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길 위에서 묻다

1998년, 보야지별로 삼마리해 갖고 온나...

운산티앤씨 2018. 12. 18. 22:19




아따 래원이 콧구녕 존나 크네. ㅎㅎㅎ

사람이 오래 되다 보면 영물이 된다더니... 아니 개가 그런가? 하여간 모든 생명의 연식은 그간 찌들고 깨진 세파의 흔적에서 보이는 강인한 생명력과 그런 생명력의 지지기반인 노련함을 말해 주거든. 이를 두고 노회하다고 허지.

하지만 지 아무리 삼천갑자 동방삭처럼 오래 살 것 같아도 언젠간 다 버리고 혼자 가야 함을 알기에 존나리 슬픈 짐승 아닌가? 사슴은 목이 길어 슬프고 코끼리는 코가 길어 슬프고. 타고난 장점이 훗날 슬픔이려니 이게 바로 삶이고 인생 아니겠나.

한 해가 저무는 이 즈음, 난 언제나 정신 없이 싸돌아 다니며 사고를 쳤지만 올 해 들어 유달시리 조용한 건 철이 든 거여, 아님 묘자리 알아 보라는 게여.

난데 읎는 상념에 대책없이 잠기는데 니뉘럴, 아무리 우동사리를 뒤져도 즐거운 추억은 엄꼬 하나같이 줏같은 일들만 추억의 사진첩을 장식하고 있네? 이거야 원, 내가 세상을 잘못 살았나 하는 후회가 덜컥 나리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언제나 난 오분 전을 돌아 보지 않고 오분 후를 계획한 바 없고, 또 없을테니까.

요즘은 거의 들을 수 없는 발음이지만 나으 학창시절엔 선상님, 교수님도 앰, 엔, 엘의 발음이 하나 같이 에무, 에누, 에루였다. 쪽바리 영향은 참으로 질겨 6.25 동안과 그 직후 세대까지도, 굳이 그렇게 발음을 할 필요가 없는데도 고치지를 못하시더라고.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n = m + l2... 이게 어케 들리냐 하믄 에누 이꼬르 에무 뿌라스 에루 투...

졸업을 하고 그나마 영어로 먹고 산다는 모 해운회사에 갔는데... 동기가 전하길, 뒷자리에 앉은 부장 왈,

'어이, 김양아. 이번 달 보야지별로 삼마리 좀 해갖고 온나.'

이걸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다면 동년배거나 아님 같은 동네 출신이거나. 당시에도 약간의 페미니즘 바람이 불어 미쓰라는 호칭을 붙이면 안된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 이 양반, 미쓰 대신 김양, 이양식으로 불렀다나? 그리고 이걸 원문 그대로 옮기면 Voyage 별로 Summary해서 갖고 와라. 즉 항차별로 요약해라. 원래 보이지는 항해라는 뜻이지만 항공이나 해운에선 출발에서 목적까지의 1회차 운행을 의미하거든.

보야지라니. 여기서 야자만 빼면 참 거시기한 표현이지?

두번 째 장면은 내가 있던 사무실에서 이다. 지금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당시엔 착석 흡연이 가능했거든. 이 야그는 한번 했을 것이다.

여하튼 J부장은 악명이 자자했다. 성질이 얼마나 줏 같은지 한번 화를 내면 오전 내내 혹은 오후 내내. 그리고 출근해서 자리에 앉으면 대뜸 '이런 씨발...' 부터 시작했다. 간밤에 쌓인 전문을 보고 분노하는 건데 그때나 지금이나 이해할 수 없는 건 그게 그렇게 까지 화를 낼 일이며 또 그걸 주변에 전파하는 건 또 뭐냐 이거지.

하여간 그넘의 조닥바리엔 욕이 빠지면 뭔가 허전했고, 점잖게 이야기하면 그게 더 이상했으니 어차피 이젠 칠순을 바라보는 그도 많이 후회는 하리라 보는데. 좌우당간 이 냥반, 해외 주재원 생활을 오래하며 현지인들과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우정도 쌓았나 보더라고.

아마 그때가 대리점 회의였든가. 그 영쿡놈 이름이 마이클이었는데 신입으로 들어와서 어느듯 과장이 되었으니 반은 한쿡인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하여 둘은 늘 서로를 부를 때 마과장, J부장님 이 질알을 떨었는데.

마과장, 그간 실적을 얼마나 자랑질하고 싶었겠어. 하여 J부장 옆에 서서 이야기하다 국제 전화가 오니 이번엔 옆자리 부장 잡고 쏼라쏼라. 다들 잘 아시겠지만 영쿡인은 극단적이다. 말이 많거나 말이 적거나. 프랑스인들은 오도방정이 대체적으로 심하고. 이태리 수건들은 개코도 아닌 일에 거품 뿜어내며 마데인 게르마니들은 항상 크레물린이다.

여하튼 그날따라 마과장이 존나리 시끄럽더라고. 사원이라 맨 앞에 앉은 난 슬슬 부란해지기 시작했지. 언제 저 즈랄 마즌 성격이 푹발할까 조마조마. 아니나 다를까 통화에 방해가 되었든지 J 부장이 터졌다.

'야이 씨발놈아. 좀 조용히 해라.'

사무실이 떠나갈듯 고래고래 소릴 지르는데 ㅎㅎㅎ 마과장 대단하더만. 이젠 목소리를 죽여가며 속닥거리니 사무실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게두 줏같은 고등학교지만 선배랍시고 깍듯이 존칭하며 보험 가입 권유 차 갔거든. 아놔 이 씨버랄 인간. 보자 말자 자긴 간경화라네? 뉘미, 피둥피둥 살만 올랐더만. 그래도 새카만 후배가 왔으니 차라도 한잔 하고 가라고 잡는다. 갑자기 울린 핸드폰. 스마트 폰 아녀. 핸드폰이여.

모라 모라 지껄이다가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지르는게 아닌가.'

'야이 씨발놈아, 나도 말 좀 하자.'

ㅎㅎㅎ 그나마 저런 갑질 아닌 갑질도 재능과 지위가 받쳐주니 하는 것이려니. 그려, 그 기개 하나만큼은 높이 사주마.

그리고 몇년이 흘렀나. 그룹이 자빠지면서 J부장은 뇌혈관이 터져 반신불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려, 하루가 멀다하고 아르피에무 (RPM)를 극상으로 올려대니 빠이뿌 (Pipe)가 버티겠어? 그리고 몇년 전, 모 다큐멘터리에 나왔더라고. 평생 해외를 돌며 경제에 이바지한, 그러나 은퇴한 산업역군. 그리고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제 갈 길 걷는 자식을 바라보는 아비의 모습으로 나오던데 와 그리 초라하노.

간경화야 갔겠지. 지금까지 살아 있을라고?

그 모습 보며 많이 느꼈다. 그리 잘나 세상을 우습게 알던 이도 결국은 연식은 못이기는구나. 이미 노쇠하여 언제 사냥당할지 모르는 신세로 전락한 듯 보이니.

뭘 말하고 싶은지 감이 잡히는가? 네가 지금 붙잡고 용을 쓰는 이념, 관념 등등의 바라볼 관은 그때나 유효하지 시간 흐르면 빛바랜 사진 한장만도 못한 기억의 단편이라는 것이다.

조직을 위해 충성하고 그에 대한 답례로 높은 위치를 얻어 떵떵거려 봤자 남은 건 내리막길 뿐이니, 높이 올라간만큼 내려오는 길도 험한 줄 알라는 뜻이다.

이 나이 되면 다 느낀다. 학벌도, 지위도, 명예도 다 허무하고 무상함을. 아득바득 살아온 자들일 수록 그 공허함은, 낮게 임한 자들의 수십배이니 지금 난다, 뛴다 하며 너무 자만하지 말고 사람 막 대하지 말라는 게다.

세월 이기는 장사 없으니 매일을 낮게 임하여 먼 훗날 그 공허함은 작게 만들어 감, 역시 삶의 또 다른 지혜이려니.

삶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여....



https://youtu.be/uWsz5xMJF6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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