참 있다가 내려오는 돼지털 혈압계의 수치. 176에 110이라. 같이 진단받던 이들이 충격 먹었나 보더라고. 그러고도 살아 있다는 게 신기하다는 표정이잖아? 좃땠다. 옆에서 야단법썩을 피우는 마느님을 뒤로 하고선 수면 내시경 받으러 갔지. 혈압 재축정 요청이 있어 수동으로 다시 쟀다. 우잉? 130에 90? '아마 긴장하셔서 그럴 거에요.' 긴장은 무슨 개 얼어죽을. 간호사가 이뻤다면 모를까 그 얼굴 보니 명경지수의 평정심을 찾았는데. 그러나 매번 이렇다. 돼지털 혈압계에서 가공할 수치가, 수동으로 재측정하면 정상 수치가.
마느님과 우린 마주 보며 키득거렸지. 우리도 우유주사 맞고 푹 자는 거샤 어쩌고 하며. 잠자는 약 들어가요 했는데 어느 새 깨어 보니 끝나 있었다. 전날 소주를 대차게 마시고 뻗었던지라 소변이나 기타 등등에서 검사불능이 아닐까 싶었는데 뭐 다행히 목구멍부터 십이지장까지 아주 상태 좋다나? 움... 그날따라 막창과 대창이 몹시 먹고 싶더군.
그리고 담배 피운다 하니 폐 CT도 찍어야 한대. 모든 과정을 끝내고 나니 어찌나 개운하든지. 결국 소주 두병 나발불고 뻗었다가 오늘 결과 보러 갔어. 폐가 아주 좋다네. 탐스럽게 보인다더만. ㅋㅋ 하루 몇대? 두갑 반. 허걱 하더니 금연 상담 받으래. '싫소. 차라리 내 목을 자르쇼.' 했지. 나오니 간호사가 상담 일정 봐드릴까요 하길래 '안해.' 맞받아쳤지롱.
똥검사가 남긴 남았지만 피똥 싼 적도 음꼬, 너무 잘 나와 걱정이지. 흠.. 이걸로 향후 2년 간 면죄부는 받은 셈인가? 일단 오늘 소주 한병 까고 시작해야겠어. 아참. 그 친구넘에게 자랑도 해야지. 헤헤.
혹시 걱정되서 진단 미루시나? 그건 안될 말이지. 양잿물을 먹고 살아도 일단 몸에 병은 확인하고 치료를 제때 해야 벽에 똥칠하는 수모는 겪지 않는 벱이걸랑. 어여, 일정 잡고 가 보러라고. 어지간하면 10만 원 안짝으로 부란없이 살 수 있다니깐.
추신) 오래 전, 코메디언 이기동과 배삼룡이 나와서 이런 쑈를 했는데 기억나시려나? 부란, 초조, 긴장에 맘푹나죠정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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