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즐거운 하루

검정 각반들... 2

운산티앤씨 2018. 2. 2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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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Purple - Soldier of Fortune (Cold Mountain 2003)

그리고 며칠이 흘렀나 보다. 나보다 3개월 늦게 들어온 기수 선임이 날 찾아왔다.

'선배님, 진짭니꺼?'
'머가 임마?'
'OO상병 조짔다민서예?'

참.. 폭력이 무서운 건 당장의 아픔뿐 만 아니라, 반복의 쳇바퀴 아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습관성이 된다는 점이다. 무슨 소리냐 하면 때리는 놈은 언제나 정당한 이유를 갖고 있고,맞는 놈은 매번 내가 왜 맞는지에 대한 이유를 스스로 찾아 시스템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대강 이런 식이다. 아침에 검정 각반들이 모여 한 따까리를 하면서 그중 두목이 지껄여 댄다.

'요즘 부대 분위기가 왜 이래? 씨발럼들, 똑바로 안해?'

여기에서 약간의 힌트라도 얻을 수 있겠는가? 속으론 '저 새끼, 기집 도망 갔구만.'이지만 겉으론 며칠 전 기억을 뒤져서라도 방위병들의 잘못을 어거지로 찾아내 자신들이 아침부터 깨지는 이유로 갖다 붙인다. 그리고선 방위병 내무반으로 와서 선임들 불러 역시 같은 소릴 지껄여 댄다.

'이 그지 같은 새퀴들이, 빠져가지구설랑. 대가리 박아.'

그리고 그 폭력은 밑으로 하강하면서 강도를 더해 가고. 이유도 없이 때리고 이유도 없이 맞고 그렇게 온 부대내엔 폭력과 욕설이 만연했다. 12개월 짜리들은 이미 그 시스템에 너무도 익숙해서, 그리고 한번 들어가면 반병신이 되어야 나올 수 있는 헌병대 영창이 두려워 그 가당찮은 폭력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인 시스템을 어처구니 없게도 수호해 왔던 게다.

당시 내 위론 세명의 선임이 있었는데 이 잡놈들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제일 먼저 나간 놈은 공공연히 뇌물을 받아 처먹고선 훈련을 빼주거나 그나마 편한 보직으로 옮겨주는 짓을 자행했다. 어차피 두어달 남은 넘이라 그냥 참고 넘어갔지만 남은 두 놈 중 하나가 문제였다. 간신배처럼 검정 각반들에게 굽신거리며 매번 미꾸라지처럼 험한 일에서 빠져나갔고 저녁이면 술집이나 음식점 하는 후배들에게 찾아가 편의를 봐주겠다는 명목으로 돈과 술과 여자를 뜯어냈었다.

난 날을 잡아 개박살을 내리라 작정을 했고 드디어 그 날이 왔다. 10시 다 되어도 출근을 하지 않는 놈과 필시 같이 술을 처먹었을게 뻔한 뽕쟁이 (이 놈은 진짜 마약을 하고 출근을 하곤 했다. 물론 증거는 없지만) 둘을 찾아 오라고 애들이 외출시키고선 중대장을 찾았다.

'보고할 기  있는데예.'
'머꼬?'

나이는 대대장보다 훨씬 더먹었지만 갖가지 사고 경력에 3사 출신이라 여전히 대위를 달고 있는 중대장. 가끔 대대장이 찾아와도 오지도 않는 낮잠을 청하고선 못 들은 척, 개무시하며 반항하던 이였다. 하지만 딴엔 부하 사랑만큼은 지극해서 비록 똥방위라도 두들겨 맞거나 해꼬지를 당하면 검정 각반들을 혼을 내는 유일한 상관이었다.

난 그에게 그간 벌어진 모든 일을 보고했고 격노한 그는 당장 잡아들이라고 난리를 쳤다. 11시경이 되어서야 아직도 술에 취해 벌건 낯으로 기어 들어와선 목공소에 처박혀 디비자려던 두넘은 그날 저녁 8시가 넘어서야 기어서 집으로 갈 수 있었다.

'니 와 그랬노?'
'한번만 더 해 보이소. 그땐 내가 영창 꼭 보내드리겠심다.'

놈에게 향응을 대접한 놈도 가뜩이나 미운털이 박혀 있었던 터라, 난 바로 뒷기수 중 가장 성질 고약한 놈을 불러 아작을 내버리라고 했다. 

당시 향토 방위 중 상당수의 자질은 대단히 수상쩍은 면들이 있었다. 금고 6개월 이상의 형을 살았거나 판결받지 않은 이상, 다 끌려 왔었고 베이비붐 세대의 직후 후손들인 우린 가방끈 긴 자원들만으로도 60만 대군을 채우고도 남았으니 결과적으로 방위병 자원들은 채우고 남은 찌끄레기들로 득시글거렸다. 또 그러다 보니 동네 조폭을 포함한 온갖 범죄자들이 국방색 아래 숨어 소집 해제 날짜만 세고 있었다. 그러니 지 아무리 밖에서 난다 긴다 해도 개중엔 더 쎈놈이 있기 마련이었다.

범죄에 한번 맛을 들인 자들이 무서운 이유는 저질러봐야 콩밥 먹다 나오면 그만이고, 어차피 버린 몸이라 이판사판식으로 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선은 구 시스템 하에서 참고는 살진 몰라도 언젠간 터질 화약고요, 지뢰밭이었으니 누군가 불만 댕겨 주면...

결국 말썽 부리던 선임이 나가고 나의 세상이 도래했다. 그 즈음에 내가 검정 각반 하나를 조져버린 것인데, 소문은 돌고 돌아 이 녀석에게 들어간게다.

'와, 행님. 쎄네예. 그카다가 영창가면 우짤라꼬예?'
'가면 나만 가냐? 그리고 쪽 팔리서 어디 가서 떠들겠노?'
'그라몬 나도 좀 패도 됩니꺼?'
'누구?'
'분대장요.'
'와?'
'알라들한테 잔돈 긍갈치고 자꾸 때린다 아입니꺼?'
'알았다. 하모 얼굴에 상처 내지 말고. 일 터지면 내 끌어 들이지 말고.'

그렇게 반역과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