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길 위에서 묻다

21세기 속의 2차대전식 훈련 방법

운산티앤씨 2018. 9. 22. 14:32

예전 글의 반복인지 모르겠지만...

젊었을 때 내가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는 사내는 군대를 가야 해, 그래야 사람이 된다는 것이었다.

?? 난 사람이 아닌가? 그다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군대를 가서 두들겨 맞아야 인간이 된다고 믿었을까? 오늘 아침 방송에 모병제에 대한 여론을 환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걸 보면서 확실히 세상이 변했다 느끼는 건 예전 같았으면 이미 중앙정보부에 소리 소문도 없이 끌려갔거나, 아니면 국보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하여간 당시 나의 입대를 돌이켜 보면... (방위지만)

1. 군기 잡기
욕설과 발길질, 빨마때기로 분류되는 구타와 인간 존엄성을 짓밟아 개로 만드는 건 기본이었다. 존대? 그런 건 일찌감치 집에 두고 와야 했었다. 훈련소의 위병소를 통과하자마자 시작된 이 악습은 복무 기간 내내 주고받고를 되풀이했다.

그리고 사소한 잘못 하나에도 당사자가 속한 전체가, 소위 말하는 얼차려로 벌을 받았다. 그건 제식 훈련 중 발이 틀려도, 좌우 방향이 틀려도 그랬다. 아마 남에게 피해를 주는 자신을 채찍질하라는 뜻이겠지만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기만 한 시스템이 아닌가?

군대는 명령으로 움직이는 체계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명령이 반드시 상하관계와 주종 관계에서만 가능한가? 그건 아니다. 얼마든지 수평적인 관계, 즉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서 주어진 직책에 따라 합리적인 명령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군인이 로봇은 아니지 않은가? 적을 무찌르기 위해선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지금은 아무리 전쟁이라도 전쟁 범죄를 분류하고 단죄하는 세상이다. 아무리 명분이 그럴듯해도 민간인을 학살하거나 강간, 노략질하는 건 국제법상 엄연히 범죄이다.

군인이라도 부당한 명령은 거부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이건 이미 죽음이 예정된 적진을 향해 돌진하라는 명령의 거부와는 다른 차원이다. 작전상 일개 대대 하나 정돈 얼마든지 총알받이로 쓰고 우회해서 타격을 가하는 전술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요즘 세상에 이런 식의 육박전이 정말 필요한가?

결국 이런 부당한 군기 잡기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혔음을 언제까지 부인할 것인가.

2.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을 훈련들
철조망 밑을 박박 기거나, 밧줄 타고 협곡을 건너거나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 흙구덩이에서 뒹구는 유격, 잠도 재우지 않으며 발이 물러 터질 때까지 걷는 행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제식훈련 등등. 이런 훈련 방식을 통해 강군이 길러진다? 실로 가소롭기 짝이 없는 개소리고 가학적 변태 행위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그렇게 혹독하게 훈련해서 탄생한 장병은 이론적으론 인간병기 수준이어야 하겠지만 사회에 나오면 그저 그런 갑남이고 깡패의 큰 소리 한 번에도 고개 돌리는 을남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굴리고 때리며 하루 종일 돌려 봐야 남은 건 각종 관절질환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탄생시킨 전사들 10명이 격투기 선수 하나 당해낼 수 있다곤 보지 않는다.

3. 변화 없이 무미건조하게 이루어지는 인생의 낭비
사병들은 저런 식으로 인생의 가장 소중한 때를 허비하며 보냈다. 그리고 위로 올라가면 보상을 받으려 했고. 여기서 불편한 내무반 생활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왜 내가 나이 같은 친구의 군화를 닦아야 하며 존대를 하고 하인처럼 살아야 하는가? 다른 생각은 해서도 안되고 용납도 되지 않는다. 이렇게 바보처럼 2년이고 3년이고 허송세월 보내다 사회로 무책임하게 내팽개쳐진다.

만약 위의 열거한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아직 남아 있다면 지금이라도 다 뜯어 고쳐야 한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군대가 어떻게 현대전을 치러낼지 의문이다. EMP와 해킹으로 통신 체계를 무너 뜨리고 미사일과 전투기로 병참을 초토한 뒤 다시 대포로 두들기고 잔불 정리나 하는 전쟁 양상에서 이런 훈련과 명령 체계가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고 여전히 믿는다면 정신 감정부터 받아 보길 권한다. (얼마 전까지 북한의 특수전 병력 10만 명이 침투하여 각종 테러로 일으켜 우리를 점령한다는 식의 기사는 정권의 반대 세력을 누르는 좋은 레시피였다. 하지만 난 세계사를 공부하며 이런 식으로 전쟁을 치른 예를 단 한 번도 본 바가 없다.)

혹자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시리아와 같은 장기전을 보라고 할지도 모른다. 이건 일견 우리 군대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팩트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전쟁들은 당사자가 아닌 자들의 무기 장사판임을 알아야 한다. 만약 강대국들이 자국을 당사자로 상정했다면 그 전쟁들은 오래갈 수가 없다. 그건 이미 미국과 이라크 전에서 입증되지 않았는가.

모두가 가야 한다면 가도 될만한 군대를 만들든지, 그게 아니라면 가고 싶다는 놈만 보내든지. 허구한 날 특례가 어떠니 유전무죄니 양심적 병역거부만 입에 올리고 사회적 갈등만 조장하지 말란 거다.

아무리 조국을 위한 희생도 좋지만 당근도 없이 불러 좋은 시절 다 조져 놓으니 지레 겁을 먹은 애들이 가지 않으려 반항하고 부모들이 동조를 하는 거다.

정신 좀 차리기 바랍니다.

Kansas - Carry on Wayward 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