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길 위에서 묻다

잊혀져 간다는 건...

운산티앤씨 2019. 5. 7. 11:10





올리고 나서 득달 같이 베트남 친구가 채갔다. 그리고 연이은 문의. 부담 없을 정도로 싸든지, 아니면 꼭 필요하든지. 언제나 존재하던 商의 법칙이지 않는가?

참 좋은 날이었다. 약간은 등짝이 따가울 정도의 강한 햇살 아래, 멀리 보이는 흰구름은 조금의 검은 기미조차 보이지도 않은 채,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걸려 있었다.

이리도 좋은 날에 가시다니 역시 행운인가?

의논 끝에 최신 리무진에 모시기로 했단다. 그렇지, 아무리 말이 없는 이지만 버스 화물칸에 짐짝처럼 실려 가다니. 당연한 결정에 내가 왜 고마운지. 리무진을 앞질러 가며, 문득 수십년 전 치룬 친조부님 장례가 생각났다.

구름처럼 모인 문상객들을 뒤로 한 채 만장을 앞세우고 좁디 좁은 농로를 마치 유격 훈련하듯 기어 올랐다. 하필이면 비까지 왔던 터라 진창길을 가려 밟자니 여간 곤혹스럽지가 않았거든. 난 두분의 8남 2녀 중 사남의 차남이라 꼬바리 중의 꼬바리건만, 유달리 두분의 사랑을 독차지한 덕에 상주를 제끼고 영정을 안고 가는영광을 (?) 얻었다.

상여꾼 꼬장은 예로부터 유명했지. 100미터 가다 멈추고 돈 내놔라, 길 험하다 돈 내놔라, 게다가 영혼께서 여한이 남았다 하시니 노잣돈 내놔라. 시장 한복판에서 출발해서 장지에 도착하니 무려 6시간이 흘렀더라. 땀은 콩죽같이 흐르지, 영정 안은 팔은 아파오지. 기분 나쁘게 스며드는 차가운 빗줄기의 찝찝함은 보너스더군.

첩첩산중, 호랑이가 산다 해도 믿을만큼 어두운 숲길을 헤쳐야 겨우 도착할 수있는 곳인데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결국 그 이후 난 두번 다시 찾아뵙지 못했다.

생전에 부친께서 이리 여쭈어 보셨단다.

'맹당 (명당)이 있습니꺼?'

'그런 거 음따. 죽으면 그만인데 좋은 자리에 묻힌다꼬 느그들이 잘 살 것 같나? 아무데나 묻어라.'

워낙 호방한 성격의 할아버지라 그러려니 하다가 난 그만 웃어버렸다. 왜냐고? 일찌기 가업을 일으켜 평생 살 재산을 마흔 중반에 마련하고 은퇴, 그리고 못다한 공부나 해야겠다며 한학을 비롯해 토정비결까지. 게다가 사주관상도 봐주신 걸로 기억한다. 어릴 적 처음 보는 어른들이 찾아외선 비단천에 감긴 걸 내놓고 한참을 훈계듣다 꼬깃꼬깃 꿍쳐둔 쌈짓돈을 고이 내놓고 절하는 모습이 일상이었거든. ㅎㅎㅎㅎㅎㅎ

하여튼 그런 기억조차 한번에 날려버릴 만큼 산뜻한 날에 화장으로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장지에 내리시니. 더하여 이미 정리해 둔 장지는 깊이 팔 필요도 없었다. 가로 세로 30센티도 채 안되는 유골함에 담겨져 있으니 말이다.

참으로 어이가 없지 않는가. 100년 이란 긴 세월 속에 살며 수많은 이들과 야사를 일구고, 얼마 전까지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산 자가 저리 묻혀 영원히 사라진다니. 그러면서 또 다시 드는 생각, 내가 여기 다시 올 수 있을까? 아무리 나에게 산더미보다 더 많은 추억과 사랑을 안겨 주었더라도, 가끔 기억하다 혼자 울적할 정도이지 다시 올 일은 아닌 것같았다.

그렇군. 결국엔 다 이리 가는군. 그리고 아무 것도 남기지 않으며 시나브로 잊혀져 가는군. 그리고 그건 나도 같은 길을 걷고 있음을 자각하는 타이밍이 아닌가.

장지로 향하던 차 안에서 난 또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께서 자식들로 부터 받은 용돈을 모았고 그 돈을 여전히 미혼인 작은 이모에게 다 주었다는 거지. 그러고 보니 생각나네.

'다 죽어가는 할마이가 무슨 돈이 필요하다꼬 자리에 누버서도 자식들 용돈 받아 챙기노 말이다!'

애증이 실타래처럼 얽힌 나머지 자식들의 통화와 대화에서 엿들은 건데. 결국은 그 아픈 손가락은 작은 삼촌이었다가 종내엔 작은 이모로. 섭함이 극에 달한 나머지 자식들과 손자들이야 돌아가신 양반의 뒤에 어떤 험담을 하건, 난 그만 그 대목에서 왈칵하고 눈물이 쏟아졌다. 부모 마음을 자식은 병아리 눈물만큼도 이해를 못한다더니. 어차피 쓰지도 못할 돈이 아니었다. 다 용처를 정해 두고 가시기 전에 준비를 하신 걸 왜 모르시나.

죽은 자가 남긴 갈등은 죽음으로 없어지나 했는데 이제 보니 증인과 증거를 각자 가진 살아 있는 자들로 인해 더 복잡해진다.

머 어쩌겠소? 다들 저래봤자 날 받아 두신 거 아뇨? 그 마지막에 행여 당신 생각나면 그 수십년 썩어 들어가, 타버린 육신이 남긴 잿더미보다 먼저 하얗게 삭아버린 그 마음을 헤아릴까. 아니 못해도 상관 없을 거요. 그땐 내가 당신들의 그 고마운 마음을 헤아릴테니까.

이쯤에서 접읍시다. 다 잊고 다버리고 우리 서로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모습으로 뵐 때까지 거기서 잘 지내시요.



https://youtu.be/tIdIqbv7S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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