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즐거운 하루

쪼꼬렛과 뚤기 파르페

운산티앤씨 2019. 2. 26. 18:05





1950년 초반 지멘스 클랑필름 8인치 풀 레인지.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틀렸습니다. 지멘스 클랑필름은 우리나라 마니아들이 만든 환상입니다. 환상의 섬~~~~ 그리고 그 명칭이 걸수 있는 유닛은 유로딘에 달린 유닛밖에 없습니다.

남은 것들 중 대다수는, 특히 8인치는 영사기 스피커에 주로 채용되었죠. 떡자석이라고 할 겁니다. 그리고 사진과 같은 형태들은 전부 진공관 라디오에 들어 있는 거죠. ㅋㅋㅋ 하지만 머... 클랑필름 스피커 만들던 공장에서 만들었으니 그게 그거다? 그렇다고 하시면 나는 행복합니다. 4조 있습니다. ㅋ

그리고 이 역시 때론 우퍼로도 쓰였습니다. 이 8인치에 트위터가 있었다는 건 모르셨을 겁니다. 초기엔 지멘스 자체 생산, 후에 이소폰, 그리고 정전형 트위터가 자리를 바꿔 가며 달렸지요. 어떤 라디오에선 단독으로 쓰이기도 했으니 풀 레인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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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 형 중에 아주 특이한 양반이 있었다. 음.. 나보다 열살 위? 워낙 열 남매를 두신 할어버지 덕에 막내 삼촌과 장조카의 나이가 같았으니 흔한 일이었다.

나의 경우, 두 양반 모두 학교에 나가셨던 터라 어릴 적에 이 형의 손에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각별했고 그 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울 할배가 사실 대단한 미남이다. 지금도 70대 사진을 보면 율 브린너를 닮은 것 같기도, 혹은 숀 코네리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 형이 할배의 피를 가장 진하게 받아 어릴 적부터 진성 장조카라 불릴 정도였고 타고난 재조도 대단해서 독학으로 각종 악기를 다루었고 노래는 또 얼마나 잘하는지. 때만 잘 타고 났다면, 집에서 뒷받침만 좀 해주었다면 나훈아보다 더 잘나갔을텐데 말이지.

하지만 셋째 큰 아부지는 그걸, 즉 딴다라를 용납하지 않았다. 난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우당퉁 소리가 나더니, 빤스 하나만 걸친 형이 울부짖으며 도망을 가고 그 뒤를 박살난 바이올린과 부지깽이를 양손에 쥐고 겁나게 쫓아가던 셋째 큰아부지의 분노한 얼굴이. ㅋㅋㅋㅋ

그리하다 보니 공부는 뒷전, 결국 전문대로 가더니 그 다음부턴 패가 꼬이기 시작. 결국 어찌어찌하여 교사인 형수와 선을 봐선 결혼은 했는데. 이게 참 총체적 난국이었다. 매파를 서신 분이 형의 모친, 그러니까 큰어머니셨는데, 이런 말 하긴 좀 거시기하지만, 대단한 구라의 소유자였다. 하여 형수가 홀딱 속아 넘어가선 결혼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학력이고 직장이고 전부 뽀록이 난거지. 어지간하면 야반도주했을텐데 (시누이는 좀 많나?), 워낙 성격 좋고 잘 생겼으니 그냥 주저 앉으신 게다. (그러나 내가 철 들고 난 후 말씀하시기를, 몇번이고 그 결정을 후회한다고. ㅎㅎㅎ)

빽도 없지, 학벌도 읎지, 살며 얼마나 고단했겠나. 그리고 당한 설움이야 말로 다 할 수 없고. 그러더니 느닷없이 하느님의 목자가 된다고 난리. 결국 작고하신 부친의 재산을 받아 경기도 어디에 빌딩 하나 세웠나 보더라고. 그리고 그 지하엔 가루 늦게 딴 목자 신분증 걸고 본격적으로 어린 양 모집에 나섰다는 소식까진 들었다.

'희야 (갱상도 사투리/형), 신도 마이 모았나?'

'열씨미 하고 있다.'

'교회가 잘될라카먼 신도가 빵빵해야제. 장로니 뭐니 이런 거 있나?'

'....'

'와 말이 없노?'

'신도가 아직 셋 뿐이다.'

'헐... 우짜노? 그래도 셋이라도 시작이 중요하제.'

'내, 형수, 우리 아들, 이래 셋이서 기도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마 삼일은 배롤 잡고 웃었을 게다.

하여간 그런 개고생 때문에 유달리 돈도, 빽도 없는 놈은 장가라도 잘 가야 한다는 일념이 박혔나 본데, 그 타겟이 바로 나였다. 이 대목에서... 소싯적 선 본 사람들 이야기 다 들어보면 대어는 다 몇번씩 놓쳤더구만. ㅎㅎㅎ 나 역시 그런 적이 있긴 하다만 아깝단 생각을 한 적은 없는데 그건 나의 좌우명, 5분 전과 5분 후를 생각하지 말자 때문이걸랑.

어느 날 형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모 약대 출신 약사와 선 자릴 잡아놨으니 나오라는 게다. 원래 연애 체질도 아니고 장가 간다고 모르는 이들과 몇번 앉았다가 토할 뻔 한 경험이 있는지라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부모님까지 동원해서 압박해 오는데 견딜 재간이 있나. 결국 날 잡아서 나갔다.

여자 속이야 내 알 바 아니고 난 별로였다. 상대가 못생기고 아니고를 떠나 이건 뭐.. 온 가족이 총 출동을 했네? 뭐여... 이모랑 외삼춘은 또 뭐여. 이쪽은 나, 형, 그리고 형수. 이건 불공평하잖아. 하여간 그쪽은 일곱 명 정도 나왔었다. 도대체 사위를 보러 오신겨 아니면 머슴을 보러 오신겨, 아니면 씨 좋은 종돈 보러?

그런데 이 형님이 도대체가 개념이 없는 부분이, 하필이면 정한 맞선 자리가 러브 호텔 지하 커피숍이라는 거지.

참나. 척하면 모르나. 요상하게 생긴 입구부터, 들어가자 말자 콘돔에 성기구 자판기가. ㅎㅎㅎㅎ 미치고 환장하네. 드뎌 본격적인 교섭이 시작되었다.

우리 두 사람은 얼굴이 벌개져선 서로 쳐다만 보고 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나. 대충 족보 따먹기 했으면 어른들은 냉큼 일어나 나가줘야 본때뵈기를 할게 아닌가 말이다.

'저기... 조부님 함자가.. 본관은..'

'네. 경0 안0 000파 입니다.'

'아이고 양반 집안이시네.'

'그쪽은..?'

'저흰 광0 0씨 문중 000 00손이죠.'

'하이고, 충신 집안이시구만요.'

????? 형수와 난 갑자기 멀뚱해져서 서로를 쳐다 보았다. 우잉? 이제까지 역사를 공부하며 그런 충신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대강 이쯤에서 끝냈다면 우야둥둥 헤피엔딩이었겠지만 난데 없이 저쪽 집에서 법조인 출신을 들먹인 게다. 이에 분기탱천한 행님,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말았는데 그만 튀어 나온 말이..

'우리 집안도 전부 사자 돌림이죠. 조부님 슬하 팔형제의 장남은 전부 S대 의대를 갔고 지금 이 친구의 장형이 국내 굴지의 종합 병원에서 00과 과장을 맡고 있습니다.'

아니 이게 뭔 개소리여. 작년에 레지던트 마치고 아직도 꼬바리에서 벌벌거리는데, 그리고 그 양반이 여서 왜 나와? 이에 발끈한 그쪽 모친께 즉각적인 대응사격을 해오시네?

'광0지검 0부장검사 아셔유? 야 큰오빠구만유?'

그런데 아가씨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니 마빡에 식은 땀이. 흐미 구라구만.

한번 불 붙은 전선은 식을 줄 모르고 결국 이쪽 대포가 모자라니 형수까지 나서기 시작했다. 한번 상상해 보라. 무려 십여명의 어른들이 러브 호텔 지하 커피 숖에 앉아 서로 집안 자장질이라니. ㅋㅋㅋ

난 쥐구멍이라도 있었으면, 아니 다 떠나서 차라리 설사라도 좀 나와줬으면 했다. 여자의 얼굴도, 방금 만든 된장처럼 노랗게 변하고. 게다가 거기 온 인간들이 질이나 좋나. 하나같이 수상쩍은 중년남녀, 몸 팔러 왔다 커피 한잔 홀짝거리는 홍등가 뇬들까증, 때아닌 구경거리가 난 셈이다.

결국 조부를 넘어 고조부, 나중엔 족보 파기까지 들어가더니 급기야 쳔년 전 시조까지 나오네? ㅎㅎㅎㅎㅎ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나중에 땀이 흐르다 못해 똥구녕에서 뭔가 미끌거리는게 아닌가. 난 똥 쌌나 했지. 그렇게 4시간이 흘러갔고 우린 시켜놓은 딸기와 초코렛 파르페가 다 녹아 옆으로 질질 흐를 때까지 하염없이 땅만 쳐다 보고 있었다.

상황이 이쯤되자 그나마 이성이 남아 있던 외삼춘이 나서서 이리 말씀하신다?

'자, 이제 젊은 애들끼리 놀으라고 하고 우린 갑시다~~~'

뉘미... 그들이 떠나자 말자 우리도 나왔다. 도저히 창피해서 앉아 있을 수가 있어야지.

'죄송합니다. 우리 형님이 좀 과하셨습니다. 너무 괘념치 마시지요.'

'아니에요. 워낙 저희 엄마가 성격이 독특해서요.'

'어차피 오늘 판은 다 깨졌고 모두 지쳤습니다. 허니 이쯤에서 각자 길로 가고, 집에는 의견이 맞지 않는다 정도로 이야기하죠.'

'그게 좋겠네요.'

비로소 여자가 웃는다. 차고 혹은 차이고를 떠나 피차 생지옥을 벗어나고픈 마음이 강했던 것이다.

'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

'아니 이노무 여자가 뭐가 그리 재밌노?'

'그 다음엔?'

'없어. 그 형 전화 와도 안받았어.'

'야. 이거 코미디로 만들어도 재미있겠네. ㅋㅋㅋㅋㅋ'

'아지메. 난 뒤질 뻔 했어.'

그렇게 난 결혼 몇 년 후 이 사건을 재미 삼아 들려 주었는데. 문젠 그 다음부터 터지기 시작했다. 대판 싸우다 보면?

'그래. 그때 그 딸기 파르페랑 결혼하지, 왜 나랑 결혼했어?'

'헉...'

이건 약과고. 연속극을 보다 남주인공이 옛여인을 그리워하는 장면이라도 나오면 내 얼굴을 들여다 본다?'

'왜 딸기 파르페 생각나?'

'이 썅...'

얼마 전에 술 마시니 이런 소리까증 하더라고.

'왜 거짓말했어?'

'뭘?'

'결론 전엔 여자 없었다며?'

'어.'

'딸기 파르페 말고 또 있지? 솔직히 말해.'

도대체 낼 모레... 몇살인데. 씨앙....

이 자릴 빌어 붕알 단 놈들에게 경고하노니 어떤 경우라도 마누라에게 다른 여자 이바구 하지 말란 거다. 하는 순간, 니들은 벗어날 수 없는 족쇄를 차는 겨.



https://youtu.be/BflQqw67kX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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