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이 다소 거칠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낮에 사촌 형 한 분과 카톡으로 짧은대화를 했었다. 아들눔 대학 진학도 궁금해 하셨던 터라, 그리고 지난 번 너무 매몰차게 전화를 끊어 미안했던지라 굳이 문자로나마 근황을 전했는데.
내가 아들의 진로를 정했다는 것까진 찬성이라 기분 좋았았다가 갑자기 내 문제로 옮겨 가더니 그렇게 살지 말고 지방 어디에서 큰 기업을 하는 삼촌에게 의탁을 해 보라는 권유를 하라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싶어 되물으니 지금 하는 일로 밥이나 먹겠나는 거지.
하기사 남들 보기엔 예전 쓰던 쓰레기 줏어 되파는 일이나 하고 있으니 오죽 한심하랴. 그리고 그간 전적도 만만찮으니 그 형님 입장에서 안타깝기도 하셨겠다만은.
사실 글에선 마초의 첨단처럼 굴지만 그건 완력이 필요할 때나 그렇지 기실은 마마보이에 가깝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 보호막을 벗은 지도 불과 몇년 되지도 않았거늘. 그렇다고 해서 집사람과 분쟁이라도 있으면 쥐새끼 마냥 쪼르륵 달려가 칭얼거리는 타입은 아니다. 다만 이런 저런 도움을 조금씩이나마 받고 있어서 이다. ㅋ
변명 같지만 아무리 필요없다고 해도 화까지 내며 챙겨주는데 그걸 어찌 뿌리 치냐고. 하여 갈 때마다 햄이라도 한 동가리 얻어오니 집사람 입장에서 부모님 댁에 가서 도대체 뭘 어떻게 떠드냐는 거지. 떠들긴 젠장할. 오마니의 그 성격을 수십년 보았으면서도 모르냐. 그래서 졸지에 마누라에게만 마마보이다.
한편 워낙 격정적이고 조옷까튼 성격이다 보니 어딜 가나 말이 많았고 일도, 탈도 많았지만 여즉지 자부하는 건 그 흔해 빠진 돈 빌리자는 구걸 한 번도, 일자리 청탁 한번 제대로 한 바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다구 개차반으로 치고 박으며 살아 왔어도 식솔 거느리고 숨은 쉬고 있으니 이만하면 괜찮다 싶은, 하찮은 내 존심의 발로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의 이런 날 만들기 까진 몇 가지 사건이 있었는데, 그 첫번 째는 다니던 회사가 송두리째 흔들리며 선택한 보험 영업의 두번 째 달에서였다. 이미 이야기한 바 있지만 2000년 12월 24일 저녁, 난 무슨 날인지도 모르고 영업을 하러 다녔고 마지막 방문지는 잘 나가는 은행 지점장이었던 처삼촌이었다. 가기 싫었지만 마누라 등쌀에 못이겨. 여하튼 한참을 설명하는데 문득 제지하더니 사인부터 하시고 되묻길, '자네, 오늘 무슨 날인지 아나?' 기특하다고 생각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오죽 한심했으면 그렇게 되물었을까.
창피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이후 난 지인 영업 때려 치우고 인터넷으로 전환햇었다. 요즘 수많은 보험 비교 사이트들이 생겨 설계사들 생계를 위협한다고 하지만, 당시 난 어차피 영업의 중심은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옮겨 지리라 보았고 그 시각은 지금 사실로 입증되지 않았나. 그리고 격렬한 비난과 저항에 직면은 했을 지언정 나름 성공했고 그때 익힌 썰푸는 방식은 지금의 밑천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두번 째는 보험 영업을 접을 즈음에 터졌다. 어느 날 아버지가 부르시더나 지방에 있는 삼촌 (처음에 말한 분)을 찾아가라는 것이 아닌가. 어릴적 워낙 친하게 지냈고 우리집에도 자주 가족까지 왔었지만, 얼굴 보지 않은 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언즉, 어릴 때 그눔을 내가 많이 도와 주었으니, 그리고 다른 형제들 덕에 이젠 떵떵거리니 나 하나 정돈 받아 주지 않겠느냐. 그런 취지로 이야기 다해 두었으니 가 보란 건데.
솔직히 기대하지 않은 건 아니다. 일이라면 자신 있었고 뭐든 할 나이였으니까. 하지만 그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뜬금포로 자신이 얼마나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지 장황하게 설명을 하시더니 밥이나 먹자고. 그리고 말이 없다가 문득 회사에 피붙이를 들이고 싶지 않다고 하시더군.
아차, 그러고 보니 큰 댁의 장손이 워낙 빌빌대니, 그 꼬라질 보다 못해 받아 들였다가 발꿈치 물렸다는 고사가 떠올랐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멘트 아닌가. 밥 잘 먹었다고 인사하고선 왕복 이천리 길을 소득 없이 오가는데, 씨발 그건 그거고 나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같은 카테코리롤 묶어 도매급으로 넘기는 양이 괘씸했다.
아부지 역시 분기탱천, 오마니는 화를 참지 못해 자리에 앉지도 못할 정도였다. '이누무 시키가 거지 꼬라지 하고 다닐 때 내가 거둬 먹이고 재워주었거만. 은혜도 모르고 개너므 자식~~~'
그 이후론 그 집안과 연락도 하지 않고 지낸다. 이게 뭔가? 그 부탁만 없었으면 여즉지 집안 간 내왕하며 잘 지냈을게 아닌가. 후에 부모님은 몇번이고 그 이야기를 되새기시며 분노하셨는데 보다 못해 이리 말을 했다.
'아부지가 그 삼춘 도운 건 도운 것이고 그 당시 당신 자식들에게 훗날 갚으라는 말이라도 하셨소? 당연히 아닐 것이고 그 도움을 줄 땐 동생이라 주신 것 아니오? 그게 받을 채무라고 생각하시면 안되지요. 이제 고마 하소. 그 냥반 입장에선 개판 친 장손 생각하면 이가 갈릴 것이구만.'
마지막은 중국에 있을 때였다. 수입한 물건이 사기로 판명되고 3천에 가까운 돈을 날리고 풀이 죽은 나에게 우형이 직장을 알선했다. 하지만 당시 마누라는 결사 반대. 이제야 자리 잡는 마당에 왜 다시 시작하느냐는 거지. 하지만 여기엔 우형에게 생긴 비극적인 일을 나눠야 하는 책임감도 있었다. 여하튼 그의 권유로 10년 만에 시작한 직장생활은 한마디로 개 좃같았다.
전에 역시 한번 언급했던, 씨발럼들이 날 볼모 취급하며 붙들어 놓고선 우형의 단물 빼는 꼬라질 보고 있자니, 내 그때 이게 바로 장사치 새끼들, 양아치 새끼들이라고 낮춰 보는 이유고, 왜 조선에 사농공상이란 계급이 존재했는지 이유를 알겠더라고. 하여 엿이나 먹으라고 하고 나와선 두번 다시 직장 이야기 꺼내지 못하게 단도리하고선 대리운전, 화물차를 비롯하여 밑바닥을 발발기며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 씨발놈들은 나중에 우리 부모님 이 세상 떠나실 때 분명히 꼬라지 보일텐데 그때를 대비해서 내가 존나게 잘 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나.)
모친은 그런 내 생각만 하면 심장이 벌링거리신다나. 그러면서 끝 없이 우형과 그 삼춘을 탓하는데 짜증이 잇빠이 돋아 화를 버럭냈다. 이젠 좀 그만 하라고. 대학 나온게 무슨 벼슬도 아니고 그런 일이 죄 짓는 것도 아닌데 왜 남탓을 하느냐 말이지.
얼마 전에도 비스무리한 일이 생겼는데. 자주 가게에 오는 형님 한분이 모 카페를 소개하며 화물차를 하고 있으니 거기 오디오 옮겨 주는 걸 겸하면 어떻겠냐. 마침 그 카페장을 잘 아니 한번 연락해 봐라. 분명 그쪽 사정 알고 하는 말이니, 게다가 주고 받는 관계이니 어떠랴 싶어 메일 넣어보았지만 소식이 없네?
햐, 이 시발 새끼 봐라. 그 양반 이름까지 거론하고 서로에게 도움되자 하였거늘 거절이라도 답을 해야지. 머 이런 무례가 하늘 똥꼬를 찌르는 잡새가 다 있냐 이거지. 사실 구매대행이나 중국에 거래선 틔워 수입까지 구상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는 오늘은 이때 입은 마음의 상처에서 비롯된 게다. (솔직히 그런 면에서 내가 조금 쪼잔함을 부인하진 않습니다요. ㅋ)
즉 그 씨발럼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 바닥에서 나 모르면 간첩인데, 머 이런 허접한 새끼까지 카페 차려 엠병하나 싶었고, 오냐 니들 한번 죳되바라 싶은 차원이라는 거지. 지금은 사실 좀 미안하기까지 하다만은, 솔직히 말해서 개족도 아닌 걸벵이 설계도 쪼가리에로 구라로 뿜뿌질해서 기백씩 받아 처먹는 꼬라지가 얼마나 같잖은가. 게다가 도처에 이런 씹스런 카페가 널려 무지한 초심자들 대책 없이 피 빠는데 개인적으론 가만 둬선 안되겟다 싶기도 하고 이참에 판을 싹 갈아엎어 내가 다 먹어야지 하는 생각도 없잖아 있고.
여하튼 아직은 구석자리 좌판 수준이지만 머잖아, 두고 봐라. 전부 문 닫게 해줄테니.
결론이다. 남에게 부탁하지 말고 손 벌리지 마라. 그러나 나중에 되받을 양이면 당당하게 문서든 뭐든 증거를 남기고 당당하게 요구를 하런 것이다.
그리고, 이런 면에선 난 다른 나라 사정까진 모르겠다만 (적어도 이 정돈 아니지), 뭐 좀 안면 있다고 생각되면 사돈에 팔촌까지 숟가락 얹으려는 그 개둍 까튼 사상 좀 버려라. 누군가의 성공의 원인과 동력은 당사자의 것이지 나머진 약간의 조력내지는 약빨 정도에 지나지 않거늘 왜 떡 줄 놈,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이 아닌 떡 먹을 생각을 하나.
친척 중 누가 경찰이면 개나 소나 전화질해서 음주 운전 빼달라, 사기 당했는데 힘 좀 써달라. 누구 국세청 있으면 안면 하나 없던 동창넘이 전화질해선 세금 좀 낮춰달라. 참 질알도.
우형이 큰 병원에있다 보니 벼라별 청탁 전화가 다 온다.
'우리 친구 아부지의 제일 큰형이 이번에 폐암인데 죽기 전에 소원 이라고 그 병원서 수술 받고 싶다는데 우째 안되겠나?'
'머시라? 니하고 먼 관계고, 그라믄?'
'친구 아부지 형이라니까.'
'니하고 죳도 아니구만. 하여간 연세가 얼만데?'
'올해 아마 여든인가, 여든 둘이라꼬 카더만.'
'야, 그냥 진통제 맞고 조용히 가시라 케라. 노친네가 염치도 좋네. 그 나이에 뭔 수술이고? 받으면 살아나냐?'
'말하는 꼬라지 하곤. 오죽 답답하믄 그라겠나.'
'야 임마야. 니가 그런 부탁을 나한테 할 땐 적어도 너, 니 마누라 혹은 자식 새끼 정도 되야 하는 거야. 아무리 친형이지만 청탁도 꺼리가 되야 하지. 그런 개족보로 청탁하면 어지간히 들어주겠다. 나만 욕 얻어먹지.'
'ㅋㅋ 사실은 안들어 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래라도 했다는 건 보여 줘야제.'
돈 있는 놈들은 검사나 판사 사위 보고 싶어 안달이지. 뒤가 구리니 언제 잡혀갈 지 모르는 것이고 그때를 대비해서 보험 들어주자는 뜻인데. 씨발럼들아, 딸래미가 소중하면 사실은 그런 생각은 아예 접어야 하는 거 아니냐. 왜 멀쩡한 청춘까지 부정의 고리로 끌어 들이냐고. 나라가 요모양 요꼴로 아작이 난건 바로 이런 사람 알기를 개떡으로 여기고 돈에 미친 이런 씹쓰레기들 탓이 아닌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난 단호하게 그 형에게 말했다. 이제 내가 할 일 찾아 자리잡고 있으니 이젠 더이상 내 삶을 휘젓거나 향로를 바꾸는 간섭은 사양한다고. 그 양반이 설사 내 도움이 절실하다 해도 내 사정이 허락하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자리라도 갈 수가 없으니 앞으로 두번 다시 거론하지 말라고 말이다.
잘 들어라. 누군가 아는 이 중 하나가 잘 나가서 좋은 자리에서 떵떵거리다면 '나 그 사람 알아' 정도까지만 활용해라. 정말 그가 도울 마음이 있다면 너와 연락이 닿는 한 알아서 도와줄 것이다. 하지만 반응이 없다면 도와 달라는 요청은 죽기 일보직전이 아니면 꺼내지도 마라. 별 허접한 부탁과 청탁은 설사 들어준다 해도 훗날 몇배로 갚아야 부체가 된다.
그리고 아직 니 발로 걷고 니 손으로 뭐라도 잡을 수 있다면 누구에게든 도움 요청도 바라지도 마라, 어떤 때는 그런 설익은 도움조차 냉정하게 뿌리칠 줄 알아야 한다.
애매모호했던 개념 하나가 글을 쓰며 완벽하게 정리되었다.
가장 성공적인 삶은 뒈질 때 마음의 부채 하나조차 없는 삶이다. 내말이 틀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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