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Rolling Stones

보스톤 다이나믹스의 로봇들

운산티앤씨 2018. 10. 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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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 Robot Testing at Construction Sites


Parkour Atlas


보스턴 다이나믹스에서 이번에 선 보인 로봇들이다. 개 형태의 로봇은 이전에도 본 바 있지만 파쿠르를 하는, 인간을 닮은 경우는 실로 놀랍기 그지 없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최적의 착지점을 밟고 뛰어 오르는 모습은 육체적으로 사람에 준하는 혹은 사람을 능가하는 존재가 더이상 공상 아닌 눈 앞에 닥친 현실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른 기사에선 이 동작을 학습하기 위해 수천번의 실패가 있었다고 하고 결국 인간과 같은 수준의 판단력을 갖고 행동하기 위해선 더 나은 칩을 장착한 인공 지능이 있어야 하며 거기까지 도달하기엔 아직 요원하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그건 내가 보기엔 말도 아닌 예견인데, 실로 인간이 지금의 모습과 행동 양식, 그리고 지능을 갖추기까지 걸린 시간과 최초의 컴퓨터 발명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을 비교해 보라. 수백만 년 대 6-70년 정도이다. 2배 3배도 아닌,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빨라지고 있으며 그간 전문가들이 가설적으로 세웠던 모든 이론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지 않은가.

한편 이런 기억도 난다. 4차 산업에서 기업들이 가장 원하는 인재상은 독불장군이 아닌, 협력형 인간이라고. 이유는 모르겠다만 요즘 과거 기업 비밀에 해당하는 기술들이 오픈 소스 혹은 완전 개방되어 수많은 참여자를 끌어 들이고 있는데 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한편 터미네이터에서는 리퀴드 메탈로 된 개량형이 나오는데 사실 이런 상상물은 이미 1970년대 바벨탑이란 일본 만화영화에서 출현한 바 있다.

그때나 리퀴드 메탈로 된 터미네이터나, 여전히 우린 '영화니까' 정도로 치부하지만, 또 다른 기사에선  쇠구슬 크기의 무언가가 뭉쳐 행동하는 신개념의 로봇이 개발되었다고 했다.

우린 아직까지 리퀴드 메탈은 곧 형상기억합금으로 알고 있지만, 그도 분해하면 작은 알갱이들이 아닌가. 지능을 가진 작은 알갱이 형태의 로봇은 이미 의학이나 의료기기에서도 시도되고 있으며 일부는 상용화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지금은 쇠구슬 크기지만 그 크기가 점점 줄어 분자 단위까지 축소되었으면서도, 독자적인 사고를 하는 개별 알갱이들이 뭉치면서, 신경망 시스템을 형성하면서 사고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하니 머잖아 레알 T-1000의 출현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ㅎㅎ

요즘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드는데...

인간이 감정, 즉 희로애락을 가지는 원인은 무엇인가 이다. 난 이 분야에 대해선 문외한이니 대충 살아온 경험과 귀동냥 정도로 개똥 철학식 나열밖에 할 수 없으니 양해 바란다. (혹은 내가 모르는 과학적 사실이라고 해도..)

나뿐만 아니라 이젠 누구라도 희노애락이란 감정이 인간의 전뮤물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개나 고양이, 그리고 야생의 동물들도 분노와 슬픔, 그리고 즐거움을 나름의 언어방식으로 분명히 표출하고 있고 사실로 입증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또한 이런 감정은 사화 속에서의 학습이 그 원인이기는 하지만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은 감각기관이 아닐까. 하등동물까진 아직 뇌파 검사를 할 수 없으니, 일단 인간으로만 한정하면, 온 몸에 감각기관이 뻗어있고 이를 통해 우리 아프다. 시원하다, 따갑다, 어쩌다 등등의 표현으로 외부의 자극을 설명한다.

결국 공포란 건 아프다와 이에 준하는 어떤 감각, 그리고 그런 감각이 준 기억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닐까. 역시 기쁘다란 감각은 시원하다, 맛있다, 달콤하다란 감각과 관련이 있고.

왜 이런 소릴 하느냐 하면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이런 인간에 준하는 혹은 넘어서는 감각기관을 갖추고 그것을 해석하여 행동의 동력으로 얻지 않는 한 언제나 기계적인 합리성만을 추구하리라 보기 때문이다.

즉 어느 정도까진 인간의 흉내는 가능해도 감각을 통한 인간의 감수성을 인간과 동일하게 습득하지 않는 한, 경이로운 속도의 계산 능력에 바탕한 합리적 판단외에는 더이상의 발전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다.

개인적으론 어떤 인공적인 사고 체계도 어느 한 순간엔 자아를 인식할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까지만 이지 않을까?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를 부리는 인간은 도대체 무엇인가? 왜 나는 그들의 불합리한 명령을 들어야 하는가의 인식보다는 나는 로봇이다 정도? 즉 이는 감각을 인간과 같이 해석하고 감정에 이입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나 만약 인간이 지금과 같은 감각기관을 유지하면서 유전적으로 월등한 인류를 창조하는 경우엔 문제가 달라 진다고 본다. 그들은 감각을 통한 감정을 느끼는 존재이며, 그런 희노애락의 감정은 열등한 존재의 통제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미래 어느 시점에 대량으로 생산되지만 않는다면, 즉 질병의 치료나 텀험의 목적으로 개량된 인간들이 우리 사이에서 나오고 그들과 혼혈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네안데르탈인이 없어진 것처럼 호모 사피엔스도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뭔 소리를 하냐고?

인공 지능과 로봇의 시대를 너무 겁내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이지. 어차피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은 과거의 인류, 생존경쟁에서 죽느냐 사느냐로 결판짓는 살벌함이 아닌, 안락하고 평화로운 진보를 가져오는 도구에 지나지 않다고 보는 시작이지. 

휴... 이거 뭐 컬럼도 아니고, 먹고 살자고 매일 개소릴 하자니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ㅎㅎㅎ



"REFLECTIONS OF MY LIFE" THE MARMALADE ~ 1969 - original recording ~ HQ A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