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길 위에서 묻다

기억이 나를 존재하게 하느니...

운산티앤씨 2019. 5. 1. 22:42




가끔 뜬금없이 내가 언제까지 살아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원래의 나의 관점에서 본다면 죽을 때까지라고 하겠지만, ㅋ 그건 어디까지나 웃자고 하는 소리고.

기술과 과학의 발달로 몇세를 사느니 어쩌니 하지만 언제나처럼 다 덧없어 보입니다.

내가 정의한 내 삶의 종착역은 나를 기억하는 자들이 모두 사라졌을 때입니다. 그리고 그건 나보다 연배인 자들에 한하죠. 나의 후대는 나의 과거를 알 수 없습니다. 내가 말하지 않는 한.

그런 그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춰갈 때마다 서러움이 왈칵 밀려 옵니다.

오늘, 이렇게 좋은 날, 나를 이쁘게 기억해 주던 한 분이 가셨습니다. 얼마 전 100세를 넘기고 갑자기 위독해져 급하게 찾아 뵈었던 외할머니. 4시 40분 경 주무시듯 가셨다고 하더군요. 지난 번 뵙고 난 후 적은 글엔 더 오래 사시겠다 했지만 사실 그 날 난 이미 짙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토록 무심하게 지내던 내가 직접 마지막 모습을 뵈었다는 것이고 그 다음은 맑은 정신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우량아로 태어났던 난 누구도 30분 이상을 안고 다니지 못했나 봅디다. 그러나 할머닌 그런 날 끌고 계모임에, 꽃놀이에 데리고 다니셨다지요. 나 이외 형제들이 많았지만 유달리 날 달고 다니셨다니 어쩌면 나의 어린 모습에서 먼저 가신 외삼촌을 보셨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아참, 그 삼촌은 참으로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군에서 입은 부상때문에 작은 충격에도 정신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삼촌은 늘 언제나 할머니의 아픈 손가락이었고. 첫 결혼에 실패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본 난 할머니의 타들어 가는 속까지, 어린 나이에도 어렴풋이 눈치 챘지요.

그리고 재작년, 가족에게조차 외면을 받은 삼촌께서 작고하시던 날, 난 부모님을 모시고 대구로 내려갔습니다. 장례를 마치기 전, 난 잠깐 자리에 누운 할머니를 뵈었지만 이상하게도 심술궃게 구시더군요. 그러나 단연 무슨 일인지는 묻지 않으셨습니다. 이모들은 아마도 그토록 아끼던 둘째 아들의 먼저 감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모르죠.

지난 번 뵜을 땐 속으로 삼촌 이야기를 꺼내면 어쩌나 했지만 한마디도 묻질 않으셨고 해마다 외가를 갈때마다 들었던 말씀, 밥은 묵었나, 소고기국 묵고 가라, 자고 가라고만 하시더군요.

참으로 힘들었던 1백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일제 하에서 호구지책으로 일본에 가셨다가 해방이 되는 바람에, 전 재산을 다 버리고 돌아온 고국은 다시금 동란으로 잿더미가 되었고 힘들게 모은 가산도 같이 봄바람에 나풀거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갔다네요? 그런 와중에도 2남 4녀를 훌륭하게 키우셨습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내가 막 걸음마를 시작하며 세상을 기억하기 시작할 때 외할아버지는 중풍이 들었고 그때부터 20여 년간 병수발하며 사셨지요.

몇해 전에야 들은 사실이지만 호남형이었던 외할아버지는 젊은 날 주체 못할 바람끼로 어지간히 애를 먹이셨나 봅디다. 그리고 너무나도 독특한 개성의 여섯 자식들 탓에 단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지요. 어쩌면 울 엄마에게 그토록 차갑게 대한 건 살만한 능력 있는 자식은 곁에서 떼내고 모자란 자식부터 건사해야겠다는 독하디 독한 모정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난 아직도 그 말을 모친께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면 나 역시 아픈 손가락이거든요.

삶은 고통이고 업의 갚음이라고들 하지만 떠나고 나면 그조차도 아무 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냥... 그 험하고 힘들었던 세월의 무게를 벗어 던지셨으니 이젠 좀 편하게 쉬시라고 할 밖에요.

내일 오후 8시 30분 부터 토요일 오후 5시까진 어떤 연락도 받지 않을 겁니다. 섭섭하다 여기지 마시고 주인장의 역사 일부를 지우느라 바쁘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https://youtu.be/4z2DtNW79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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