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클릭하시면 크게 보입니다. 검은 선이 배가 지나가는 길입니다.
여튼 오징어와 고추장때문에 암스테르담에서 망신 당한 이야기는 기억나실 겁니다. 독일에서의 이야기도 많고, 오는 내내 배에서의 사건도 많았지만 일단 나중에 하기로 하고.
장장 15일에 걸친 여정 끝에 드디어 멀리서 부산항 근처에서 조업하는 오징어 배의 찬란한 빛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감격, 또 감격. 비록 이야기도 나눌 수 없는 거리였지만, 보이진 않아도 거기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개무량입니다.
참고로 인도양이나 대서양 나가시면 사흘에 한번 정도 수십 킬로 밖에서 조그만 점으로 지나가는 배가 보일 정도입니다. 배가 얼마나 많이 다니는데 말이 되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넓다니까요.
보통 선원들은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선박 생활을 하고 하선해서 1-3개월 정도 쉽니다. 그리고 다시 타고 나가고. 부산항 근처에 도달하면 하선자와 남는 자와 나뉘어 짐 싸느라 업무 인수인계하느라 부산하지요. 게다가 입국하면서 준비해야 할 서류도 만만찮은데다 짐은 짐대로 부려야 하니 그야말로 북새통입니다.
하지만 나와 그 냥반은 천하태평, 우린 가면 그만이니까. 신혼있었던 난 마누라 보고자파 환장할 노릇인데 이 냥반, 유난스럽게도 가방에 뭘 넣었다, 뺐다, 예의 그 가방 말입니다.
드디어 항만에 접안을 하고 하선을 하려는 찰나, 갑자기 내 팔을 잡더니 짐 하나만 맡아 달랍니다. 참고로.. 어딜 가시든 남의 짐, 가족이 아니라면 절대 받아 주시면 안됩니다. 아무리 죽는 소릴 해도 쌩까란 뜻입니다.
별 생각 없이 짐을 받아든 난 부식을 실어온 봉고 화물칸에 앉아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하며 즐거이 마누라와 노닐 생각만 하고 있었습죠.
드뎌 세관. 저 창살만 벗어나면 집이다. 웅? 짐이 컨베이어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탁 하고 멈춰 섭니다. 모지?
세관이 소릴 지르네요. ㅡㅡ;;
'저거 머꼬? 누구 꺼고? 이사람들 보래이. 조폭도 아이고. 세상에나.'
뭔가 싶어 갔더니, 엑스레이 화면에 가방 하나의 속이 훤하게 나오는데 날카로운 칼이 수십자루나.
'누구 꺼고?' <- 나
'0대리님 꺼 아니라에?' <- 쿡 (주방장)
헉.....
이런 씨버랄... 어째 가방을 난데 없이 맡기더라니.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쿡이 가만 있으랍니다. 세관에서 문제가 생기면 보통 쿡이 해결을 하는데 약간 검은 색이라 자세한 내막은 생략.
'휴, 겨우 뺐네요. 보조가 식당할 거라고 구라쳐서. 아, 이런 건 미리 말해조야지요.'
'그거 내 꺼 아니라에. O 과장이 내리면서 맡긴거라고.'
'저 양반은 바다 생활 꽤나 하고서도 그런 것도 모르노? 신참한테 엿을 먹이노.'
아놔 개썅, 진짜 골고루 엿 먹이네. 오징어로 인터내셔날 개쪽을 주더만 이젠 멀쩡한 사람을 조폭 시다바리로...
에휴, 그 다음부턴 같은 조로 절대 출장 안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만, 회사 일에 내 의견이 병아리 눈물 만큼이라도 반영이 되어야 말이져.