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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이웃님께서 신문에 실렸다. 축하 드리고 그런 김에...
제목의 숫자는 뭐냐? 오늘 근처 편의점에서 가서 바꾼 소주병 숫자이다. 22병이지만 사실은 2주 정도 마신 양인데. 이정도면 가히 알콜 중독수준이라 하겠다. 하지만 끊기가 쉽지 않다. 정확히 초저녁 7시부터 뇌에서 신호가 떨어진다.
'어이. 오늘 그냥 가려고? 그냥 가면 섭섭하지.'
어떤 날은 마눌이 9시가 채 되기도 전에 현장 급습을 한다. 물론 그전에 까똑으로 뭐하는 지 물어보거등. 아, 오겠다 싶음 냅따 뛰어가 한 병 사선 종이컵에 따라 꼬로록. 딱히 잠이 안와서 그런 것도 아니요, 술이 맛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습관처럼. 지금도 공병 22병과 바꾼 소주 한병이 내 앞에서 춤을 추고 있다. ㅎㅎ
그러나 오늘까지만 마시려고 한다. 왜 더 마시지 하시겠지만 계기가 생겼다.
--요기까진 어제 쓴 글--
M사장은 오남리 가게때부터 수제담뱃잎을 사서 피우던 양반이다. 악기 없는 순한 얼굴이지만 워낙 피골이 상접해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 가끔 가게에 저녁 퇴근 무렵 가게에 들릴때, 술 냄새는 풍기지만 여느 동네 술주정뱅이와는 완전히 달라 술 취한 기미조차 풍기지 않았다.
한편 그 동네엔 이상한 여자분이 하나 있다. 하루 종일 술에 취해 동네를 헤집고 다니는데 당시 가게 맞은 편 슈퍼에선 그 여자만 들어오면 내쫓기 일쑤였고, 나에게도 상대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더라. 가끔 가게 앞 데크에서 자는 모습도 보았고.
그들과 낯이 익어갈 무렵, 가게에 여고 1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애가 가끔 택배 때문에 찾아오곤 했다. 촌동네 여느 여학생들처럼 순하고 이쁘장한. 00나라에서 가끔 사고 팔기도 하나 본데, 언젠가 한번 택배가 사라져 난처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택배사에서 물어줘야 하지만 발을 동동굴리며 전화를 받는데 문득 우리 딸래미가 생각나서 대신 내가 받았지. 부러 목소리 착 깔고 말이지. 깨갱하더만. ㅎㅎ
가게엔 다른 단골이 또 있었어. K사장이라고, M사장과 친구 사이라는데 대단한 술꾼이지. 그렇다고 유벌나지도 않아. 그냥 그런 동네 이웃이지. 어느 날인가 애 이야기는 빼고 나머지 두 성인에 대해 넌지시 물어봤는데 글쎄 이러지 뭐야.
'둘이 부부에요.'
'헉...'
더 물어볼 거 있나. 이후 난 더이상 그녀에게 차갑게 대할 수가 없었다. 그런 여자를 마누라로 둔 남자라면 겪을 심적 고통이, 말하지 않아도 전해 왔거든. 그리고 집사람에게도 단단히 일러 두었지. 혹시 들어오더라더 너무 냉하게 대하지 말라고. 그런데 말이야, 이후 어느 날 가게 문이 쑥 열리더니 그 여자애랑와 M사장이 같이 들어오더라고. 그러더니 아이가 지갑을 열고선 M사장의 담뱃값을 치르더라고. 둘이 어떤...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이 있나. 설마 둘이 연인사이일까봐. ㅋ
참 착하더만. 귀엽기도하고. 강아지를 데리고 다녔는데 가게 안에 똥 쌀까봐 밖에서 서성거릴 땐 그냥 들어오라고. 싸면 어때? 닦으면 그만이지. 내 딸이 멀리 있진 않지만 마치 내 딸처럼 애틋했어. 그러니 귀엽고 이쁜 여자애들 보는 아저씨 시선이 마냥 음탕하다고만 하지 말어.
그렇게 인연이 2년 가까이 이어왔지. 그런데 말여, 이 M이 한달 건너 보이지 않다가 다시 나타나곤 했는데 갈수록 얼굴에 병색이 완연하더라고. 어디 아프냐고 물어봐도 머뭇머뭇. 한번은 술에 취해 들어와선 독일군 철모를 덮썩 사더라고,
'아이고, 사장님, 약주 과하신가 본데 내일 아침 후회해요. 필요없는 거 사지 마요.'
'아뇨. 가끔 커피도 얻어 마시는데, 그리고 우리 딸 택배도 해주는데 미안해서요.'
'택배 공짜 아닙니다. 다 돈 받고 하는 거고 나도 또래 딸이 있어 그렇구만요.'
기어이 사선 머리에 쓰고 튱썽!! 하며 집으로 간다? 허참. 아무리 장사지만 형편이 좋지도 않을텐데, 팔고나니 영 거시기 하더만. 여기 양지리로 옮긴지 석달이 다 되어 갈 무렵, 그러니까 오늘 자로 부터 보름 전에 가게 근처 병원에서 M의 아내를 봤어. 정신 없이 병원 근처를, 여즉 없이 술에 취해 돌아 다니고 있더만. 에혀.
그리곤 그날 저녁에 M사장이 가게로 왔어.
'아이고, 사장님, 오랜 만입니다. 그간 별일 없었능교?'
'네.'
'담뱃잎 사러 오셨어요? 얼마나 드릴까? 그냥 이참에 끊으시지.'
2킬로 가까이 되는 거리를 걸어온 사람에게 조금 싱거운 농담이지만 난 진짜 걱정이 되었다. 더욱 짙어진 다클 서클에 마치 수수깡처럼 말라버린 몸이 너무 위태로와 보였거든.
'여보, 누구야?'
'어. M사장. 커피 한잔만 주라.'
마침 나가려던 집사람에게 커피 한잔을 청하고 집사람 역시 스쳐가듯 인사를 하곤 나갔는데, 여전히 별말이 없었다. 일은 하시냐, 딸래미는 잘 지내냐 등등의 질문에 웃기만 하고 커피는 입에도 대질 않았다. 그리고 담뱃잎도 사지 않았고. 끊었다나? 그리고선 가겠다며 일어선다.
'잘 지내세요.'
'네. 건강하시고요. 이젠 딸래미 택배는 어렵겠네. 하하. 그래도 무겁지 않으면 들고 오라고 하세요.'
아참, 난 그에게 그의 내자 이야긴 단한번도 물어본 바 없다. 웬지 실례일 것 같아서. 그리고 1주일 정도 지났나. K가 담뱃잎을 사러 왔더라고. 여느 때처럼 요란스럽고 생기 발랄해 좋다.
'싸장님, 나 1킬로만.'
'그새 다 피웠어요. 어지간히 좀 피워라. 2주도 안되었구만.'
'스트레스 받으니 담배만 늘어나네.'
'그런다고 더 피우면 우짜노. M사장은 끊었다 카더만.'
'뭐가요? 그 사람 죽었는데?'
'뭔 소리여. 며칠 전에 가게 와서 커피 한잔 얻어마시고 담배 끊었다고 하더만.'
'언제요?'
'보자. 여보, M사장 언제 왔노?'
'지난 주 수요일 왔다 갔잖아. 나 알바 가는 날.'
'봐요. 먼 섬뜩한 농담을 하고 그래.'
'어? 지난 주 화요일인가 수요일 저 위에 병원에서 죽었는데? 두 분다 뭘 보신거요? 귀신 봤나?'
우리 셋은 전부 멀뚱해져서 얼굴만 쳐다 봤지. 사연인즉 전날 K와 일하다가 갑자기 몸이 좋지 않다해서 먼저 집에 갔는데 숨을 쉬질 않아서 급히 병원으로 실려 갔나 본데 너무 늦었다나. 손 쓸 새도 없이 가버린 거야.
아놔, 이거야 원.... 나 혼자 보는 것도 환장하겠는데 이젠 부부가 같이 귀신을 보네? ㅜㅜ
그리곤 어제 술을 끊어 버린 거야. 당장 간다고 해도 그닥 억울할 건 없다고 몇번 말했지만 나도 내 인생의 목표가 몇가지 생겼고 그건 스스로에게 부과한 숙제들이걸랑. 해서 저승사자가 손을 잡아 끌어도 아직은 못갈 형편이야. 못질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마누라, 아직 1학년인 아들, 그리고 여전히 천진난만한 딸을 두고선 내 발이 떨어지질 않거든.
왜 담배만 갖고 질알하냐. 패악으로 따지면 술이 더 진상 아니냐. 이 동네 주정뱅이들 보면 말이지, 새벽 6시에 소주 한병, 10시에 막걸리 2통, 다심 점심 때 소주 한병 식으로 하루 종일 퍼마시고 다녀. 남에게 해는 끼치지 않지만 말이야.
경기가 어렵다고들 하지.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저녁마다 불야성을 이루던 시절 이야기야. 저녁에 집에도 가질 않고 모여 앉아 회사 이야기, 일 이야기하며 2차, 3차가고 룸에서 물 쓰듯 돈을 쓰던 시절이 호황이라고 착각하는거지. 자영업자 어렵다? 어려운 거 맞지. 하지만 하나같이 술집 아니면 음식점들 아냐? 다들 이젠 퇴근하면 집에 가서 가족들과 보내든지 아니면 운동이나 공부하든지.
M사장 내외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술판매 금지시켜야 해. 저게 뭐냐. 이 악랄한 세상에 여린 기집애 하나 달랑 두고 애비 먼저가고 에미는 온 정신이 아니고. 이젠 좀 작작 쳐마시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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