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자작 연재

본격 하드보일드액션스릴스펙타클피범벅섹시대하소설 - 사냥개 3

운산티앤씨 2019. 6. 24. 20:32

사람이 앞을 내다볼 수 있다면 불행은 없을 것 같지?

천만에. 앞을 볼 줄 알 수록 불행해질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앞을 내다본다는 의미는 용한지 아닌지도 모를 점쟁이가 '너 내일 차 조심해.' 했고, 다음 날 일면식 없는 노땅의 망령난 운전질에 뒤질 뻔했다는, 그런 차원이 아니다. 

그건 자신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찾아낸 치명적인 약점으로 인해, 삶의 고비에서 원하지 않는 방향을 결정지을 수 있는 이벤트들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인 동시에 뻔히 결과를 알면서도 막을 수 없는 무능함이다. 

무슨 소리냐고? 사람이 아무리 이중 인격 혹은 다중 인격으로 포장을 잘했다 한들, 태어나면서 내재되었던 괴물들이 형상을 만들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건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는 항상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이고, 억눌렸던 본성의 반발력은 항상 눌림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이지.

나도 마찬가지였다. 매 고비마다 튀어나오려는 그놈을 주저 앉히느라 생똥을 쌌고, 그 결과 여태까진 그러저럭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모르익고 있었다.

1과장은 손버릇이 좋지 못했다. 여직원들에 대한 손버릇 말이다. 출근하자 말자 시작되는 놈의 느끼함이 얼마나 역겨운지 볼때마다 난 짜증이 밀려 오곤 했다.

마주치는 미혼 여직원들을 어떻게든 엮어 건수 만들려는 수작은 너무도 뻔해 제대로 태클 걸어 자빠뜨린 년 하나 없거늘, 쉬지 않고 음담과 패설을 늘어놓는 그 주둥아리의 정력만큼은 변강쇠도 울고 갈 정도였다.

게다가 술만 처마시면 지눔 부부생활을 적나라하게 떠벌렸다. 연전 놈의 집들이에서 그 여편네를 처음 보았는데, 색기 발랄한 눈꼬리에 흐트러짐 많은 옷차림이라 보는 내내 꼴리는 아랫 동지를 바지 옆으로몰아 넣느라 땀깨나 흘렸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그의 망발을 지적을 하지 않았고, 설사 간밤 술자리에서 불편한 일이 있었더라도 감히 내색하지 않았다. 잘은 모르지만 회장의 먼 친척 쪼가리란 말도 있었고 끗빨 좋은 모 임원의 피붙이란 말도 있었고.

김양이 나에게 호감을 가진 건 진즉부터 알았다. 그 시절, 고등학교 졸업한 여자애가 직장에서 가장 성공하는 방법은 비젼 있어 보이는 대졸 남자 사원을 골라 결혼으로 마감하는 것이었는데, 그 레이더망에 내가 포착된 것이다.

하지만 김양은 1과장의 표적이기도 했다. 에쁘장한 얼굴에 의외로 글래머라 기혼남이면 한번쯤 응큼한 상상을 해보았을 외모를 가진 여자. 갖은 정성을 다 들여도 거들떠 보지도 않더니 어느 날, 날아와서 박힌 총각 놈에게 정성을 쏟으니 색골 놈의 입장에서 달아 오를만도 했겠다.

겉으론 연합전선을 구축하며 뒤로 호박씨 트는 여자들과는 달리, 남자들의 세계엔 호적수란 개념이 있다. 그 존재는 대부분 긍정의 에너지를 만들어 내어 서로의 발전을 도모하게 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부작용도 생긴다. 그 중 가장 엿같은 케이스가 여자 하날 두고 이전투구하는 꼬라지겠다.

하지만 호적수란 서로를 노려볼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지는 것이지, 일방의 규정만으론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런 건 쉽게 말해 차원 낮은 시비이고 깐죽거림이다.

난 처음부터 김양 따윈 관심도 없었고 그걸 빌미 삼아 이죽거리는 놈이 싫었을 뿐이다. 지금도 후회하는 건 그때 김양을 독하게 내쳤어야 했었다는 점이다. 그 시발년만 아니었다면 내가 이 자리에서 삐져 나온 창자 보며 헐떡이고 있을까.

'그만 좀 하세요.'
'1과장님, 뭐하셔요? 그만 하세요. ㅋㅋ..'

회식 내내 내 옆에서 조잘대는 김양 곁에 와선 싫다는 술을 권하던 장면까진 용서가 되었는데 어느 순간 그 손모가지가 무릎 위로 올라가자 화가 난김양이 소릴 질렀고 무의식적으로 내 입에서 해선 안될 지적질이 나온 것이다. 아차 싶어 어색한 웃음을로 마무리하려 했지만 이미 밑을 거덜난 항아리에서 쏟아지는 물이다. 

게다가 앞에 앉자 거드럼 피우던 부장, 이사의 눈에서도 질책의 광선이 쏟아져 나오니, 제 아무리 기세 높던 놈이라도 어쩔 수 없이 꼬릴 내리며 후퇴할 밖에.

2차, 3차, 새벽이 다 되어가도 술자린 끝이 나질 않았고 어지간히 술이 오른 난 피치 못하게 그의 앞에 앉았다. 그리고 시작된 놈의 사소한 갈굼은 갈수록 피치를 올리더니 급기야 나중엔 월급이 아깝다느니 출신 대학까지 들먹이는 게 아닌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  난 500CC 잔을 그놈의 터진 아가리로 던졌고 퍽하는 소리와 함께 술자리는 난장판이 되었다. 

며칠 뒤 면회를 온 김양이 묘사하길, 술기운이 올라 불콰해진 얼굴, 핏발 선 눈에선 광기가, 그리고  온 몸에선 알 수 없는 불쾌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데 도저히 사람 같지가 않아 보이더라나?

한번 터지자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래 전과 똑 같았다. 때릴 수록 화가 나지만 화가 날 수록 머리 속은 맑아지는, 이성은 1만큼도 존재하지 않고 야수성만 남아 있는 상태. 

주변의 소리가 다시 내 귀에 들려오기 시작한 건 경찰차가 오고 나서였다. 하지만 그만하라는 경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난 넘어진 놈을 지근지근 밟아댔고 경찰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눈앞에 불이 번쩍 나면서 앞이 캄캄해졌다.

'형씨는 뭐로 들어왔어? 사람 팼어? 곱상허게 생겨선 주먹질 좀 하나봐? 햐, 요즘 넥타이들 무섭네?'

난 무시했다. 이런 양아치 새끼 상대해봐야 득될 것도 없기 때문인데다 당장의 상황 파악조차 되지도 않아 몸시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양아치는 그걸 자기를 무시하는 것으로 오해했다. 

'어이, 내가 우스워 보여? 내가 누군지 알아?'

누군지 굳이 말 안해도 알겠다. 잘해봐야 동네 조폭이든지 아니면 논두렁. 사각형의 시커먼 면상에 걷어올린 팔에 문신과 주먹에 남겨진 담배빵이 그걸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지 않나.

'형씨, 이러지 마세요. 가뜩이나 사고쳐서 들어왔고만. 피차 일 꼬일 건 없잖소.'

'영씨? 이거 봐라. 맞먹겠단 거지. 그래서 또 사고 또 치겠다는 거냐? 아놔 이런 개 좃밥같은 새퀴를 봤나? 야.너 일어서!'

이미 후퇴하긴 글렀다. 그렇다고 맞고 있자니 그것도 억울하고. 결국 선방외엔 답이 없었다. 난 부러 비틀거리며 일어서다가 난데 없이 마빡을 놈의 면상으로 날렸다. 수박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놈의 코에선 피가 흐리기 시작했다. 곧바로 정권으로 명치 끝을 골라 훅을 올리니 놈은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다.

'씨발놈아, 왜 가만 있는 사람 건드려? 넥타이 매고 있으면 전부 약골로 보이냐? 어차피 깨진 인생인데 너 하나 죽인다고 달라질 거 없는데? 어케 생각허냐?'

아무리 생각해도 분이 풀리질 않았다. 난 놈의 앞머리털을 움켜쥐고선 켁켁거리는 놈의 눈두덩 주변을 갈겨 대기 시작했다. 권투 경기를 보시면 가장 잘 찢어지는 부위가 바로 눈주변의 뼈부분이다. 약한데다 맞으면 불이 번쩍거리며 정신을 못차리는 급소이기도 하다. 

한참을 패고 있는데 또다시 눈 앞이 번쩍하는게 아닌가. 또 테이져 건이구나 중얼거리며 난 또다시 암흑 속으로 빠져 들었다.

A Bittersweet Life OST - "A Honeyed Ques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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