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잘 살고 있습니까?'라고 물어본다면 언제나 '그렇다.'이다. 무슨 근거로?
먹는데 지장 없고 배출함에 장애 없으니 식 (食)의 해결이요, 딱히 패셔너블하진 않으나 벗고 지내지 않으니 의(衣)도 해결이라, 게다가 등 누울 집까지 있으니 기본 욕구는 충족인 셈이다.
이미 은퇴한 마당에 뭔 얼어 죽을 출세를 하겠다고 아등바등할 것이며 이미 디질 땐 1원도 못 가져갈 돈이라 알고 있으니 그 허망함을 많이 가져 보겠다고 사업 확장할 계획도 없는 데다, 지금 하는 일론 가족 부양은 부족하나마 차질 없이 하고 있으니 2차적 욕구마저 어느 정돈 충족되고 있으렸다.
또한 내 진즉에 고상과 우아와는 담쌓고 살아온 체질이라 존경이나 인정받고픈 욕망 따윈 앞으로도 생길 가능성은 전혀 없으니 이만하면 그럭저럭 괜찮은 삶이 아니겠나.
게다가 젊어 아니 해 본 짓이 없어 지금 딱히 뭘 하고 잡은 일도 없으니..
음악이 함께하여 좋고 밥보다 더 좋은 오디오에 둘러싸여 하루 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불쾌하지 않은 데다 생각나는 대로 나불대도 동감해 주는 분들 계시니 외롭지 않다.
하지만 '건강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자신이 영 없다.
운동을 접은 지도 이미 5년은 되었고 그 핑계는 다름 아닌 나이 들어 관절이라도 성해야지 싶어서였는데, 먹기만 하고 움직임은 예전의 1/10도 안되니 몸이 무거워지면서 동작도 둔해지기 시작했다. 원래 이 나이에 그러려니 했지만 지난주 장전축 배달을 하며 확연히 느꼈다. 이젠 이 나이에 보여줄 동선 수준에 못 미침을.
그간 허리둘레나 재 보잔 마누라 성화를 개소리로 여기며 지내다가 오냐 한번 재보자 했다가 기겁을 했네. 이건 사람의 몸이 아닌 것이여. 미쉐린 타이어맨도 올고 갈 정도여.
어젠 뭘 고친답시고 쪼그려 앉아를 시도했는데 도시 자세가 나오질 않아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가 않다. 숙이면 튀어나온 배가 영 성가시지 않고 그 자세로 몇 분을 지속했더니 뒷골까지 땡기는 기분이란.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오는 건강보험 공단의 문자, '해가 지나기 전에 암검진 받으삼'이 문득 심상찮아 보인다.
한번 언급한 바 있는데, 연전 사촌 형님 한 분이 췌장암으로 생을 달리했다. 그 양반, 나처럼 자존이 하늘을 찌르는 스타일인데다 원래 금수저 물고 나서 혹자는 그때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으리라 했지만 본인 마음이야 같진 않았을 터. 들리는 풍문에 따르면 우형에게 형수가 몇 천 만 원을 싸 들고 오셨다나. 살려 달라고.
지 아무리 잘난 형이라도 췌장암 말기를 어찌 고치나. 도로 갖고 가시고 그 돈으로 가시기 전까지 부족함 없도록 하라고. 하여 최고급 병실에서 아프지 않게 살피니 본인은 다 나은 줄 알고 새로 임명된 사장 자리 출근하겠다 들떠 면도하고 단장한 다음 날, 가시더란다.
이미 그가 가고도 1년이 지났지만 뭐가 남았나. 그들 가족엔 그리운 얼굴일지 몰라도 진즉 연이 가늘어진 나에겐 그 또한 다양한 죽음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을 뿐. 그리고 그가 가진 사연들, 아무리 가심 아픈들 타산지석의 예로 밖에 남지 않았다.
아프니 최후를 예감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아프지 않으면 삶은 이어질 것으로 믿고 일을 벌이겠지? 그래서 아파야 할까. 그건 또 아닌 것이고.
하여 적당한 때 모든 걸 접고 그때가 언제인지 몰라도 담담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구나 싶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건강해야겠고, 이단 그런 건강을 위해선 날씬해야겠으며, 삼단 일평생 욕심과 화로 오염된 육신을 정갈하게 해두면, 사단으로 그 마지막이 비참하지 않고 깔끔하지 않겠느냐 싶다.
하여 금일부터 최우선 목표로 지금 체중의 60%의 유지로 두었는데, 마음이 너무 무겁다. 끼니 때마다 거르지 않았던 고기는 워쩔 것이며, 달고 시고 맵고 짠 입맛은 워쩔 것이냐.
이 모든 걸 포기하고 날씬해져서 비럭방 똥칠할 때까지 뒤지지도 않으면 또 어쩔 것이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딸 보고도 넌 뉘기여 할 정도로 정신 나간 노친네는 또 어떻고.
아, 나이 드니 왜 이리 옵션이 적어지는 것이여? 글 쓰는 순간에도 짜증이 만땅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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