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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다섯째 숙부가 돌아가셨다는 전갈을 받았다. 어릴 때 자주 뵙던 분이라 마지막 가시는 길은 봐야겠다 생각하는 순간, 이미 형이 대표로 갔다나? 이런.... 못뵌 지 벌써 20여년이 다 되어가는데, 허무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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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올라오는 길에 사촌형이 전해 준 마지막 가시는 길이 하도 황당해서 꼭지 확 돌게 하더라고. 몇달 전 폐암 진단을 받고 수술 후 항암 치료 차 입원해 계셨는데 옆에 코로나 걸린 개자식이 들어와서 그때문에 돌아 가셨단다. 그래서? 장례 잘 치르고 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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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시발이란 욕이 튀어 나오려다 말았다. 그게 그렇게 끝날 일이냐고. 사망 원인이 현재도 방역 중인 전염병이고, 본인이 애초 걸린 것도 아니고 옆 환자때문이라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까 사망진단서나 그간 치료 기록만 열람해도 원인이 폐암인지 아닌지가 분명할텐데 그냥 장례를 치르다니. 길길이 날뛰는 차에 그 형 하는 말이 가관이다. 그럼 니가 변호사 선임해서 소송 진행해 보지 않을래? 보상금 나오면 니 반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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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도 자식이 있다. 만약 덜 떨어졌다면, 그리고 어른들이 갔다면 그 정도 조언은 해 줘야 마땅하거늘, 그냥 하루 저녁 관만 지키고 오다니. 여든이 넘으셨으니 살만큼 사신 건 맞지만 이건 너무 억울한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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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논조로 부모님 앞에서 열변을 토하는데 아부진 들은 체 만 체. '나도라 (냅둬라). 즈그 아들이 알아서 하겠지.' 알아서 해서 장례부터 치르냐. 화딱지가 나서 씩씩거리던 차에 이번엔 기름을 끼얹어 주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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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니 옥희 죽은 거 아나?'
'옥희가 누고?'
'00 둘째 여슥아 안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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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도 연세가 있어 기억이 가물거리시나 본데 끝자가 희가 아니라 옥이다. 손자만이 자손이라는 생각뿐이시던 조부께선 당시 같이 살던 셋째 백부님의 딸들을 유달리 싫어하셨다. 물론 거기엔 애를 좀 썩인 백부에 대한 원망도 있었지만 말이다. 해서 이름도 참... 기괴하게 지어 주셨지. 하여간 그 중 나랑 가장 친했던 누나가 죽었다는데, 이게 더 사람 돌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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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말기로 마지막 희망을 걸고 형에게 찾아갔지만 가망 없다는 선고를 받고 속수무책으로 가셨다는 건데. 앞서 말한 사촌 형이 그 오빠거든.
'아니 왜 그걸 이제사 말해요?'
'아이고마, 가스나 그 뭐 니하고 짜드라 친하다꼬 알리주고 말고 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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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사촌형, 우리 형, 우리 부모님까지 다 알았지만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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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아. 니 할배가 니만 손자로 생각하는 거 알제? 우린 손자도 아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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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찔찔이 나에게 수시로 누난 그런 서러움을 말하며 내 볼을 꼬집었다. 하지만 그게 나에게 화를 내는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고 어른들이 부재할 때마다 밥과 간식을 챙겨준 이는 그 누나다. 지독스럽게 가난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여유가 없었던 시질이라 큰 방안을 뺑 돌아가며 앉은뱅이 책상을 놓고 누나 5명이 함께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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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님의 방은 새벽 4시만 되면, 할머니와 함께 태우시던 새마을 담배 연기로 너구리 굴을 연상케 했지. 자다 깬 내 귀엔 10명의 자식과 그들에게서 태어난 손자들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누나들에 대해서 만큼은 한번도 좋은 말씀을 하시는 걸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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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가 헛바람이 들어서 치마가 그기 머꼬?'
'가시나가 무슨 대학을 간다고 지 오빠 뒷바라지나 하지.'
'가시나가 게을러 터져서 집안 꼬라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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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엔 형도 머리가 좋았지만 누나들이 월등하게 공부를 잘했다. 그러니까 요즘으로 친다면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는 인재들이었지. 하지만 오로지 '가시나', 그 이유 하나만으로 전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식모 취급만 받았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 손자, 손자 하던 남자 놈들 중 가성비 제대로 빠진 이는 몇 되지도 않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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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후 소식이 끊겼다가 다시 만난게 20년이나 자났을 거다. 주름 좀 있고 퉁퉁해진 것외엔 어릴적 얼굴을 그대로 가진 누난 날 보자 말자 오래 전처럼 내 볼을 꼬집으며 '우째 닌 하나도 안변했노? 잘 살고 있제? 결혼했나?'
그외엔 어릴 적 추억만 이야기했고 다른 이들처럼 호구 조사따윈 하지 않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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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인생이 참 드럽게 꼬여 온 얼굴에 고생한 티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음에도 말이야. 참으로 속이 깊지 않은가. 여자들 입소문에 이미 내 사정 어느 정도 눈치 채고선 듣기 좋은 이야기만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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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수 가까워 친한 게 아니지. 마음으로 가까워야 진짜 지인이고 함께 험한 인생을 같이 걸어 갈 수 있는 동지인 거지. 이렇게 씨부리지만, 그런 사단이 나기 전까지 소식 한번 알아보지 않은 나의 나태와 무관심이 무지하게 부끄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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