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길 위에서 묻다

오잉?

운산티앤씨 2018. 7. 2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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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BA - I HAVE A DREAM



흠... 이건 절대 비난 글이 아닙니다. 연전 전화로만 대화를 나누다가 가게까지 찾아오신 분이 있습니다. 한참 돈이 들어가야 할 아이들, 빠듯한 호주머니 사정, 고된 하루. 그야말로 전형적인 너와 나의 모습.

하루는 그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나 좀 도와주세요.'
'느닷없이??? 제가 도울 일이 있나요?'

이럴 땐 십중팔구 급전을 융통해 달라인데... 어쩌지? 오잉?

'오늘 어디 갔다가 기기가 하두 좋아 질렀거든요. 그래서 사서 집에 들어가다가 마누라한테 들켜서 난리 났습니다. 이거 사장님이 좀 팔아 주시면 안 될까요?'

글씨... 결국엔 내가 다 떠안게 되는데. 하지만 오죽 답답했으면 나한테 전화를 했을까. 일단은 폭격은 피해야 하니 가게로 갖고 오쇼. 오잉? 다른 것도 가져온다니? 이기 또 무신 일이고.

흐미... 글라스 밴 가득 오디오를. ㅎㅎㅎㅎ

다 내려놓으니 그나마 앉아 쉴 공간까지 다 찼습니다. 얼마 드리면 되겠냐는 의례적인 질문에 알아서 달라고. 오늘 산 기기만 얼마인데 그것만 돌려주면 나머진 알아서.

결제 차 전화를 올렸지요. 예상대로 재앙 수준의 호통 소리가. 그 사장님, 어지간히 미안하신 모양입니다. 난 나대로 이게 뭔.. 자다 똥벼락이여. 하여 밖으로 나와 저걸 얼마에 살 텐데 그걸 되팔면 얼마가 남고 어쩌고저쩌고.

결제를 받아 대금 치르고 나니 이젠 살았다는 표정으로 귀가를 하십니다. 그리고 난 이후로도 오랫동안 갖은 고문에 시달려야 했지요.

'팔았어? 언제 돈 들어와?'
'오늘 누가 관심은 있어 하던데 말이야..'
'잡소리는 빼고, 빨랑 팔아야 해. 이달 말까지 채워놔.'

흐미... 차라리 사채업자를 상대하고 말지. 사장님, 아직 다 못 팔고 남아 있어요~~

여자만 화병 들고 여자만 우울증 오는 거 아닙니다. 자존심 강하고 비교적 강단 있고 털털하다는 나도 가끔 골 때리는 생각이 듭니다. 강동대교에서 빠져 올림픽 대로에 진입하고 취수장 근방 오르막길 있습니다. 내리막길은 아주 스릴 있지요. 그대로 직진하면 날아갈 수 있습니다. 어디로? 한강으로.

우리네 아버지 때는 그럴 겨를도 없었습니다. 뭐 빠지게 일하시다 정년퇴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은 조용히 다른 세상으로 가시니까.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은 효도란 단어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음미할 줄 아는 자식들과 손자들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결혼들도 다 일찍 해서 정년퇴직 즈음이면 장성한 새끼들은 어지간하면 지 밥벌이는 했고, 출가란 똥다리까지만 받쳐 줘도 집도 한 칸, 그리고 쩐도 좀 쟁여 둘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손자들 올 때 섭섭찮게 용돈도 쥐여주고.

하지만 우린 다릅니다. 간이고 쓸개고 다 빼놓고 죽어라 충성한 결과는 넌 더 이상 쓸모가 없다입니다. No more useful, Useless life. 참 서럽고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럽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누가 위로를 해줍니까? 마누라들이, 가족들이 참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는 경쟁에서 탈락한 수컷의 무능함을 성토하기 바쁘죠. 다들 잘 있는데 넌 왜 쫓겨났냐?

그간의 사정을 어찌 말로 설명할까. 그래, 내가 못나 이 꼬라지다. 다 내 죄다. 이젠 니들과도 다퉈야 하는 신세냐? 그리고 입을 닫습니다. 그러나 이 현상은 직장에서 살아남은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에서 깔아뭉개고, 밑에서 엠병 떨고. 뭔 일 터지면 단체 기합이 아닌 독박. 드러워서 때려치우고 싶지만 들아가면 카드값이 얼마고 등록금이 얼마고. 휴일은 잠만 자죠. 자고 싶어 자는 게 아니라 아마 잔소리 듣기 싫어?

어디로든 숨어야 하는데 숨을 곳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혼자 술 마시자니 패배자 같고 공원에 앉아 있자니 백수 같고. 늦게라도 뭔 취미를 가지려 해도 마땅한 게 없고. 애들은 아는 체도 하지 않아, 마누라와의 대화는 면벽 수련 수준이지.

간혹 애인이라도 생겨 고목에 꽃이나 피려 보다 하지만 머잖아 그년조차 마누라 버금가게 됨을 압니다. 여기서 잠깐! 여자는, 애인은 탈출구가 아닙니다. 잠깐 해방구 역할을 하지만 조만간 당신의 목을 죄는 괴물로 변합니다. 그러니 가까이하지 마셔요.

하루 중 단 1분도 나를 위해 혹은 나만의 앞을 내다볼 시간이 없습니다. 모든 내 삶은 가족이란 형극 아래 깔려 있으니 그런 시간의 도모는 언감생심이고 언어도단일 뿐.

남자다워라. 매사 대범하게 생각하고 하찮은 일에 흔들리지 마라. 눈물을 보여서는 안된다. 용감해야 한다. 가족은 너의 전부이고 네 책임의 알파이고 오메가이니 뒈지는 순간이 올 때까지 최선을 다해라. 경쟁에선 뒤처져선 안된다. 패배자가 설 땅은 없다. 승자만이 웃을 수 있고 모든 것을 쟁취한다. 승진해라, 이겨라, 이름을 남겨라. 시시때때로 남자이고 살아 있음을 거증하라. 할렐루야~~

이게 사람이여, 슈퍼맨이여? 슈퍼맨도 저 정도 요구 사항이면 크립톤으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그 돌로 심장 찔러 자결하고 말지. 도대체 말도 되지 않을 삶의 짐을 어깨에, 등에 이고 지게 하고 뛰어라, 날아라. 붕붕~~~

이런 강박과 압박의 결과는 이상한 곳에서 튀어나옵니다. 술만 마시면 전부 특수 부대 출신이고 북파 간첩이고, 십대 일은 알라들 수준이며 한번 담그면 기본이 3시간이요, 하룻 밤에 10번은 사정하죠. 곳곳에 변강쇠 천지입니다.

그러다 보니 욱해서 엄한 경찰 드잡이하고, 개겨도 탈 없음을 아는 파출소에서 난동 부리고, 대로변에서 오줌 싸고 가래 뱉고 욕하고.

참으로 슬픈 자화상들입니다. 아닌 부분이 더 많겠지만 교집합도 나올걸요?

그리 살면 안 됩니다. 이젠 내가 누구인지 길을 떠나야 할 때이고 내가 누구인지 성찰할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나이입니다. 나 없으면 저긋들이 어찌 살꼬?

후후.. 그리 걱정하던 이들의 장례식장에 숱하게 가보았고 남은 자들이 어찌 사는지, 지금도 듣고 있습니다. 삶은, 사람은 살아 있는 한 환경에 적응하며 돌파구를 찾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에게 적용되는 지연의 섭리.

오죽하면 졸혼이 나오고 가출이 빈발하겠습니까? 하지만 그러니 식으로 나를 믿고 따라왔던 자들에게 상처 줄 이유 없음에야. 조용히, 점진적으로 그들과 거리를 두어 가며 나의 삶, 나의 길을 찾아갈 줄 알아야 합니다. 마누라의 우울증? 원인만 제거하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하십시오.

그 원인은 당신의 부모와 그들의 피붙이들입니다. 그들은 당신 마누라가 없어도, 그리고 당신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칡넝쿨처럼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를 정리해야 합니다. 단순하고 단출할수록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며 당신이 숨을 쉬고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감이 오십니까? 내가 있어 이 모든 것이 존재하니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성찰이 나온 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