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즐거운 하루

부모와 자식은 해결되지 않을 채무 관계?

운산티앤씨 2019. 1. 7. 19:08












--------------



재배치 후의 가게 모습입니다. 2년이 걸렸다고 했지요? 2018년 12월 29일 부터 어제까증. ㅋ 바뀐게 뭐냐고요? 겉으론 모릅니다. 오픈 후 개고생을 하두 하다 보니 상품 배치나 재고 관리 노하우가 조금씩 늘어 이젠 제법 첫 방문에도 일목요연하죠. 그러나...

인근 주민 몇분이 물건을 맡기는 바람에 다시 쥐구멍처럼 좁아 졌습니다. ㅜㅜ

이번만큼은 정말 힘이 들더군요. 20킬로 짜리들을 들었다가 놨다가. 게다가 한번 일을 잡으면 끝장을 보지 않고선 잠이 오지 않는지라 매일 새벽 2시 퇴근, 오전 10시 출근. 직장 같았으면 매일 소주 까고 취한 채로 출근해서 하루 종일 투덜거렸을 테지만 이젠 그럴 일이 없죠. 내 사업이고 내 일이니까. 그리고 일한 만큼 돈이 생기니까.

하지만 늦은 밤엔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일이 재미나는 건 맞는데 왜 이리 죽자고 하나. 말도 안듣는 새끼들 멕여 살리자고 이렇게 양초를 양쪽에서 태우듯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꼴까닥하면 얼마나 원통할까. 그러나 이내 비틀어지려던 마음을 고쳐 다잡습니다. 니만 그리 사나? 니가 좋아 저지른 일인데, 니가 아니면 누가 하나?

그렇지요. 다들 이리 살고, 다들 본인이 초래하였으니 군소리는 할지언정 꾸역꾸역 끌고 가는 거지요. 하니 혼자만 억울해 할 이유는 전혀 없.음. 입니다.

한편 나의 노후, 그러니까 노동력이 상실되어 좀비처럼 슬로우 모션을 보이는 시점에 누구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의 배경엔 자식에게 무조건 퍼주기 식의 사랑은 지양하겠다는 생각도 있지요. 그러기 위해선 나와 아이들 간의 채무관계를 어떤 시점에서 매듭을 지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부모 자식간을 채무 관게로 표함은 너무 매몰차고 돈 밖에 모르지 않는 1차원적 시각이 아니냐는 비난에 직면할 수도 있지만 그 1차원적인 사고 방식이, 나처럼 하루벌이로 사는 사람 같은 경우엔 노후에 돌이킬 수 없는, 그리고 해결되지 않을 극한 가족간 분쟁의 씨앗의 파종을 초래하진 않나 생각합죠.

몇번 말했지만 지금의 베이비 부머 세대와 1970년 중반 자락까지의 출생자들은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 그러나 자식으로 부터 버림받는 첫 세대'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 역시 수차례 언급했고 이젠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고 있으니 여러 가지를 또다시 중언부언해봤자 재탕에 삼탕이니 식상할 밖에.

낳았으니 책임지라는 자식의 채무 해결 요구에 부모는 무조건적인 지원과 사랑으로 답해야 하는 현실은 우리네 알흠다운 풍속임은 분명하나, 그런 무조건적인 뿜뿌질의 이면엔 그만큼 키워주었으니 너도 나 빌빌될 때 효도하라는 옵션형 채권이 동반하는, 다소는 이해하기 짜증나는 사회 구조가 아닐까요?

여기서 옵션이 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이하 인용)

옵션: 미리 정한 가격에 미래에 물건을 사고 팔 권리

옵션은 원래 자산 가격변화에 따라 보유자가 손해를 입거나, 투자기회를 잃어버리는 사태를 방지하는 위험회피, 헤지(hedge)의 목적으로 도입됐다. 자산을 살 권리인 콜옵션은 가격상승, 자산을 팔 권리인 풋옵션은 가격하락에 따른 위험을 사전에 없애는 효과가 있다.

예를 들자. 지금 한 주에 1000원인 주식을 1년 후에 사고 싶어하는 투자자를 가정해보자. 1년 후 이 주식이 2000원으로 올랐다면? 투자자는 같은 가격, 원하는 물량의 주식을 살 수 없다. 같은 금액을 투자한다면 고작 절반의 주식을 살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미리 원하는 물량을 1000원으로 살 수 있는 콜옵션을 샀다면 해당 투자자는 예정대로 원하는 물량의 주식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콜옵션 가격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이 과정에서 주당 1000원의 수익도 거둘 수 있는 셈이다.

반대로 지금 한 주에 1000원하는 주식을 가지고 이를 1년 뒤에 팔고 싶은 투자자가 있다고 하자. 이번에는 반대로 1년 뒤 주식가격이 500원으로 떨어졌다면? 주식을 가진 투자자는 같은 가격, 원하는 물량의 주식을 시장에 내다팔 수 없다. 그러나 1년 뒤 1000원에 주식을 팔 수 있는 풋옵션을 샀다면? 역시 풋옵션을 산 투자자는 본인의 계획대로 보유한 주식을 내다팔 수 있을 것이다.

주식이라는 자산을 가졌거나, 가지길 원하는 사람에게 콜옵션은 가격의 상승에 따른 위험을, 풋옵션은 하락에 따른 위험을 없애주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결과를 얻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옵션을 구입하기 위한 일부 비용은 불가피하다.

(이상 인용 끝)

이를 다시 응용해 보면 부모의 자식에 대한 투자를 본인들의 노후를 담보하기 위한 콜옵션에 비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자식은 이에 대한 인지를 하지 않습니다. 즉 본인들이 원치 않은 삶이 주어졌고 그 삶은 부모로 부터 나왔으니 의당 이행해야 할 당신들의 책무라는 시각만 존재하는 것이죠. 투자론 입장에선 줄 놈 생각도 않는데 퍼주고 수익금을 내놓으라는 식이니 존재해선 안될 시장인 셈입니다. ㅋ.

그러니 부모의 콜옵션 행사에 대한 정당성을 부가하기 위해 효라는 개념이 도입된 것이고 이는 실로 동양 사회 중 유교의 영향력 아래 있는 국가들의 존재 기반이 된 것입죠. ㅎㅎㅎ

여하튼...

며칠 전 어느 배우가 자신의 조부와 재산을 두고 벌이는 분쟁이 기사화된 걸 다들 보셨겠지만, 기실 이런 사례는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통속 소설의 한 장면이기도 하죠. 그래도 이런 이들은 그나마 다툼의 대상이 될 재산이라도 있으니, 오늘 내가 나불거리는 주제가 적용될 수 없는 세상 속 사람들이고, 그런만큼 심드렁한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지만 우린 사정이 매우 다르고 또 급박합니다.

취업은 커녕 고등 백수만 양산하는 대학 시스템에 어거지로라도 집어 넣어야 무시 당하지 않고 산다는 지난 1백년 동안의 불패 신화와 이를 당연시하며 계층화와 계급화를 지지하는 불합리한 우리 사회의 얼개때문에 갈비가 다 나가고, 새살림 차리는 신혼의 자식들을 위해 다시 등골을 빼줍니다. 그리고 은퇴 이후에도 쉼없는 지원이 가능한 병참 혹은 베이스 캠프 역할에, 이젠 손주까지 거둬야 하는 형편이니 어지간한 이들이면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겁니다. 내 말이 틀렸나요?

다시 풀어 언즉, 그런 무한정의 사랑엔 반드시 효도란 상수가 존재하여 부모의 노후 담보란 답이 나오도록 하는 방정식이 의당 존재해왔지만 작금에 이르러선 그 방정식을 풀 애들이 인정하지도 않으며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시츄에이션 하에 있으니 우리 부모 세대들이 또 의당 받았던 정답이 나올리 만무하지요.

결국엔 살아 있으되 산 사람이 아닌, 그러면서도 100세 가까이 혹은 그 이상 살아 있을 부모들은 그 자식들에겐 공포로 다가 설 터. 자라면서 받은 지원의 절반 혹은 그 이상으로 토해내햐 할 처지겠지만, 지넘들도 자식 키우고 노후 앞가림 하기도 바쁠 판국에 이게 과연 받아들여질 콜 옵션일까요?

결국 현대판 고려장인 노인들의 요양원 투척 사태는, 갈수록 세대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사회문제로 번짐은 명약관화이고 이는 이미 갖가지 영상과 문헌을 통한 서구 사회의 실상으로 충분히 거증되고 있으나 현시점 누구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죠. 난 태극기 부대의 움직임을 이 시각에서 관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조종하는 이들은 이들의 욕구를 정확히 반영한 노스텔지어 프레임을 형성하여 대단한 단결력과 무자비한 공격력을 보여 주고 있지요. ㅋ

100세 시대라. 우선 나부터 그간 준비로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까, 애들에게 부담주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하고 자분해 본다면 노답입니다, 그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떤가요? 만약 넉넉하지 않은 노후라면 필히 자식에게 기대야 할 터인데, 설사 그 자식이 너무도 효자라 그런 사태를 충분히 감당한다 자신을 해도 그것이 과연 당신의 속을 편하게 해 줄 것이며 그들도 그런 효의 이행에 기꺼워하리라 보나요?

어떤 시키들처럼 곳간에서 돈다발이 썩어들갈 정도가 아니라면, 단언컨대 그외의 인간들에겐 100세 시대는 저주를 넘어선, 본인과 본인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 재앙이라는 것이 이 글의 첫번 째 요지입니다. 양가 부모 네사람이면 외동아들, 딸들이 대세인 지금 아이들은 도당최 대책이 없게 됩니다. 여기서! 그러니 돈 벌자고 악착같지 살지 않느냐란 허언증에 가까운 실언은 그만하시고. ㅎㅎ

공부 잘하는 넘은 학원 보내지 않아도 공부 잘하죠. 하지 말라고 회초리를 들어도 맞으며 공부하죠. 하기 싫은 넘은? 영어 사전 찢어 만든 국을 아가리에 우겨 넣어도 안합니다. 다들 정성을 쏟은만큼 결과가 돌아온다고 하지만 그건 나와 피를 나누지 않은 타인과의 철저한 이해관계에서만 입니다. 부모 자식 간엔 그런 어거지나 우격다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우린 이미 잘 알고 있는데.

내가 가끔 재벌이나 회사를 욕하는 진정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를 이 꼬라지로 만들어서? 일견 그렇지요. 하지만 깊숙이 내재된 분노는 그게 아닙니다.

또 자질구레하게 풀어 설명하면, 서울 시내 상위권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해서 30여 년 따박따박 봉급 받으며 회사는 잘 다녔지만 막판에 패를 잘못 던져 대리운전. 화물차까지 하다 겨우 지금 자리 잡았습니다. 왜? 기술이 없었거든. 더 정확히 지적하자면, 무한대의 충성과 희생을 당연하게 강요하는 경쟁 시스템과 이에 편승하여 내 피를 빨아먹었던 장구벌레같은 회사란 존재에 허망한 기대를 안고 안일하게 지내다, 대책 없이 튀어 나와서 겪은 지난 3년을 진즉에 예상하지 못하여 개고생을 자초한 나의 무능과 무분별에 대한 분노입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회사에 들어가서 뭘 배우는지. 2모작 인생이라고들 하지만 두번 째 농번기때 (이게 무슨 개소리여, 이모작 같은 소리 씨부리고 있잖아?) 곡식을 거둘 수 있는 재주를 도대체 배워 오는지. 회사 다니니 경영이나 화계, 기술 정돈 빠싹할 거 아니냐. 그걸 밑천 삼아 사업하면 되거든. 헐.. 입니다요.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무려 300여 명에 가까운 인원이 있던 과이다 보니 65명 정도로 4개반을 편성했습니다. 내가 아는 우리 반 동기들의 현재 상황입니다. 편의상 번호로 붙이죠.

1번. 대기업 부장하다 나와서 모 물류센터에서 지게차 운전

2번. 회사는 진즉에 때려치우고 비디오 가게 하다 접고 지금은 대리운전

3번.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결국엔 인형뽑기 가게 운영. 요즘 망하기 일보직전이라 함.

4번. 쟁쟁한 그룹 계열사의 해외 지사 파견까지 갔으나 퇴직 후 믹스 머피 팔러 다님.

5번. 친구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당 받으면 연명.

6번. 역시 알짜배기 그룹 관계사에 다니다가 현재 쌀국수 말아 팔고 있음.

7번. 다단계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행적이 묘연.

8번. 그냥 쉬고 있음. 뭐했는지 모름.

9번. 버티고는 있는데 퇴직 후 할 일 있냐고 자주 전화 옴. 난 채용 게획 없음.

10번. 귀농인.

.

.

이게 1984 학번, 모 대학 경영학과 65명 중 나 포함 11인의 현재 모습이거든요. 하지만 고등학교 동창회 나가서 놀랬네요.

반에서 64/65하는 놈. 서울 모처에 300평 나대지 갖고 있고 또 다른 요지에 50평 아파트 보유. 개인 사업 중. 동문회때 2차 항상 전담. 마누라도 15살이나 어림. ㅋ 처가도 존나리 부자라, 늘 부러운 시키. ㅋ

반에서 63/65 하던 넘. 진작에 모 외국계 회사 들어가서 여전히 임원으로 버티는 중. 10년 전 연봉이 아마 1억? 마누라가 모델 출신이라지?

반에서 4-50/60 하던 넘. 존만하지만 튼실한 중견기업에서 임원으로 버팀. 아이큐는 엉뚱하게 애들에게 전해져 영재학교에 다닌다나?

고퇴 사회 친구. 슬슬 놀다가 3-4개월에 한번 3-4천 벌이는 하고 있음.

그외 비실거리던 넘들 대부분, 동네 슈퍼를 하건 노가다를 하건 주인 아니면 십장이거나 자기 회사 갖고 있습디다. 유달리 내 주변만 그런가?

이 대목에서 공부 못하는 넘이 더 잘산다? 그건 머리 속에 우동사리 키우는 이들의 독해력이고. 요는 개고생하며 내 재주, 내 기술, 나와 내 가족에게 쏟은 자들은 100세 시대를 맞이할 여건이 되지만 공부만 잘했지 괴기 잡을 줄 모르는 이들은 한마디로 좃됐다는 겁니다.

그러나 전자에 속하는 이들이라고 해도 지금으로 부터 물경 45년 간을 어느 정도 벌이로 버티겠느냐. 세월이 갈 수록 엔진에 부하 걸리고 미션 나가고 타이어 터지는데 그때마다 내미는 오버홀 비용은 뭐로 감당하느냐. 보험? 그거 뭔지 다들 아실 것이고, 건강보험은 대중적인 병에 걸리셔야 효과 있고 치솟는 물가와는 반대로 쪼그라드는 연금액과 갈수록 밀려나는 수령 싯점.

아마 깔고 앉은 집 팔고 땅 팔아 애새끼들 뒷똥다리 바쳐주고 나면 적어도 2-30년은 손 벌여야 하지 않겠나 싶네요.

그거 누가 모르냐. 알지만 방법이 없잖냐.

사실 우리에겐 탄생에 대한 선택권도 없지만 죽음에 대한 선택권도 법적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또 그리 하고 싶어도 그 과정의 고통이 너무도 무섭고 설사 쉽게 가는 걸 누가 도와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매일처럼 신문 한켠엔 불쌍한 노인들, 더이상 살 의욕과 의지, 능력이 부재한 자들의 황당한 죽음이 나오고 이는 우리 사회가 치유하기 힘든 병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가장 당면한 걱정이 뭔가요? 줄어드는 노동력에 반비례, 아니 그보다 더빨리 늘어나는 노인층입니다. 설혹 부작용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자들에겐 본인의 의지로 혹은 유언으로 고통없이 죽음을 실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하지 않을까요?

얼마 전 어느 나라에서 불치의 병에 걸린 어떤 여자가 생의 마지막을 본인 의지로 선택하여 그날을 축제처럼 보내고선 아쉬워 하는 지인들의 배웅 속에서 곱게 생을 마감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가요?

하지만 말이죠, 이런 말만 나오면 대번에 재산 문제로 벌어지는 추악함만을 강조하며 억눌러 대죠. 그리고 장애인이나 정박아처럼 사회적 약자가 희생될 지도 모른다고 헛소리나 하고. 제도적인 장치로 얼마든지 막을 수 있거늘, 혹시 마리아 아들. 딸들인가, 아니면 목탁들인가? 그래서 고작 내놓은 대책이 가뜩이나 좁아 터져나가는 땅덩어리에서 힘들게 사는 젊은 애들 불러 모아 새끼나 까라고 좇퉁소나 불어 대지요.

대책도 없이 약만 졸라 처먹어 오래 살면 뭐합니까? 바지에 똥을 쌌는지 오즘을 갈겼는지도 모르고, 몇십년 같이 한 동무도 '니 누꼬?'하는 삶이 진정으로 이어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정신 세계야 말로 안드로메다형이 아닐까 생각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회사 믿지 마십시오. 무용지물은 버려야 사는 조직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무용지물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먹고 살기 위해 다닌다면 남는 저녁 시간에 씰데없이 초원도 아닌 지하실에서 담배 빨며 빳다 휘두르지 말고 퇴직 후 나이에 걸맞는 일을 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십시오.

요즘도 자주 전화 문의를 받는데... 도대체 왜 카페, 편의점, 음식점를 하는겨? 망해 나자빠지는 꼬라지를 보면서도.. 참 이해가 되질 않아요. 그러면서 갱제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