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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필요한 이들에겐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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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매매를 할 때 느끼는 것이지만, 아무리 쓰젤데기 없어 보이는 부속이라도 누군가에겐 빈드시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설사 그것이 작은 볼트나 너트라 해도.
사진 속의 부품도 그렇다. 1950년대 이전 생산된 유럽산 진공관 라디오의 외부 스피커 입력단자는 3핀이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양.음극을 양쪽으로 하고 중앙에, 그라운드인지 모르겠지만, 핀이 하나 더 들어가 있다. 그런 라디오가 얼마나 남아 있겠냐고 생각할진 모르지만 의외로 갖고 계신 분이 많다. 그리고 그들 중엔, 외부 스피커 연결법을 알아냈지만, 막상 연결 플러그가 없어 애를 태우고 있는 이들도 있다.
이 부품의 대체제는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홀의 사이즈에 맞는 나사나 못을 이용할 수도 있고 운이 좋아 같은 굵기의 철봉이 있다면 절단해서 사용하면 된다. 그런데 선은 어케 연결하지? 오리지날이 더 좋은 소리를 내줄텐데?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니다. 결국 이래저래 귀찮다면 비싸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더 확장해 보면 분명히 남들이 눈여겨 보지 않는 영역에서 보물이 발견될 수도 있다는 것이 오늘 내 썰인데 말이지.
틀이란 건?
살며 체계적으로 각인의 뇌 속에 정착시키는, 일정한 방향성을 가진 사고방식이다. 혹은 사물을 보는 관점 혹은 사안에 대한 의견일 수도 있다. 정치를 예로 들자면 진보 혹은 보수, 나쁘게 말하면 좌빨과 친일 극우식으로. ㅎㅎ 좀더고상하게 말하자면 고정 관념이라고도 하지.
여하튼 이 사고 방식은 - 사고 방식의 틀이 아니다. 사고 방식이 틀이다. - 자라온 환경의 영향이 90% 이상이라고 보여진다. 나머지는? 물려 받은, 혹은 재창조된 유전자 탓이라고 봐야지.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점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고착시키는가 이다. 즉 수동과 능동의 문제이다.
처해진 환경이 극복되거나 변화할 수 없다면, 그리고 실제 가난과 불우한 가정환경처럼 미성숙의 개체로썬 극복할 수 없는, 자신이 변화하고자 해도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게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포육기간 동안엔 도리없이 부모가 주입하는 생각과 환경에 지배를 받지만 독립할 수 있는 성년이 되어 전혀 다른 환경에 놓아져도 바뀌지가 않는다. 그리고 그 환경도 독특한 캐릭터를 용납하지 않는다.
무슨 소리냐?
포육기간 주입되는 생각은 바뀐 환경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준비된 것이고 독립했을 때 조우하는 낯선 환경들은 과거 그들 부모가 겪었던 황경 혹은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즉 대단히 낯선 환경이지만 이미 존재해왔던 것들이란 점이지.
이런 환경 요소들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항목들은 일정하다. 규칙과 룰을 준수하라. 타인과 잘 어울려야 하며 모나게 행동하지 마라. 계급을 인정하고 체제에 순응하라. 글로 옮길 수 없을만큼 많은 양의 관습과 묵시적 약속들이 주입되어있다.
틀을 깨거나 벗어난다는 건,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휴머니티에 반하는 사상을 가지거나 행동을 취하라는 뜻이 아니다. 정면에서 바라본 모양을 다들 이렇다고 할 때 자신은 옆으로 돌아가 보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정도에 불과한,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다들 못하고 있거든.
유튜브
이 새로운 의사소통체계는 혹은 SNS는 실로 연구대상으로 올려도 될만큼, 내포된 사회적 영향력이 지대하다고 다들 이야기한다. 어제 어느 명문대 (?) 재학 중인 학생이 6살 꼬마가 몇 십억을 버는 이 시스템에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참으로 어리석다고 할 밖에. 일부 부작용은 있다고들 하지만, 그건 엄연한 창작활동의, 그리고 그 아이가 갖고 있는 재능의 빛이 투영된 결과물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난 지난 20여년 간 죽어라 공부해서 이제 대기업에 들어가고 승진해서 결혼하고, 집 사고, 애는 둘 정도 낳고 연봉은 얼마에 여름 휴가는... 너무도 뻔하면서도 다들 그것이 정도라고 하는 길, 그러나 이젠 맞지 않는 선대의 삶이 파괴되어 낙오자로 낙인찍힐까 두려워 하는 게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는, 고정된 사회 시스템 안에 안주한 자들보단 그것을 깨려 하는 자들에 의해 만들어져 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원인은 이미 당시 고정된 사회/틀 안에선 더이상 자신의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불만이 대부분이었고. 혹시 우리 사회가 그런 불만이 누적되어 더이상 지탱할 수 없는 된 임계점에 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전술한 학생의 예를 보자. 그가 주입받아 만든 꿈의 달성이라고 해봐야 남들보다 조금 안락한 삶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안락을 꿈꾸는 자들이 대다수를 이루는 우리 사회는 과도한 경쟁과 성공한이의 수십배를 넘은 탈락자들로 인해, 현싯점 팥죽 끓듯 부글거리고 있다. 계층 상승의 욕구 충족은 기득권층이 배출한 소수가 독점하는 시스템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욕은 먹겠지만 난 촛불 혁명도 그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고 본다.
물질적인 면에서 더이상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 없어, 비물질적인 부분에서라도 찾아내서 물질에 도전하고 극복하고자하는 우회적인 사고를/틀을 깬 언행을 가장 성공적으로 물질화/현실화시켜주는 시스템이 바로 유튜브가 아닐까? 툭하면 입에 올리는 사업자금, 그것없이도 얼마든지 부를 일구고 신분 상승을 단시간 안에 달성할 수 있다. 굳이 잘나거나 이쁘지 않아도 남들이 웃으며 공감해 줄 수 있는 캐릭터의 보유, 혹은 창조로 얼마든지 가능한 곳.
아프리카 티브이인지 뭔지, 난 보지 못했지만, 별풍선을 얻어 억대를 버는 애들이 많다고 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비상식적인 그리고 비인간적인 내용이 문제가 되나 본데, 그런 문제가 없는 채널이라도 잘 나가는 애들이 많지 않나.
웃기지 않는 현실.
오늘 그 기사에 달린 댓글 중 유난히 가슴에 와닿는 내용이 있어 옮겨 본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배가 고픈 건 참아도 남이 잘되서 배가 아픈 건 절대 못참지. 그리곤 언론부터 난리다. 과세 형평에 어긋난다. 애들을 어른들의 수입에 이용한다. 빌딩을 샀단다. 그 가족이 기울인 노력과 정성을 모조리 도외시하고 마치 로또라도 맞은 양 딴지 걸고 발목잡기 바쁘다.
왜? 정착했던 틀이 무너지기 시작했음을 깨닫고 그 원인을 제거하여 현실을 수호하고자 하는 본능과 기득권층의 압력이 발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금? 현행 조세 징수 시스템에 따라 걷으면 된다. 뭐가 문제인가? 하지만 일각에선 불로소득이니 더 많은 세금을 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지만, 불로소득이 아니라 정당한 창작활동을 인정해 주는 시스템 하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조세형평이란 건 거둬들인 돈에 대한 퍼센트이지, 어떻게 라는 행동양식에 대한 차등 부과가 아니지 않는가?
유달리 남이 잘되는 걸 못참아 하고 튀거나 앞서가는 자들에 대한 질시와 모함이 난무하는 민족적 근성은 에로 부터 지적받아 왔는데 여기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는 꼬락서닐 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하여간에 뭐 하나 새롭게 등장하면 긍적인인 효과가 부정적인 효과를 능가하는지 여부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본다. 그리고 그간의 밥그릇이 깨질까 두려운 소수의 극단적인 행동과 큰 목소리에 금세 온 사회가 움츠러 들고.
하지만 개인이 세상사를 걱정할 필요 없다. 굳이 세상과 맞서지 않아도 작은 일에서 그런 가능성과 결실을 거둘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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