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늦은 밤 티브이를 켜니 이소룡 일대기를 방영하고 있었다. 특유의 그 기이한 기합 소리에, 뼈와 근육만 남은 듯한 몸, 그리고 강렬한 눈빛은 도저히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생동감이 넘쳐 보였다. 나오는 내용이야 이미 책을 통해서 다 아는 것들이고.
장면은 바뀌어 그의 장례식장이 나왔다. 워낙 오래된 필름이라, 비록 컬러였어도 그의 모습은 그다지 명확하진 않았다. 그리고 절친들과 아내가 차례로 나와서 추모를 하는데.
갑자기 얼마나 웃기든지. 그들의 조사는 이른 나이에 뜻을 다 펼쳐 보지도 못하고 먼저 간 그의 재능과 열정 따위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고 있었다. 왜 웃었냐고? 글쎄, 그 조사를 읽은 이들 중 아직까지 살아 있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혹은 현존하더라도 그 일을 기억조차 할 수 없는 노령이거나.
즉 내가 웃은 이유는 살아 생전 뭘 못해 아쉬웠거나 안타까웠거나, 혹은 추모의 대상 이후에도 살아 남아, 추가로 다른 무언가를 이루었건 간에 어차피 살아 숨쉬는 모든 이들은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이별하는 순간은 피할 수 없으니, 먼 훗날의 누군가의 눈에는 이미 사자가 되어버린 그들끼리 나누는 추억조차 얼마나 덧없고 우스꽝스럽게 보일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시니컬하고 누가 그걸 모르냐라고 되물으실 수도 있는데, 이를 당신의 삶에 조금이라도 투영할 수 있다면 팍팍한 지금, 질흑같이 어두운 미래, 한숨만 나오는 과거때문에 숨 막힐 것 같은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론 가끔 다툼 거리조차 되지도 않을 사소함, 예를 들자면 고작 1-2만원으로 손님들과 감정 상하는 일이다. 그 순간만큼은 제시한 나의 가격이 내 자존심이기도 하고, 삶의 마지노선처럼 여겨져 입에 침 튀기며 열나게 설명하고 또는 다투지만, 그 돈 없다고 내가 당장 죽거나 그가 나의 불구대천의 원수도 아니될 터인데 뭘 그리 악다구니에 가까운 발악을 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마구 깍아 주다간 머잖아 문 닫으니 예로만 생각하자. ㅎㅎ)
시방 우리 사회가 딱 그짝인데 우리 같은 민초들이 그 먼곳까지 내다보며 한숨 쉬긴 너무 할 일 없어 보이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자신만 생각해 보자.
배신한 연인때문에, 돈 떼먹고 하이방 그린 친구넘 때문에 (하이방 = High 放 멀리 토낀다는 1980년대 조잡스럽기 짝이 없는 은어가 아닐가 짐작한다.), 능력 없는 남편때문에, 부정한 아내때문에, 말 안듣는 소개끼 같은 자식때문에, 엿같은 상사나 동료때문에 힘들어 하며 매일을 이전투구로 보낸다.
하지만 이 허무의 개념을 조금만 변형시켜 당신 삶에 투영할 수 있다면 어느 한순간, 용서라는 너그러운 마음과 포기라는 내려 놓음 등과 같은 긍정적인 삶의 에너지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전투적인 삶이야 말로 최선이고 악다문 입술로 준비태세를 갖춰야 당하지 않고 산다고 나도 주장하지만 그따구로 살아봐야, 갈 땐 올때보다 더 비참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그런 피내음 가득한 삶이 갑자기 존나리 쪽 팔리거든.
언즉, 그 쪽 팔리는 순간을 생의 마지막 즈음에서야 깨닫게 되면 허무하다느니 후회가 된다느니 따위의 개소리 못지 않은 단말마나 지르며 꼴까닥하여 일찌감치 깨달은 자들의 눈엔 조롱거리 밖에 되지 않으니 조금이라도 앞당기는 편이 좋겠다는 것이지.
그런 경험 없나? 승진 하고자 성공하고자 아득바득하다가 황당하게 간 자들의 장례식에서 말이다. 안타까움인가, 아니면 피식하는 조소인가?
아마 대부분이 수많은 인간관계때문에, 일들때문에 그럴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기실 따져보면 당신과 매일 접하는 이들은 고작해야 10명도 채 되지 않으며 장사꾼이 아닌 이상, 그 낯짝이 그 낯짝 아닌가. 게다가 하루 동안 하는 일을 따져 보라. 뭐가 그리 복잡하고 바쁜가.
이소룡 보다 더 위대한 이들은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 모래알처럼 많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지금까지도 칭송 받고 존경의 대상이 된다만 그들이 이걸 아나? 그렇게 칭송했던 이들도 억겁의 시간 속에선 하나의 점도 되지 않을 미미한 존재거늘.
모든 것이 덧없고 소용없다는 허무주의나 염세주의가 아니다. 그런 자들의 시각을 조금 빌려 내 삶에 보태면 화 낼일도, 분해할 일이 확 줄어들거든.
거듭 말하지만 가장 복되고 영광스러운 삶은 뒈질 때 후회 없는 놈들이 밟아온 시간의 흔적들이다. 도대체 뭘했건. ㅎㅎ
------------------
'세상 이야기 > 길 위에서 묻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강오륜을 버려야 이 모든 갈등이 사라진다. (0) | 2019.01.18 |
---|---|
논두렁 밭두렁 (0) | 2019.01.10 |
삶의 지표들 (0) | 2018.12.23 |
1998년, 보야지별로 삼마리해 갖고 온나... (0) | 2018.12.18 |
나으 버킷 리스트? (0) | 2018.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